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학교 다닝께, LG가 보이더라"..까막눈 할매 시인됐다
“택시가 가면 무조건 빈 택시인 줄 알고 손만 들고 있응께 안 태워 줘. 그란디 1년 학교 다닝께 빈 차라고 딱 써진 것을 알겠더라.”
광주광역시에 사는 양부님(76)씨는 한글을 몰라 택시의 ‘빈 차’ 표시를 읽지 못했다.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우고 나서야 택시가 안 태워주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던 표시들이 글자로 눈에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을 시로 썼다. 제목은 '나만 몰랐던 세상'.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달 양씨와 같은 늦깎이 학습자들이 쓴 시 100편을 엮은 시집 '일흔살 1학년'을 펴냈다. 이 책의 엮은이로 참여한 나태주 시인은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운 분들이 쓴 시에서 우리의 시가 가야 할 곳을 봤다”며 “시를 읽는 동안 옷깃을 여몄다”고 했다.
성인 비문해자 200만명…어린 시절 배움 기회 놓쳐
양씨는 어린 시절 가난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 1946년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4살 땐 어머니마저 잃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아기 돌보는 일을 했다. 스무살이 돼 결혼을 하고 나서는 농사일하랴 집안일 하랴 가난에 치여 공부는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7살 때 동네에서 야학인가 한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호롱불 쓰고 ‘가’자를 쓰더라고요. ‘가’자를 한 번 딱 그리니까 고모가 ‘이 X아 뭐하러 왔냐’고 목구녕을 잡아다가 탁 밀어부더라고. 그때 쫓겨나갖고 시방도 내가 ‘가’자는 엄청 잘 알아요. 그때 고모가 야학 하게만 놔뒀어도 내가 글씨를 좀 잘 알 것인디….”
새벽에도 글 공부…“내 책 내는 게 꿈”
지난 3년간 양씨를 가르친 윤인자 강사는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면 3장이고 5장이고 써오신다. 틀린 걸 빨간 글씨로 고쳐드리면 그걸 또다시 써오신다”고 했다. 또 “새벽 2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공부하신다고 한다. 새벽에 물어보는 문자가 와 있는 적도 있다”고 했다. 윤 강사는 “어머님들 열정을 보면서 '나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가 배우는 셈”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한글을 만난 뒤 “일흔 나이에도 내가 커졌다”고 말했다. 예전엔 은행에 가도 직원에게 매번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해야 했지만 이제는 길거리 간판도 읽고, 냉장고에 넣는 재료에 메모도 쓸 수 있어서 “기분이 째지게 좋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꿈도 사치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쓰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나는 공부 좀 열심히 해갖고 온 세계에다 책을 한번 내고 싶어요. 내 살았던 얘기 좀 쓰고 싶어요. 아기 때 부모 잃고 구박당하고 눈물로 서러운 세상을 살았던 거. 내 소원은 다른 거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조목조목 써서 이런 사람이 이렇게 고생을 했다. 이렇게 변했더란다, 그게 내 소원이에요.”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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