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소환 불응은 특권 의식..제도 내에서 결백 주장해야

2022. 10. 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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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의 검찰 대응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점점 현실화하는 형국이다.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이어 그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는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고, 복수의 성남FC 관계자들은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진상 정책실장이 실질적 구단주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밖에 여러 혐의가 제1야당 대표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이 혐의들과 무관하다고 하면서 우려했던 대로 검찰공화국의 야당 탄압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출석 요구는 1973년에 있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국회는 긴 시간 동안 난장판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 시겔만 전 주지사, 검찰의 선택적 기소로 유죄 받아
억울한 상황임에도 검찰 조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
야당 대표가 ‘예외’ 고집하면 사법의 정치화 가져와
검찰, 야당 탄압하려다간 거대 야당에 탄핵될 수 있어

검찰 출신 대통령이 자신과 가까운 검사들을 수족처럼 부려 죄 없는 야당 대표를 구속하려 하고 야당을 탄압한다면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초등학생에게 설명해주려면 한 가지 아리송한 부분이 있다. 야당 대표는 왜 소환하면 안 되는 것일까? 정치 탄압이라서? 야당 대표는 안 된다면 원내대표는 되는 걸까? 아니면 야당 의원은 누구든 혐의가 있더라도 소환하면 안 되는 걸까?

일반인은 검찰 소환 불응하지 않아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야 한다. 야당 탄압을 위해 검찰이 꾸며낸 얘기일지도 모르고 완전한 무고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자. 일반인들은 무고를 당해도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여러 차례 검찰을 들락거린다. 그런데 정치인은 왜 소환 자체도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렇다면 정치인은 국민 위에 있는 특별한 계층인가? 정치인도 일반 국민처럼 억울하더라도 검찰에 가서 조사받고 누명을 벗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일반 국민도 정치인처럼 스스로 억울하다고 판단하면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나치게 순진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초등학생에게 자신 있게 해줄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적 기소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1999~2003년 민주당 출신 앨라배마 주지사였던 돈 시겔만이다. 그는 앨라배마주 역사상 주 국무장관, 주 검찰총장, 부지사, 주지사를 모두 지낸 유일한 정치인이다. 앨라배마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고, 학비를 벌기 위해 자치 경찰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하다.

주지사로서 시겔만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임기 중에 기존에 있었던 메르세데스-벤츠 공장 규모를 두 배로 늘렸고 혼다·토요타·현대자동차 공장을 유치했다. 현대차는 올해 초 앨라배마 공장에 3600억원을 추가 투자해서 산타페 하이브리드와 GV70 전기차를 생산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재선에 도전한 그는 2002년 11월에 있었던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의 밥 라일리에게 앨라배마 역사상 가장 근소한 3000표 차이로 패배했다. 절치부심 2006년 주지사 선거에 다시 도전한 그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부지사와 주지사를 지냈던 1995년에서 2003년 사이에 그가 추진했던 앨라배마주 복권 도입 주민투표 캠페인에 50만 달러를 기부받은 대가로 리처드 스크루시라는 기업인을 공직에 앉혔다는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그 공직이란 것이 주 보건위원회 위원인데, 월급도 없는 자리이고 스크루시는 시겔만 이전 공화당 주지사 시절에도 12년 동안 같은 위원회 소속이었다. 시겔만은 재판을 받으면서 악전고투 선거운동을 계속했지만 무명의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배했고, 설상가상 33개 혐의 중 7개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징역 7년에 벌금 5만 달러가 선고됐다.

정권 실세의 타깃이 된 시겔만

그런데 시겔만에 대한 기소와 재판을 둘러싸고 여러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부시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이자 정권 실세였던 칼 로브가 배후에서 검사들을 조종했다는 설이었다. 칼 로브 배후설이 의심된다는 것은 어쩌면 진짜 배후는 부시 대통령일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겔만을 기소한 검사 중 루이라 카나리가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인 빌 카나리는 여러 해 동안 칼 로브 밑에서 일했었고 재판 당시에는 상대 후보인 밥 라일리를 돕고 있었다. 2002년 선거 당시 밥 라일리의 선거 캠프 회의에서 빌 카나리는 칼 로브가 법무부를 동원해 시겔만을 겨냥하고 있으니 앞으로 그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 없다고 발언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경쟁 후보였던 밥 라일리는 특정 판사를 거론하며 그가 시겔만을 “목매달 것”이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는데, 그 판사는 실제로 시겔만 사건에 배당되었다. 이듬해인 2007년 민주당과 공화당을 모두 포괄한 44명의 전직 앨라배마주 검찰총장들이 미국 의회에 시겔만 사건을 다시 조사해달라는 탄원서를 내면서 이 사건에서 검찰이 기소권을 선택적으로 이용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최종적으로 시겔만은 징역 6년에 벌금 5만 달러, 그리고 사회봉사 500시간을 선고받았다. 그는 6년간 복역 후 출소했고 앨라배마주 변호사 자격증을 되찾아 억울하게 기소된 사람들을 돕는 공익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인의 예외 인정 요구는 잘못

이재명 대표가 억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직·간접 증거들을 놓고 평가한다면 억울함의 크기는 시겔만 쪽이 수십 배는 더 커 보인다. 그런데도 시겔만은 검찰 조사를 받았고 재판에 출석하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본인이나 지지자들도 전례 없는 기소이고 형량이 과하다고 항변했지만, 검찰이나 법원이 사건을 전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시겔만은 칼 로브를 배후로 지목하면서도 그를 고소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제도를 만드는데 오랫동안 직접 참여했던 정치인으로서 억울한 상황이 됐다고 해서 나는 제도 바깥에 예외 사례로 남겠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울하더라도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제도 안에서 싸워서 누명을 벗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누가 봐도 억울해 보이는 옥살이를 6년이나 하고 창창한 정치적 미래를 모두 빼앗긴 채 75세가 되어서야 변호사 자격증을 되찾은 시겔만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느껴요. 보아라. 너는 사법체계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겪어보았다. 이제 나아가 그것을 고치거라.” 그가 그것을 고치는 방식은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변호사가 되어 자신처럼 억울한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

삼권분립 틀에서 문제 해결해야

우려가 남는 것은 이해한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고 그의 복심으로 알려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검사 출신이 요직에 깔렸는데,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의 사법화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야당 대표는 제도의 예외가 되기를 고집한다면 정반대의 문제인 사법의 정치화를 가져올 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서 감히 거대 야당의 대표에게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울 정도로 간 큰 검사나 판사가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삼권분립 원칙은 그런 경우에 대비해 검사나 판사를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해 놓고 있다.

재적의원 3분의 1 발의와 과반 동의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169석의 민주당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지 않았는가.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개혁 강경파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한때 검사 탄핵을 시도하다가 역풍을 우려해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야당이 되었으니 역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대선에서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제1야당의 대표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형사처벌 하려 한다면 오히려 윤석열 정부를 향한 거대한 역풍이 불 것이고 총선과 정권 교체는 저절로 굴러들어올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만들어놓은 제도 안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제도 안에서 검찰과 사법부를 견제하는 것이 당당한 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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