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과몰입 에디터의 콘서트 관람기. 케이팝은 역시 오프라인이 제맛!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받은 DM에서 시작됐다. “마루야, 너 오마이걸 팬 미팅 같이 갈래? 4월 30일이야.”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오마이걸 정규 2집 앨범 구매 인증 샷을 본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팬 미팅…? 오마이걸이 팬 미팅을 해? 그러니까 실제 공연을 한다고…? 공연을… 할 수가 있나?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과 멀어진 채 온갖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콘서트의 사분할 캠에 절어 있던 뇌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갈게! 가자!”
그렇게 4월 30일 나는 광운대동해문화예술관 앞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은 진짜였다. 오마이걸의 현수막으로 뒤덮인 건물, 팬들의 인증 샷을 위한 등신대, 그리웠던 티켓 부스, 입장을 도와주는 요원들까지. 멤버들의 라이브는 훌륭했고 ‘오마이걸 마케팅팀’ 컨셉트로 제작된 팬 미팅 VCR도, 새롭게 페어를 짜서 선보인 무대도 모두 노력한 티가 역력했다. 1일 2회차로 진행된 팬 미팅은 저녁 공연도 예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토록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있을까. 눈물을 보이는 멤버들을 보며 마음이 벅차 올라 덩달아 울었다. 오마이걸이 단독 콘서트 하면 꼭 간다! 앞으로 평생 오마이걸 한다! 각오를 다지며 집에 돌아오는 길, SNS 피드를 살피니 같은 날 에이티즈는 런던에서, 위너는 올림픽홀에서 2년만의 완전체 콘서트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와, 팬데믹 진짜 끝났나 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멤버 지호가 팀을 탈퇴하면서 나는 엉겁결에 일곱 명 오마이걸의 마지막 무대를 본 사람 중 하나가 돼버렸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것에 깊은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나와 K팝 아이돌 콘서트 사이에는 20년 넘는 역사가 존재한다. 시작은 2001년 클릭비 콘서트. 시간이 흐른 지금, 콘서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서 봤는지 앉아서 봤는지, 기억 속의 시야가 내 진짜 기억인지, 나중에 구입해서 마르고 닳도록 돌려본 콘서트 비디오(!) 영상인지조차 흐릿하다. 오히려 선명한 건 티켓 값 입금을 위해 처음으로 무통장 입금을 해봤던 것, 클릭비의 상징색이던 초록색에 맞춰 좋아하는 후드 티셔츠를 챙겨 입은 자질구레한 기억들 쪽이다. 많은 이들이 K팝 아티스트 공연을 팬을 위한 이벤트로 생각한다. 물론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공연 만족도가 높을 확률이 크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껴안을 수 있는 일명 ‘콩깍지’가 장착돼 있으니까. 하지만 공연장은 엄정한 판단의 잣대가 오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수의 기본기인 ‘춤’과 ‘노래’가 두세 시간에 걸쳐 숨을 곳 없이 적나라하게 평가받게 되니 말이다.
노래 몇 곡은 괜찮지만 콘서트에서 즐기기에는 세트 리스트나 안무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음원 이상의 라이브 실력에 감동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칼군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가수가 설렁대는 ‘뚝딱이’라면? 실물 식별이 가능한 좌석은 운 좋은 소수의 관객들에게 배정되므로 대부분 관객의 시선은 무대보다 공연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머무른다. '보정' 따위 없는, 땀 범벅이 된 내 최애의 현실 모습까지 껴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무대 동선을 오가는 중에 센스있는 멘트와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팬들을 챙기고 외모까지 완벽하기를 기대한다는 게 양심 없는 일이란 걸 알지만…. 어쩌겠나.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앵콜 무대가 펼쳐지기 직전에 멤버 한 명 한 명이 소감을 전하는 후반부 멘트 시간은 감동의 도가니가 될 수도 있지만 기대만큼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경우 반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아티스트와 무대, 팬이 같은 시공간을 나누는 콘서트라는 특별한 순간에도 SNS에 올라오는 ‘감사합니다’ ‘보고싶어요’ ‘사랑해요’와 구분되는 그 이상의 진심 어린 언어를 들을 수 없다면. 그 아티스트를 인간적으로 꾸준히 응원할 수 있을까?
이처럼 ‘단짠’이 있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어떤 필터도 없이 직접 아티스트를 판단하고 관람할 수 있는 현장성은 콘서트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팀에서 내 최애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콘서트에 가라.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는 멤버가 가슴이 점지해 준 최애다. 입덕할지 말지 고민되는 팀이 있다면? 역시 콘서트를 가라. 이들의 무대나 음악적 방향성, 팀 분위기가 내 취향과 맞는지, 앞으로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 대략 그려질 거다. K팝 아티스트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성장의 서사다. 연습생 기간을 마치고 풋풋하게 무대에 섰던 멤버들이 점점 노련해지고, 팬덤이 커진다. 그리고 그성장의 기점마다 ‘콘서트’가 있다. 잘 짜인 음악방송이나 음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무대를 구성하는 법을 알게 되고, 공연장 규모도, 공연 가능한 지역의 개수도 점점 넓혀 나간다. 데뷔 후 첫 번째 콘서트, 국내 최대 규모 공연장인 올림픽주경기장 혹은 고척돔 입성, 첫 번째 해외 공연이나 페스티벌 무대가 좀 더 각별하고 의미 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K팝 신이 다시 시동을 건 내 마음을 알아챈 걸까. 오마이걸 팬 미팅을 보고 온 며칠 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이하 TXT)의 첫 월드 투어 뉴스가 떴다. 대부분의 월드 투어는 서울 콘서트에서 시작해 세계로 뻗어나간다. 2019년 3월에 데뷔한 TXT는 지난해 첫 콘서트를 열었지만 오프라인 콘서트 경험은 없다. 콘서트 장소인 잠실실내체육관의 실제 수용인원은 1만 명 남짓. 성공만 한다면 제법 가까이에서 무대를 느낄 수 있을 거다. 좋아, 너로 정했다! 3년만에 티케팅을 ‘결’심’했다. 결심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정도로 K팝 아티스트의 공연 예매 과정은 순탄치 않다. 거의 모든 콘서트가 팬덤을 우선시하는 팬클럽 선예매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케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TXT 팬클럽 ‘모아(MOA)’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말. 내 마지막 팬클럽 가입 이력을 떠올려 본다. BTS가 방탄소년단으로 불리던 2014년에 가입했던 A.R.M.Y 2기. 당시 팬클럽 가입은 정해진 모집 기간에 신청한 부지런한 자들에게만 열린 이벤트였으나 2022년의 팬클럽은 관대하게도 24시간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를 비롯 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 입점한 ‘위버스샵’에서 TXT 멤버십을 결제하면 끝! 이렇게 위버스샵 앱을 설치하는 날이 기어코 오는구나. 멤버십 키트도 보내주지 않으면서 가입비 2만2000원을 내는 것이 약간 섭섭했지만 성숙한 직장인으로서, 수빈과 휴닝카이가 위버스 라이브를 할 때 먹을 치즈 빙수 한 그릇 산 셈 치기로 했다. 2022년의 K팝 콘서트에는 또 다른 신문물이 추가되어 있었다. 다름 아닌 팬클럽 추첨제. 티케팅에앞서 추첨제를 신청한 이들에게 랜덤으로 좌석을 먼저 배정해 주는, 수강 신청 때도 항상 실패해 혼자 비인기 교양수업을 떠돌았던 나같은 자에게는 구원 같은 제도였다. 당당한 한 명의 모아로서 응모 기간에 맞춰 추첨제에 응모했다. 드디어 당첨자 발표일. 세상이 내 과몰입을 돕고 있는 걸까? 당첨이었다. 이제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 기간 내에 팬클럽 멤버임을 인증하고, 13만원 상당의 티켓 값을 결제한 뒤, 추첨제 좌석 발표일만 기다라면 됐다.
그리고 7월 2일. 경건한 마음으로 공연 1시간 반 전, 잠실에 도착했다(물론 사운드체크 시간에 일찌감치 도착해 슬로건이나 직접 만든 포토카드를 주고받는 팬들도 많지만!). 예매 내역과 신분증 확인 후 콘서트 티켓을 교환해 주는 티켓 부스에서, 내 앞에 서 있던 모아가 신분증으로 ‘청소년증’을 내는 것을 봤다. K팝 덕분에 이렇게 청소년증도 직접 보는구나. K팝 콘서트에서 응원봉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블루투스로 자동 연동되는 응원봉은 콘서트 분위기에 맞춰 시시각각 색을 바꾸고, 구역별로 다르게 작동하기도 하며, 응원봉을 든 관객석의 풍경이 하이라이트로 콘서트 VCR에 사용되는 등 그 자체로 연출의 일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이왕 제대로 즐기자는 마음으로 ‘모아봉’을 사고자 공연장 앞 위버스샵 부스로 향했으나 이미 품절이었다. 섭섭함은 잠시, 오랜만의 콘서트는 응원봉 없이도 신났다. ‘LO$ER=LO♡ER’부터 ‘Anti-Romantic’까지 열 곡 넘는 곡을 쉬지 않고 부른 멤버들은 주목받는 4세대 보이 그룹다운 라이브 기량을 드러냈다. 스마트폰 촬영이 자유롭다는 것도 신세계였다. 공연이 끝난 뒤 〈엘르〉 홍콩 에디터를 만났다. 패션 에디터인 그는 의상에 아쉬움을 피력했으나 나는 분홍색 자카드 소재에 하트 패턴으로 비즈를 단 오프닝 의상을 열심히 옹호했다.
이후에도 도전하고 싶은 콘서트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세븐틴 콘서트나 국민가수 아이유의 콘서트는 감히 티케팅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추가 일정까지 오픈됐던 (여자)아이들의 콘서트는 예매에 실패했다. 역시 가벼운 마음의 어중이떠중이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K팝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슬픔의 고배를 마신 나는 8월 20일이 돼서야 수원 월드컵경기장 앞에 서 있었다. ‘2022년 SMTOWN Live’를 위해서. K팝의 거대한 한 축인 SM 가문의 모든 일원이 총출동하는 이 행사가 5년만에 오프라인 공연으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확인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15주년 기념 컴백을 예고한 소녀시대도 출연하는가? 소녀시대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 단독 콘서트를 보지 않은 것이 깊은 한으로 남아 있던 터였다. 이조차 5년만의 컴백이니, 다음 소녀시대 완전체 무대를 볼 날이 또 언제일지 모른다. 정말이지 K팝은 타이밍이다! 한 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좋아하는 그룹의 무대를 목도할 수 있을지, 어떤 ‘레전드’ 무대를 놓치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화창한 토요일 오후 ‘서울숲(SMTOWN)역’에서 수인분당선에 탑승해 32개의 역을 거쳐 실려 갈 때, 공연장 근처의 호텔에 체크인할 때, 도무지 택시가 잡히지 않아 나와 목적지가 같은 게 분명해 보이는 수많은 여성들 사이에 끼어 시내버스에 오를 때, 중간중간 ‘현타’가 왔지만 공연장에 도착하는 순간 내 몸에 도는 분홍색 피를 감지할 수 있었다. 과연 4시간의 공연을 견딜 수 있을까는 기우였을 뿐. 의외의 치트키는 슈퍼주니어였다. 공연 중간 입담을 보여주려나 하는 예상과는 달리 이 17년 차 그룹은 그야말로 몸이 부숴져라 춤췄다. ‘Don’t Don’과 ‘갈증’ 시절의 군무가 좋아서 슈퍼주니어 콘서트에 갔던 2008년의 추억이 떠올랐다. 케이팝 역사 상 가장 난해한 활동곡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NCT의 ‘Raise the Roof’도 이곳에서만큼은 ‘미로틱’이나 ‘쏘리 쏘리’ 뺨치는 히트곡이다. 그리고 드디어 소녀시대 등장! 지금 이 순간도 ‘Forever 1’ 도입부와 함께 터져 나오던 떼창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 ‘엑소엘’ 들과 ‘엔시티즌’ 들이 가장 많았지만 ‘소원’은 물론 ‘샤이니월드’ 응원봉도 정말 많이 보였다. 다사다난하고 명암도 많은 K팝 세계를 끝없이 견인하는 것은 이런 감동의 순간이다. 아티스트와 팬이 하나가 되는 순간. 이 긴 시간을 버텨내며, 팬들에 대한 보답과 무대에 대한 애정으로 여전히 당당하고 노련한 모습으로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내 가수의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고 함성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예정된 콘서트를 이틀 앞두고 멤버 중 두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돼 취소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부활한 NCT Dream의 콘서트 또한 성장과 팀워크라는 K팝 팬덤을 뭉클하게 만드는 서사가 넘실대는 공연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이런 응원과 사랑을 받는다는 게 정말 행운이고 행복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어떻게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타는 멀리에서 빛난다. 그러나 빛나기 때문에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 반짝이는 파편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 간다. 자기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을 아낌없이 무대에서 보여주기로 결심한 이들을 목놓아 응원하기 위해서. K팝 공연이 돌아왔다. 다음달에도 나는 공연장에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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