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칠상팔하' 가고 '능상능하' 온다

유상철 2022. 10. 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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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 연령
67세 가능하고 68세면 안 되는 칠상팔하 잠규칙 퇴출되고
연령 무관하게 능력 따른 인사인 '능상능하'가 기준 될 전망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0년 집권의 관례를 깨고 3연임 할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이제 관심은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어떻게 꾸려질지다. 중국 고위층 인사의 기준으로 이제까지 알려진 건 ‘칠상팔하(七上八下)’ 잠규칙(潛規則)이다. 67세까지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라면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데 20년 역사의 이 관례가 올해 깨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위층 인사에 파란이 일 것이란 이야기다. 왜 이런 말이 나오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고위 당원 인사 기준으로 나이 대신 능력을 따지는 '능상능하' 규정을 적용한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작은 지난 9월 19일이다. 이날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은 ‘영도간부의능상능하(能上能下) 추진 규정’ 수정안을 발표했다. 당의 고위 간부에 대해 능력에 따라 올리고 내리는 인사를 하겠다는 거다. 이 규정이 처음 만들어진 건 2015년 7월이다.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데 2년 후인 2017년의 19차 당 대회 때 ‘칠상팔하’ 관례에 흠집이 나는 인사가 이뤄지며 관심을 끌었다. 당시 69세의 왕치산(王岐山)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물러났지만, 이듬해 국가부주석으로 발탁된 것이다. 반면 67세의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은 물러날 나이가 아님에도 완전히 은퇴하고 말았다.
당시 소문이 흉흉했다. 리위안차오가 시진핑 사람이 아니라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 인사의 배경이 됐던 ‘능상능하’ 규정이 20차 당 대회 개최를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수정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핵심은 올리는 데 있지 않고 내리는 데 있다. 당 조직부 관계자가 규정을 설명하면서 “영도간부능상능하의 어려운 점은 내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라며 간부에게 “문제가 있기는 한데 그 정도가 기율이나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아닐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한 것이다. 즉 당의 기율이나 법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내쫓고 싶을 때 능력 문제를 따지겠다는 이야기다.

오는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된다. 시진핑이 또 다시 총서기로 선출돼 3연임에 성공할 전망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수정안은 그래서 어느 경우 능력 부족으로 조기 은퇴해야 하는가 경우의 수를 15가지나 제시했다. 제5조에 그 내용이 빼곡히 수록돼 있다. 첫 번째가 정치 능력이 단단하지 못할 때다. 그다음은이상 신념이 동요할 경우다. 이어 투쟁 정신이 강하지 못할 때, 당의 민주집중제 원칙을 위배할 때, 영도능력이 부족할 때, 품행이 단정하지 못할 경우, 배우자나 자녀가 해외로 이주하거나 상업활동에 종사할 때 등 다양하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그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한다(天网恢恢疏而不漏)’는 경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능상능하’ 규정 수정안은 모두 18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제2조엔 능력 있는 자는 올리고(能者上), 우수한 자에겐 상을 주며(優者奬), 변변치 못한 사람은 내리고(庸者下), 열등한 자는 도태시킨다(劣者汰)고 적었다. 4조엔 영도간부 ‘능상능하’ 추진의 중점은 ‘내리는 문제 해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5조에 강등과 관련한 15가지 경우를 적시한 것이다. 7조에선 보통 한 달 이내에 간부의 월급과 대우 등을 조정한다고 해 속전속결의 의지도 표시했다. 즉 어떻게 승진시킬까가 아니라 어떻게 은퇴시킬 것인가에 대해 나름 일정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올해 68세인 한정은 ‘칠상팔하’ 잠규칙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능상능하’ 규정이 적용될 경우 승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

중화권에선 이번 ‘능상능하’ 규정이 타깃으로 하는 대상인 영도간부가 정치국 위원이나 정치국 상무위원 등 고위 당원이라고 보고 있다. 20차 당 대회 지도부 인선을 두고 새로운 인사 기준을 제시한 것인데, 그 잣대가 과거와 같은 ‘칠상팔하’ 잠규칙이 아니라 ‘능상능하’라는 규정임을 알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당 대회 때 나이가 많아 당연히 퇴진할 것이라 여겨졌던 리잔수(栗戰書, 72세)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이나 한정(韓正, 68세) 상무 부총리의 거취도 오리무중에 빠지게 됐다. 최근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친 리잔수가 국가부주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장쩌민(江澤民)-쩡칭훙(曾慶紅)의 상하이방(上海幇) 원로세력을 대표하는 한정이 총리로 승진할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올해 67세로 ‘칠상팔하’ 잠규칙을 적용할 때 굳이 퇴진하지 않아도 될 리커창(李克强) 총리나 왕양(汪洋) 정협 주석,왕후닝(王滬寧)정치국 상무위원과 65세인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위 서기 중에선 누가 ‘능상능하’ 규정의 희생양이 돼 물러날지 알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고위층 인사가 한 치 앞을 점칠 수 없는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 주석의 의중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67세이면 진입 가능하고 68세이면 안 된다는 칠상팔하 잠규칙은 20년 전인 장쩌민 시기 만들어졌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시 주석은 이번 5년뿐 아니라 앞으로 10년은 더 집권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1인 체제를 굳힌 시 주석의 뜻에 따라 고위층 인사가 출렁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칠상팔하’도 당시 권력자 장쩌민이 임의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쩌민은 1997년 15차 당 대회 때 라이벌 차오스(喬石, 1924년생) 당시 전국인대 상무위원장을 축출하기 위해 ‘70세 상한(70歲封頂)’ 규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16차 당 대회 때는 리루이환(李瑞環, 1934년생) 당시 정협 주석을 내쫓기 위해 ‘칠상팔하’를 고안했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신시대 건설을 강조하는 시진핑 주석이 장쩌민 때 만들어진 잠규칙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맞는 인사 규칙인 ‘능상능하’ 규정을 만든 배경이다. 누가 능력이 있고 없고의 판단은 시 주석이 하면 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시진핑 집권 시기의 고위층 인선은 보다 더 시 주석의 의중을 반영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그리고 그렇게 시 주석의 당내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며 3연임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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