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이성 문제와 진학 실패로 신앙 한계 느끼고 방황.. 주께 굴복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는 삶

2022. 10. 1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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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한마음교회 간증 스토리


3남 1녀의 막내딸로 많은 사랑을 받다가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고아였던 사촌들까지 키우셨고, 사촌 여동생과 나는 혹독한 할머니께 시달림을 받았다. 땔감을 구하러 산에 가 솔잎을 긁어 쌀부대에 담아 끙끙거리며 메고 오고, 추운 겨울에도 냇가에 나가 빨래를 했다. 가족들의 삶은 눈물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며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단을 하고, 어른들을 따라 금식기도원, 부흥집회에 열심히 참가했다.

중학교 땐 혼자 공동묘지를 지나 교회에 갔고, 고등학교 땐 점심과 저녁 시간마다 재빨리 밥을 먹고 근처 교회에 가 기도했다. 고3 말에 전도사님의 허락으로 학교 앞 교회 쪽방에 들어가 친구랑 같이 불편하게 살면서도 마음은 늘 천국이었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쉬는 시간, 점심시간, 심지어 저녁에도 친구들을 운동장 가에 데리고 가서 모기에 뜯겨가며 예수님을 전했다. 고3이라고 주일을 지키지 않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반드시 서울의 명문대에 가서 보여주겠다며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능을 완전 망쳤다. 그것도 나를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고, 모든 예배를 사수하며 재수를 했다. 하지만 또 다시 수능을 망쳤다. ‘거봐. 예수님이 도와주긴 뭘 도와줘. 웃기네!’ 친구들의 조롱이 들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전도도 못하고 마음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서울로 진학은 했지만 수능을 망치게 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곧 다시 마음을 잡고, 교사가 되면 많이 전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편입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길도 막혔고, 마음을 열어 준 남자와 결혼 후 선교 나가기를 기도했는데 둘 사이마저 꼬였다. 대학문제에 이성문제까지 겹치며 나는 무너졌다.

20년간 모은 돈 전부를 등록하지도 않은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린 내 신앙의 한계가 느껴지자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며 하나님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보라며 술을 먹기도 하고 방황을 무기 삼아 나이트클럽에도 갔다. 그러다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집회에 가서 앞으로 뛰어나가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평소 원하던 방언을 받아 좋았지만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고 마음엔 뿌연 안개만 짙어져갔다.

그러다 올케언니를 통해 한마음교회 자매님을 만나 부활 얘기를 들었다. 며칠 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말씀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니, 저들이 구약의 예언을 잘 알 텐데 왜 예수님을 왜 죽이려는 거야?’ 그때, 갑자기 ‘재숙아! 네가 지금 나를 안다함은 저들과 다를 게 없다!’는 소리가 마음에 들려 깜짝 놀랐다. ‘내가 예수님을 안다면 3년 넘게 방황했을까? 갑자기 예수님을 전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지옥의 공포가 몰려왔다.

작은교회 예배 때 칠판에 쓰인 ‘바리새인, 서기관’이라는 글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언니는 그들은 십일조, 금식, 봉사를 다 했지만 지옥이고, 이런 것 한 번도 하지 않은 우편강도는 천국이라고 했다. 이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언니는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천국과 지옥을 부활을 통해 믿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하나님이니깐 당연히 부활했지.’ 했는데, 3년간 따랐지만 도망갔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즉시 그 사실을 전하다 순교하는 것을 보는 순간, 내 눈을 가리던 뿌연 안개가 한순간에 쫙 걷혔다. 흔들 수 없는 부활을 확증하며 나는 드디어 예수님의 사랑의 품속에 안겼다.

모든 문제가 종료되자 바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30분, 1시간씩 전화기로 복음을 전하고 병원, 공원, 캠퍼스에 노방 전도를 나갔다. 내 몸이 힘들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큰 오빠는 교회에 미쳤다며 당장 고향 대천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내게 하나님께서 대천의 영혼들을 품으라는 마음을 주셨다. “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고향에 내려오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작은교회를 세워주셨고, 보너스로 뺑덕할멈이라고 불리던 할머니를 품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출퇴근하며 할머니 간병을 했고, 퇴원 후엔 목욕이며, 대소변을 갈아 드리는 일을 기쁘게 감당하며 복음을 전했다. 장독대에 물 떠 놓고, 수시로 조상신께 빌던 할머니가 어느 날 눈이 휘둥그레지며 “예수님이 정말 부활했네! 그러면, 하나님이 맞네!” 하시고 바로 집안제사도 끊고 추석에는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소천하실 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려주어서 고마워.’ 하시는 것 같은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붙잡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믿지 않는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해 동성애 소설에 중독되었던 친구가 함께 교회에 다니고, 10년 넘게 기도하던 친구도 남편과 언니들을 전도하여 함께 교회에 나온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 내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남은 인생도 주님과 동행하며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이재숙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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