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은 줄도 몰랐다. ‘받은 사람이 받은 줄도 모르게 하는 것’. 그것조차 명인의 솜씨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그 사랑은 평화였다. 할머니가 나에게 무언가 잘해주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그저 그분의 작은 평화 속에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끌어 안으셨다.
심윤경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이에게 무언가 잘해주려 애쓰다가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고 불만과 다툼의 늪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머니는 나에게 평화로 가득 찬 작은 방을 주셨는데, 그 방은 영원히 내 안에 남아서 내가 힘들 때 들어가 쉴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딸을 낳고서야 작가는 비로소 할머니의 사랑을 되돌아본다. 말수 적은 “언어의 미니멀리스트” 할머니는 잘했든 못했든 “장혀”라며 등을 두들겨줬다. “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이 장하다는 소중한 인정”이었다. 과정에 대한 칭찬이었다.
“할머니가 베푼 관용은 나에게 심리적인 안전판이 되었다. 혹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관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씨앗이 되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매우 중요한 창의력의 씨앗이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질문을 던지고, 반대하는 목소리에 굴하지 않고 나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용기의 근원이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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