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떨어진 이유, 그것을 알려드립니다" [전민정의 출근 중]

전민정 2022. 10.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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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전민정 기자]

● 우리사회의 불변의 화두가 된 '공정과 정의'

누구나 공정한 사회를 원하지만,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에겐 더 절실한 가치일 겁니다. 특히 채용 문제에 있어선 더 민감합니다. 공공, 민간할 것 없이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돼 있지만 여전히 국민의 절반 이상은 채용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이란 기치를 내건 윤석열 정부는 아예 법으로 공정한 채용을 보장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기존 채용철차법(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공정채용법'으로 바꿔 연내 법 개정안을 마련, 내년 상반기 안에 제출한다는 계획입니다.

● 왜 떨어졌는지, 그것이 궁금한가요"

"탈락사유를 알려주면 채용비리도 해결하고,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다음 취업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취업준비생 A씨, 고용노동부 현장 간담회에서>

청년들이 입사를 준비할 때 무엇을 가장 궁금해할까요. 바로 내가 왜 떨어졌는지입니다. 불합격 이유라도 알려주면 왜 떨어졌는지 납득하기 쉬워지고, 본인이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고용부가 연내 개정을 추진 중인 '공정채용법'은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업들이 모집에서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채용의 전 과정을 구직자에게 상세한 정보 제공한다는 건데요.

여기엔 기업들이 탈락자들에게 채용 탈락 사유를 알려주도록 하는 방안까지 담겨져 있습니다. 채용과정에서 이유도 모른 채 탈락해 답답해하는 상황을 개선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청년 구직자들의 의견을 십분 반영한 거죠.

다만 이때 기업이 반드시 불합격 사유고지를 하도록 강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 입장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수백명이 넘는 탈락자들에게 일일이 피드백해주는 것이 비용 등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용담당자가 특별히 없는 영세업체에겐 아예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고요.

이러한 부담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채용 과정에 대한 취준생들의 신뢰도가 올라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대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결국 채용 응시생들도 잠재적인 기업의 고객들이니깐요. 기업이 취준생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해져도 그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좋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사례도 있는데요. 정부가 주최하는 공정·블라인드 채용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공공기관 중 최초로 3년 연속 수상한 주택금융공사의 경우엔, 채용정보를 상세히 공개하고, 구직자를 대상으로 채용 만족도 조사를 해 그 결과를 다음 채용 과정에 반영해왔는데요.

특히 탈락한 구직자가 스스로 취업역량을 확인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강·약점 분석보고서'를 제공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주금공의 인사담당자는 "분석보고서 제공이 기업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공정채용을 통해 능력 있는 우수 인재를 뽑고, 기업의 잠재 고객도 확보하며,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라며 이러한 과정이 기업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습니다.

●채용은 기업고유의 권한…법적 강제 가능할까?

하지만 채용 절차 투명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공정채용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기존 채용절차법에도 ▲회사가 채용할 때 구직자에게 용모와 키 등 신체적 조건이나 출신 지역, 부모의 직업과 재산 등의 정보를 요구하는 걸 금지한다 ▲누구든 회사에 부당한 채용 청탁과 압력을 가해서도 안 된다 ▲회사는 거짓 채용 광고를 내거나 구직자에게 채용 심사 비용을 부담시킬 수 없다 등 '절차적 공정'은 충분히 명시돼 있습니다.

인맥과 금력을 동원한 특혜 채용은 물론, 노조원 자녀, 정년퇴직자 가족 우선 채용 등 '현대판 음서제'도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만큼, 채용 내용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정부도 공정채용법에도 반칙과 특권을 이용한 부정한 채용의 금지와 제재를 명문화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채용과정에서의 결과 조작 등을 위반행위로 보고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한다는 건데, 하지만 이는 정부로서도 굉장히 고민스러운 대목입니다.

채용은 기업의 독자적인 인사권인 만큼 채용기준을 두고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권을 훼손하는 과도한 간섭일 수 있어서입니다. 또 회사마다 채용 기준이 다른데,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기도 어렵고요.

과연 채용절차의 공정화를 법률로 강제할 수 있느냐 하는 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도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이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선 회사마다 채용의 자유는 보장해주되,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채용절차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현대판 음서제 '노조 고용세습'은 법으로 못막아

최근 고용부가 최근 100인 이상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등 국내 40개 기업에서 노사가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조의 고용세습은 청년들의 취업기회를 박탈하고 공정성을 훼손하는 오랜 병폐로 지적돼 왔지만, 이러한 고용세습에 대한 제재는 공정채용법에서는 다루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단체협약은 노사간 협의사항인데다, 기존 판례와 충돌할 소지가 있어서인데요. 2020년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조합원 자녀를 회사가 특별채용 하도록 한 단체협약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해당 단체협약 조항을 없애도록 한다면 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른바 '부모 찬스'를 뿌리뽑기는 힘들다니 공정채용법이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데요.

다만, 노사가 합의해서 체결한 단체협약이라 해도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1조 제3항 및 제93조 제2호에 따라 행정관청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시정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지난 8월, 고용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 1057개를 조사한 결과, 63개의 단체협약에서 위법한 '우선·특별 채용 조항'을 적발해 시정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 직원 뽑는데 MBTI까지 보나요?…진정한 공정채용이란

최근엔 MZ세대를 중심으로 MBTI 검사가 크게 유행인데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란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로 검사자를 내향(I)·외향(E), 직관(N)·감각(S), 감정(F)·사고(T), 인식(P)·판단(J) 4가지 분류 기준에 따라 16가지 심리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합니다. MBTI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채용에까지 활용되고 있습니다. 채용과정에서 MBTI 결과지나 MBTI 유형을 바탕으로 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회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그런데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MBTI는 개인의 성향일 뿐이고 역량과는 관계가 없는데 채용의 중요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어서이죠. 또 최근엔 채용 절차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 역량검사도 많이 진행되는데요. 지원자의 역량과 인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한다지만, 구직자들로서는 기계 면접관에게 평가를 당한다는 것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용부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5일까지 공정한 채용과 관련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공정채용법 온라인 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요.채용 과정에서 겪은 공정·불공정 경험, 공정채용법에 담기길 바라는 내용, 공정채용 확산을 위한 정부의 역할 등을 묻는 설문조사였는데, 공정 채용을 위해 어떤 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형식상, 절차상의 '공정채용'이 아닌 진정 청년 구직자들이 원하는 '공정채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법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민정기자 jmj@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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