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전 잠실, 이 정도일 줄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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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작가)]
서울 잠실은 한강의 섬이었다. 섬마을이었던 신천동과 잠실동이 서울로 편입되기 전에는 한강 북쪽의 경기도 양주군에 속했었다. 두 동을 제외한 송파구의 다른 지역은 한강 이남의 광주군에 속했다. 잠실섬은 지리적으로 자양동과 가까워 지금의 광진구 생활권이었다. 그러니까 잠실은 강북에 가까운 섬이었다.
▲ 1960년에 발행된 '서울특별시지도' 오른쪽 하단의 빨간 원 안에 있는 한강의 섬이 잠실이다. 팔당에서 흘러오던 한강이 섬을 만나 두 갈래로 갈라진다. 굵은 갈색 선은 1960년 당시 서울시의 경계를 나타낸다. 잠실섬을 제외한 강남3구는 아직 경기도였다. |
ⓒ 서울역사아카이브 |
잠실(蠶室), 그리고 신천강과 송파강
잠실(蠶室)은 '누에를 치는 방'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 오늘날의 송파구 잠실에 동잠실을 두었고, 신촌의 연희궁 근처에 서잠실을 두었다.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 <동여도>의 '경조오부도'를 보면 봉은사 건너편에 '상림(桑林)', 즉 뽕나무숲으로 표기한 지역이 나오는데 오늘날의 잠실이다.
▲ 경조오부도에 나온 잠실 김정호가 만든 지도 <동여도>의 '경조오부도'. 빨간 원에 '상림' 즉 뽕나무숲이 표시되어 있다. 지금의 잠실이다. |
ⓒ 서울역사아카이브 |
▲ 부리도 표지석 잠실 종합운동장 건너 아시아공원에 있다. 예전에 이 일대에 있었던 부리도, 부렴마을의 내력이 적혀있다. |
ⓒ 강대호 |
잠실종합운동장 건너편의 '아시아공원'에 가면 '부리도, 부렴마을' 표지석이 있다. 잠실이 섬이었던 시절 근처 마을에 살았던, 하지만 종합운동장과 부대시설 건설로 토지가 수용돼 떠나게 된 주민들이 세운 기념비다.
표석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잠실은 원래 살곶이, 지금의 자양동 아래에 붙은 반도(半島)였다. 하지만 조선 시대 중종 15년인 1520년에 대홍수가 나 뚝섬 아래로 샛강이 생겨 잠실 일대가 섬이 되었다고 한다. 샛강, 즉 신천이라는 지명이 생긴 연유다.
한강은 예전에 마포강이나 서강 등 강에 면한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부르기도 했다. 잠실섬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잠실섬 북쪽에 자리한 '신천리' 앞으로 흐르는 강을 '신천강'으로, 남쪽의 '잠실리' 앞으로 흐르는 강을 '송파강'으로 불렀다. 두 지역은 나중에 '신천동'과 '잠실동'이 된다.
▲ 1969년에 촬영한 잠실섬 일대의 항공사진 빨간 원은 잠실로 1971년 이전에는 한강의 섬이었다. 섬 북쪽으로 흐르는 강을 신천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송파강으로 불렀다. |
ⓒ 국토지리정보원 |
오늘날 잠실은 고급 주거지와 고층 건물, 그리고 인스타 핫플이 즐비한 곳이 되었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의 외딴 '낙도(落島)'로 취급받았다. <경향신문> 1965년 12월 25일의 '서울 속의 낙도 잠실마을 딱한 사정' 기사를 보면 교통수단은 물론 통신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잠실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기사는 잠실섬에 사는 2천여 주민이 "문명에서 외면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교통수단이라곤 "정원이 되어야 건너는 나룻배"만 있고 전기는커녕 전화조차 없어 집중호우로 섬이 잠겨도 "SOS를 알릴 통신 수단이 없"는 형편이라고.
▲ 동아일보 1966년 7월 25일 기사 사진은 미군 헬리콥터가 고립된 잠실섬 주민을 구조하고 있는 장면이다. |
ⓒ 동아일보 |
이처럼 잠실은 홍수가 나면 뉴스에 등장하곤 했는데 특히 미군이 헬리콥터로 주민들을 구조했다는 기사를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거의 매년 볼 수 있다.
그 일례로, <동아일보> 1966년 7월 25일 '잠실리 한때 고립' 기사는 한강물이 불어나 고립된 성동구 신천동과 잠실동 주민 1400여 명이 구조되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선박으로 구출하다가 물살이 거세지자 미군에 헬기를 요청했다고. 같은 신문 7월 27일 기사에는 미군이 선박 6척과 헬기 3대를 동원해 잠실섬 등에서 주민들을 구조했다고 전한다.
육지가 된 잠실
홍수 관련 소식에 등장하던 잠실이 1970년대 들어서는 부동산 뉴스로 등장하게 된다. <경향신문> 1970년 6월 16일의 '영동·잠실지구 개발' 기사 등 이 시기에 나온 신문 기사들은 잠실의 육속화(陸續化) 계획을 전한다.
그리고 1971년 2월경부터는 잠실섬 물막이 공사 소식은 물론 잠실 일대 구획정리 및 택지조성 공사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 잠실 육속화 공사(1971) 잠실섬 남쪽의 물길을 막아 육지와 연결하는 육속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 서울역사아카이브 |
당시 기사들을 보면 물막이 공사, 즉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현대건설, 대림건설, 동아건설, 극동건설, 삼부토건의 5개 민간 기업이 맡는다. 이 회사들은 반포지구 등 한강 연안의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도맡아 왔기에 특혜 소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시 고위공무원이었던 손정목은 회고록에서 "거액의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보상"으로 이권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 정황을 들어 설명한다.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5개 회사의 대표와 면담한 이후에 주무부서인 서울시와 상의 없이 공사 업자가 결정되었다고.
손정목은 건설회사에 있어 공유수면 매립공사는 난이도는 쉬운데 이익은 많은 사업이고, 택지조성과 주택 건설까지 맡으면 이익이 더욱 극대화되는 사업이라고 회고록에서 평했다.
▲ 잠실섬의 육지화 섬의 북쪽을 잘라서 한강 물길을 넓혔고, 섬의 남쪽은 물막이 공사를 했다. 석촌호수가 물막이 공사의 흔적, 즉 한강이었던 흔적이다. |
ⓒ 나무위키 |
한편, 잠실섬 육속화 전과 후를 설명한 그림을 보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신천강이 흐르던 섬의 북쪽과 북동쪽 모서리를 잘라내고는 섬 남쪽으로 흐르는 송파강을 흙으로 메워 송파 지역에 붙여버렸다. 예전에 섬을 만나 굽이지며 갈라지던 한강의 물길이 넓어지고 직선화가 되었다.
1971년 2월 18일에 시작한 물막이 공사는 4월 17일에 마쳤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석촌호수다. 인공호수가 아니라 한강의 물길을 막은 흔적이었다.
그런데 물막이 공사와 공유수면 매립공사 당시 흙이 모자라서 근처의 산등성이, 아직 백제 토성으로 밝혀지기 전의 몽촌토성을 허물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처치 곤란이었던 서울 시내의 연탄재와 건설 쓰레기를 갖다 부어서 물막이 공사와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 잠실주공아파트단지 전경(1976) 좌측 상단에 석촌호수가 보인다. 당시 호수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
ⓒ 서울역사아카이브 |
기자의 누이가 1976년 즈음 잠실주공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려서 당시 풍경을 기억한다. 강남경찰서에서 탄천을 건너면 나중에 종합운동장이 되는 빈터가 나타났고 이어서 회색빛 5층 아파트들도 나타났다.
그 끝에 황량해 보이는 호수가 있었다. 당시 기자가 살던 강남도 변두리였지만 잠실은 강남보다 더 외진 곳에 있었다.
누이의 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연탄 아궁이었다. 쌓아놓은 연탄도 보였다. 잠실개발 계획에 참여한 손정목에 따르면 잠실주공아파트는 서민 아파트를 지향했다. 주로 13평대 넓이의 아파트였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7.5평대의 아파트도 있었다고.
그런데 7.5평의 집에는 연탄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 중앙난방을 공급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부업을 할 수 있도록 '새마을작업장'도 개설했다고.
▲ 석촌호수와 러버덕 석촌호수는 한강의 물길을 막은 흔적이다. |
ⓒ 강대호 |
서민 아파트로 알려진 잠실주공아파트는 오래 전에 헐리고 그 자리에 전혀 다른 모습의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다만 다른 단지들보다 넓은 평형에 고층을 자랑하던 5단지만 예전 모습을 아직 보여주고 있다.
황량했던 석촌호수는 커다랗고 노란 '러버덕'이 떠 있는 인스타 핫플이 되었고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도 들어섰다. 예전에 뽕나무밭이 있던 곳이 몰라보게 변했으니 옛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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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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