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의 고래사냥법

김숙귀 2022. 10. 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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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귀 기자]

지난주, 쏟아지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 한귀퉁이에 조그맣게 보도된 기막힌 기사가 있었다. 누군가 쇼핑몰 화장실에 갓 태어난 남자아이의 시신을 쇼핑백에 담아 버렸다는 것이다. 비슷한 일은 지난달에도 있었다. 한밤중 으슥한 주차장 골목에 남녀가 나타나 종이가방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재빨리 사라진 일이었다. 종이가방에는 탯줄도 떼지않은 신생아가 있었다.

네살 딸을 낚싯대로 때리다가 밀어 넘어뜨려 결국 생일날 숨을 멎게한 여자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인간의 가장 잔인한 밑바닥을 보는 느낌이 든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온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한다. 하지만 도저히 부모라고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씁쓸하고 부끄럽다.
 
 어미와 새끼 네 마리. 맨 앞쪽 까만 녀석은 어미와 함께 자주 내게 밥을 얻어먹었는데 혹시 새끼들의 아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에서 두번째 새끼가 녀석이 물고 온 생선뼈를 먹고있다.
ⓒ 김숙귀
녀석을 처음 만난 건 지난 봄이었다. 내가 챙기는 길냥이 두 마리에게 밥을 주고
그릇을 되가져오기 위해 근처를 왔다갔다 하다가 치킨집 앞에서 젊은 주인에게 밥을 얻어먹고 있는 녀석을 몇번 보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난 뒤 장사가 잘 안되었는지 문을 닫아버린 치킨집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녀석을 만났다.

안쓰러운 마음에 치킨집 옆 작은 공터에서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동안 야무지게 밥을 잘 먹던 녀석이 언제부터인가 주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내버려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야옹거린다. 왜 그러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가지고 있던 닭가슴살 간식을 찢어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얼른 간식을 입에 물고 치킨집앞 큰 도로를 건너 바쁘게 간다.

그러더니 곧 다시 돌아와 또 간식을 물고 간다. 처음에는 숨어서 먹으려나보다 여겼지만 며칠째 계속되는 녀석의 행동에 궁금증이 생겨 살금살금 뒤를 따라가보았다. 녀석은 간식을 물고 길건너 복지관 담을 훌쩍 뛰어넘는다. 나는 복지관 정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당 한쪽 구석에 컨테이너박스가 있고 녀석이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가까이 가니 하악한다. '밥을 챙겨주는 내게 왜 그러니' 서운했지만 나를 빤히 쳐다보고 앉아있는 녀석에게 간식을 하나 더 앞에 놓아주었다. 녀석은 얼른 입에 물고 컨테이너박스 쪽으로 다가가며 울음소리를 낸다 그러자 박스 밑에서 꼬물꼬물 새끼들이 한 마리씩 나오기 시작한다. 모두 네 마리다.

녀석은 어미였다. '여기다 새끼를 숨겨놓고 키우고 있었구나,' 녀석은 자기 배를 채우기보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위험한 도로를 건너다니며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르는게 먼저였던 것이다.

다음 날부터 녀석이 위험한 도로를 건너지 않게 아예 복지관 컨테이너박스에서
밥을 챙겨주었다. 어느 날은 복지관으로 가는데 맞은 편 저만치서 녀석이 입에 무언가 커다란 것을 물고 오는게 보였다. 녀석은 물고 온 걸 새끼들 앞에 툭 떨어뜨린다. 보니 살점이 남아있는 생선이다. 어디서 가져왔지는 모르지만 고양이인 저는 또
그 생선이 얼마나 먹고싶었을까. 그래, 그래서 어미지.

이제는 제법 자란 새끼들은 따로 챙겨주는데도 꼭 어미밥을 욕심내곤 한다. 그럴 때면 어미는 밥을 먹다가도 뒤로 물러앉아 새끼들이 먹는걸 바라보고 있다. 동물이지만 어미길냥이의 새끼를 위하는 마음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지난번 창원 북부리 우영우 팽나무 가는 길에서 본 그림. 우영우 팽나무는 10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김숙귀
커다란 관심과 인기를 불러모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했던 말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래 사냥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야.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져 새끼가 고통스러워하며 주위를 맴돌면 어미는 절대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대. 아파하는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거야. 그때 최종 표적인 어미를 향해 두번째 작살을 던지는 거지.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

담담하게 말하는 우영우의 표정이 마음을 더 아프게 했었다. 드라마는 행복한 결말을 맺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이제는 두 분 다 안계시지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딸이 걱정 되어 추운 겨울, 집 앞 골목길을 서성이던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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