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지루함" 70살된 몽클레르의 선언 [더 하이엔드]

윤경희 2022. 10.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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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계의 명품’을 찾는다면 단연 이 브랜드, 몽클레르(Moncler)가 떠오른다. 몽클레르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다. 보온성을 우선시해 두툼해질 수밖에 없는 패딩 점퍼를 얇고 가볍게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만들어 도심 속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새로운 패션을 제시했다.


70주년의 숫자 1952, 1만8000, 20억
패딩의 새로운 지평을 만든 몽클레어가 최근 창립 70주년을 맞으며 대대적인 오프라인 이벤트를 열었다. 그러면서 1952, 1만8000, 20억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기록으로 남겼다. 1952는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 설치된 특설무대에 오른 무용가·합창단·모델 등 공연에 참여한 사람 수, 1만8000은 이 행사를 지켜본 관중의 수다. 20억은 몽클레르의 70주년과 관련된 모든 콘텐트가 디지털을 통해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여진 도달 수다.
다음은 영상 차례였다. 몽클레르는 치밀하게 70주년을 준비했다. 오프라인에서의 대형 이벤트를 통해 세계의 시선을 잡아끈 뒤, 전 세계에 디지털로 브랜드의 70년 스토리를 전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행사 이틀 뒤엔 9월 26일 몽클레르는 2단계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탈리아 방송을 통해 70년 역사를 담은 2분짜리 브랜드 필름을 공개하면서다.

몽클레르의 70주년 기념 로고. 로고의 오른쪽은 원래의 것, 왼쪽은 숫자 70을 산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몽클레르 70주년 행사. 사진 몽클레르


브랜드 필름은 70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엑스트라오디너리 포에버' 캠페인의 일환이다. 영상은 지난해 9월 '몬더지니어스' 디지털 쇼를 진행했던 앨리샤 키스의 내레이션과 함께 브랜드의 역사적 순간을 오롯이 조명했다. 1952년 고산지대에서 시작된 브랜드의 뿌리부터, 2년 뒤인 54년 K2 등정에 나선 이탈리아 원정대를 위한 장비 제공, 68년 그레노블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쓴 프랑스 스키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디자인했던 이야기를 디지털 아트 같은 영상미로 함축해 담았다. 20년 넘게 브랜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레모 루피니 회장은 이 영상을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지루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영상을 보고 있자니,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산악인이 좋아서 만든 산악용품 브랜드
시작은 산악 활동에 필요한 스포츠용품에서부터였다. 몽클레르의 이야기는 1952년 프랑스 산악인 르네 라미용과 스키강사 겸 스포츠용품 유통업자였던 앙드레 뱅상이 함께 산악용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면서 시작한다. 르네 라미용은 발명가로도 활동했는데, 특히 산악용 장비에 대한 다수의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라미용은 앙드레 뱅상과 의기투합해 스키 장비와 산악용 텐트, 슬리핑 백 등 산악 스키를 즐기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다. 브랜드 이름은 생산 공장이 있던 프랑스 그레노블 인근의 소도시 모네스티에르 드 클레르몽(Monestier de Clermont)의 앞 세 글자(MON)와 뒤 네 글자(CLER)를 따 만들었다.
산악인이 만든 산악용품 브랜드이다 보니 로고도 처음엔 프랑스의 에귓(Equit) 산을 형상화한 로고를 사용했다. 그러다 1968년 그레노블 동계 올림픽에 참여한 프랑스 활강 스키 국가대표팀의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면서, 산 대신 프랑스의 국조인 수탉 형태의 로고를 새롭게 만들어 사용했고 이것이 지금 몽클레르를 상징하는 로고로 자리 잡았다.

1964년 몽클레르의 패딩을 입고 있는 프랑스인 산악인 리오넬 테라이. 사진 몽클레르
리오넬 테라이가 알레스카의 이글루 속에서 장비를 챙기고 있다. 이때 사용한 장비의 대부분이 몽클레르가 제작, 제공한 것이다. 사진 몽클레르


세계 최초로 퀼팅 다운 재킷을 만들다
몽클레르가 의류를 만든 것은 브랜드 설립 2년 뒤인 1954년부터다. 처음엔 퀼팅으로 만들어 가볍지만 보온성이 높은 침낭이나 사이즈 조절이 가능한 견고한 접이식 텐트 같은 용품을 만들었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불기 시작한 휴가를 즐기는 문화와 맞물리며 사회변화를 상징하는 제품이 된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몽클레르의 다운 패딩 재킷은 사실 처음엔 몽클레르 공장 작업자들을 위한 옷이었다. 고도가 높은 산지인 그레노블에 위치한 공장은 상당히 추웠고, 여기서 일하는 공원들을 위한 방한복으로 안에 거위털을 채워 넣은 퀼팅 다운 재킷을 만들어 입은 게 시작이다.
산악인을 위한 재킷이 탄생한 것은 유명 프랑스인 등반가 리오넬 테라이 덕분이다. 당시 라미용, 뱅상과 친하게 지낸 리오넬 테라이가 이를 보고, 자신을 위한 방한용 의류와 침낭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주길 요청한 것. 라미용은 그를 위해 퀼팅 다운 재킷과 장갑, 침낭 등 다양한 산악용 제품을 개발했고, ‘리오넬 테라이를 위한 몽클레르(Moncler pour Lionel Terray)’란 이름을 붙여 출시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위한 최초의 퀼팅 다운 재킷이다. 이후 이탈리아 탐험가 아칠레 콤파노니와 리노 라치델리가 이끄는 탐험대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인도 카라코람 산맥 정상을 정복할 때 이 옷을 입어 유명해졌다. 1964년엔 리오넬 테라이가 조직한 알래스카 원정대의 공식 후원사가 됐다.

브랜드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마야 재킷.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컬러를 선보였다. 사진 몽클레르
1970년대 몽클레르를 입은 탐험가들의 모습. 사진 몽클레르


산악 브랜드에서 럭셔리 패션으로
몽클레르가 지금과 같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된 것은 지금 회장이자 CEO인 레모 루피니가 브랜드에 합류하면서부터다. 1999년 몽클레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루피니는 당시 아웃도어 브랜드로서는 보기 힘들었던 봄·여름 시즌 컬렉션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아웃도어에 멈추지 않고, 하나의 ‘패션’으로 브랜드를 재정립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컬렉션은 좋은 반응을 얻었고, 기세를 몰아 2001년엔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스위스 생 모리츠에 첫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이후 레모 루피니는 2003년 직접 브랜드를 인수하며 빠르게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킨다. 구스 패딩을 겨울 스키 리조트에서 입는 옷에서, '모피 대신 입을 수 있는 고급 패딩'으로 이미지를 리포지셔닝한 게 주요했다. 도시에서도 패셔너블하게 입을 수 있도록 무게를 줄여 가볍게 만들고 소재와 디자인 개발에 힘을 쏟았다. 2006년엔 디자이너 지암바티스타 발리와 함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이며 패션성을 부각시켰고, 이듬해인 2007년엔 프랑스 파리에 첫 플래그십 매장을 열며 명실상부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몽클레르를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만든 레모 루피니 회장. 사진 몽클레르


지금의 몽클레르는 한 명의 디자이너를 두는 것 대신에 뛰어난 디자이너 여럿과 협업하는 '지니어스' 프로젝트로 움직인다. 루피니 회장이 선택한 창의성과 다양성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하나의 하우스, 다양한 목소리'를 모토로,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하나의 브랜드로 맥은 지키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컬렉션을 전개한다. 구성원은 주로 독창성으로 주목받는 디자이너들. 2018년 첫 지니어스 프로젝트의 멤버는 2008~2016년 발렌티노의 디자이너였던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 꼼데가르송의 느와 케이 니노미야, 창의성으로 인정받는 영국 디자이너 시몬 로샤와 크레이그 그린 등이었다.

영국 디자이너 JW 앤더슨과 함께 한 지니어스 컬렉션. 사진 몽클레르


몽클레르의 지난 70년은 도전의 역사다. 멈추지 않는 도전을 통해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두 가지 DNA를 한몸에 융합시켰다. 하나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극한의 탐험 정신, 또 다른 하나는 일상에서 소비되는 럭셔리 패션이다. 끊임없이 기록을 깨는 탐험가와 운동선수들을 위한 옷을 만드는 한편, 창의적인 디자이너들과 지니어스 프로젝트를 통해 패션성을 진화시켜 왔다. 그런데 이들은 70살을 맞으며 "지루함을 경계하겠다"고 선언했다. 설립 후 지금까지 새로워지기 위한 질주를 이어온 이들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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