[가리사니] 프레임에서 허우적거리는 정부

이종선 2022. 10. 1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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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경제부 기자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100여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는 부자 감세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 질의에 “대기업을 부자로 보는 프레임, 그 인식부터 동의하지 않는다. 중소·중견기업의 감면 폭이 오히려 대기업보다 크다”고 반박했다. 추 부총리가 기왕 ‘프레임’을 언급한 김에 ‘법인세 인하=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감면 폭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그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세제 개편의 내용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완화하는 개편안에서 어떻게 중소·중견기업의 감면 폭이 대기업보다 더 크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다.

엄밀히 따지면 법인세 논의에 있어 ‘부자’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사전적 의미로 법인은 ‘자연인(사람)이 아니면서 법에 따라 권리 능력이 부여되는 사단과 재단’을 뜻한다. 법인세 인하를 두고 부자 감세라 하는 건 사람이 아닌데 사람에게 붙이는 말을 썼다는 점에서 ‘고양이께서 진지를 잡수셨다’고 하는 격이다.

이런 틀린 말이 쉽게 먹히는 건 법인세라는 게 법인을 운영하거나 법인에서 재무나 회계를 담당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남 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기업을 얘기할 때 소유주나 창업자를 먼저 떠올리는 문화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인세는 기업 소유주의 소득세와는 별개다. 소유주만 놓고 보자면 중소·중견기업 소유주는 부자 아닌가. 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자산에 대한 세금에서야 부자 감세란 말이 나올 수 있지만, 법인세에서 부자 감세란 말이 타당치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법인세 인상과 인하를 두고 수많은 연구와 주장이 있지만 뚜렷한 정답은 없다. 세금을 깎아준다고 그만큼 기업이 투자를 더 한다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해서 그 세금을 민생을 위해 더 잘 쓴다는 보장도 없다. 재정을 더 걷어 재정 중심의 정책을 펴가고 싶은 정권은 법인세 세율을 높이는 거고, 재정보다 경기 활성에 무게를 두는 정권은 세율을 인하하는 것이다.

법인세는 소득세와 달리 더 많이 버는 기업에서 거둬 적게 버는 기업에 지원하는 소득 재분배 효과도 없다. 빈부와 관련성이 크지 않은 영역까지 빈부의 프레임을 끌고 오는 건 무지(無知) 아니면 선동이다. 이런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끌려가는 정부를 보면 ‘선동은 문장 한 줄로 가능하지만, 그걸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부자 감세 프레임 못지않게 부동산 분야에서는 ‘실수요자’ 프레임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발표한 재건축 부담금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실수요자의 과도한 부담금을 줄여주겠다”고 밝혔다. 1가구 1주택자 상태로 해당 아파트를 6~10년 이상 보유한 사람을 실수요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부담금을 10~50% 감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만 실수요자인가? 아파트 한 채 소유하며 살다가 갑작스럽게 부모에게 시골 주택 한 채를 상속받아 2주택자가 된 사람은 실수요자가 아닌가. 주택시장에서 실수요란 단어만큼 모호한 단어도 없다. 아파트에 실거주하면서 훗날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양도차익을 거머쥘 생각을 하는 1가구 1주택자는 투기적 수요가 없나. 몸이 불편해 근로소득을 벌기 어려운 노인이 노후 임대소득을 위해 실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매수해 임대하면 그저 투기수요일 뿐인가.

거주라는 기능과 수익이라는 경제적 목적이 혼재된 주택 시장을 임의로 실수요·투기수요로 재단해 한쪽을 무리하게 억압하다 부작용을 초래한 게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요인이다. 그런 지난 정부 실책을 바로잡겠다며 집권한 현 정부가 같은 프레임에서 정책을 짜고 있으니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이다.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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