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영끌도 못한 이들을 위해
감히 말해본다. 비명도 특권이다. ‘영끌족의 비명’이란 기사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최근 부동산 임장을 다니며 만난 중개업자들은 모두 이런 말을 했다. “영끌요, 그거 부모 도움 없으면 못 해요.” 평균 집값이 13억원까지 올라갔던 서울의 ‘2030영끌족’이 그 대상이다. 폭락장이라는데 여전히 아파트값은 어불성설이다. 내 주변에도 많은 영끌족이 있다. 대부분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비명을 지르지만, 상투에서 잡지 않았다면 아직은 남는 장사다. 홀로 벌어 모든 것을 건 분들에겐 송구하다. 부동산 경착륙은 재앙이다. 하지만 영끌족의 비명은 사실 영끌족 부모의 비명이 아닐까 싶다. 이젠 월급을 온전히 저축해 아파트를 사는데 30년이 넘게 걸린다. 영끌 속엔 세습이란 단어가 숨어있다.
5개월 전 새 대통령이 자유를 35번 외치며 취임했다. 그런데 더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니 일상의 선택 폭이 줄어들었다.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자유 시장경제를 뜻하는 말이라지만 일상으로 옮겨도 큰 차이는 없다. 많은 직장인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유’보단 ‘밥벌이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지옥철을 탄다. 서점에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책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자유롭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달 말 공개된 대통령실 참모의 평균 재산은 38억원이었다. 투자회사 대표였던 한 비서관을 제외하곤 대부분 관료와 검사·교수, 혹은 백수 생활이 길었던 정치인들이다. 월급만으론 모으기 어려운 재산이다. 여당 국회의원으로 넓히면 평균 재산은 54억원으로 늘어난다. 많은 이들이 강남에 살고 있다. 모두 한때 영끌족이었던 것일까.
이들이 외치는 자유엔 경제적 자유를 열망하는 직장인들의 절실함이 얼마나 담겨있을까. 한 고등학생의 그림에 ‘엄중 경고’를 내리고 국정감사에서 핏대를 올리는 모습을 보면 자유에 그리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자유는 공기와도 같아 활자로만 묶여있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다.
영끌족이 비명을 지른다면, 영끌을 못한 이들은 비명횡사하고 있다. ‘3포 세대’라 불린 2030들은 부모 보다 더 잘 살기 어려운 최초의 세대다. 한때 저금리와 자산시장 호황에 희망을 걸고 코인과 주식에 올인했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이젠 생애 최초로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겨울을 맞이해야 할 위기에 놓여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10~30대 사망 원인인 1위는 자살이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2030 지지율이 10%대(갤럽)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한 자릿수도 기록했다. 그들은 외면받고 있다고 느낀다. 차라리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세습 받지 못해 영끌도 못한 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박태인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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