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플의 혁명은 밥상에서 시작된다
[류제성(변호사)]
작년 혼인 건수가 19만 3000건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해 최근 10년 동안 연속 감소세이고, 전년도 대비 9.8% 줄었다고 한다. 1인 가구도 갈수록 늘어 작년에 처음으로 그 비율이 40%를 넘었다고 하니 비혼이 대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학 나와 취직하고 나이 차면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정상적인' 삶을 왜 거부할까?
한편 육식인구에 비해 미미한 숫자이긴 하지만 채식인구도 갈수록 늘어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10년 만에 10배가 늘었고, 올해는 25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건강과 맛을 위해 고기, 유제품이 꼭 필요하다는데 왜 채식인구가 늘어날까?
비혼이라고 해서 비건(채식)이거나 그 반대라는 법은 없고, 비혼이 모두 자발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겠지만 비혼이면서 비건인 커플, 편지지(필명)와 전범선이 함께 쓴 책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를 보면 왜 다른 삶을 선택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 두 사람은 비거니즘을 '무해한 삶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 pixabay |
이 책에는 편지지와 전범선이 한 단락씩 번갈아가며 쓴 서로 만나서 사는 이야기, 비거니즘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전범선의 글 다음에는 편지지가 쓴 채식 레시피가 정갈하고도 맛있어 보이는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니까 비거니즘에 대한 에세이이자 실용적인 비건 요리책이기도 하다.
편지지는 결혼이란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이다. 전범선은 비혼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결혼에 뜻이 없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지구 환경을 위해서는 비출산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편지지는 과거 1년 이상 계속된 데이트 폭력으로 신경쇠약, 우울증 등과 함께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겪게 되었는데, 고기와 유제품을 자제하라는 의사들의 공통적인 권고에 따라 육식을 중단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병이 호전된 편지지는 채식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동물권에 눈뜨고 비건이 되었다.
편지지에게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사회를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세상과 공존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비거니즘을 통해서는 그 고리를 확장해 종을 아우르는 평등을 꿈꾸고 사랑의 의미를 배운다.
전범선은 그룹 '양반들'이라는 밴드의 보컬이자 동물권 운동가다. 대학 동기 대부분 금융, 컨설팅, IT 관련 기업에 종사할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 자신도 미국 로스쿨에 합격해 같은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진학을 포기하고 예술가가 되기로 했다. 자사고 출신에 아이비리그 유학까지 다녀온 금수저로 알려진 그는 글쓰고 노래하는 삶을 택한 후 대출금과 월세, 카드 값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두 사람은 비거니즘을 '무해한 삶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비거니즘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 삶, 서로 돕고 돌보는 삶이다. 비거니즘은 단지 채식주의가 아니라 '동물권에 기반한 윤리철학'이다.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은 자연의 일부로서, 생태의 구성원으로 공존하기에 동물의 건강이 곧 우리의 건강이다.
특히 전범선은 모든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그 밑바닥에 비인간동물이 있기에 비거니즘이 동물, 여성, 노동, 생태, 기후 등 진보 정치를 통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비거니즘은 탈육식이기 전에 죽임 반대, '살림', 즉 살리는 철학이자 살리는 운동이다.
살림은 정복과 착취를 자행하며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가 아닌 생명의 지속과 행복을 목표로 하는 탈성장이다. 살림은 여성의 할 일로 폄하되어온 생명을 돌보고 먹거리를 챙기는 일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밥상에서 시작하는 혁명', 페미니즘이다.
여기까지 보면 전범선은 철저한 페미니스트 비건이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의 살림살이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정리 정돈, 요리, 청소에 진심인 편지지와 달리 전범선은 배달음식과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집안 살림은 늘 뒷전이다.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실천
▲ 나의 채식은 어머니나 아내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실천으로서의 비거니즘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
ⓒ pixabay |
이 대목에서 뜨끔하면서 전범선과 동질감을 느껴 웃음이 났다. 나는 십수 년 전에 채식을 잠깐 했었다.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정보를 접하고, 채식을 통해 만성적인 건강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건강이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당시는 건강 외 동물해방이나 기후위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1년 정도 하다 흐지부지되었다. 그조차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중 어머니와 잠시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어머니도 채식을 하면서 밥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싸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다시 아내를 따라 채식을 하고 있다. 아내는 기후위기·환경파괴와 육식의 관계, 동물의 처우와 관련한 정보를 접하면서 채식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혼자 실천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요리를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대충 한 끼 때우자는 마음이 강한 나와 달리 아내는 요리를 좋아한다. 단지 식단에서 고기를 빼는 채식이 아니라 맛과 영양이 풍부한 채식 요리를 찾아가며 요리를 한다.
그러니까 나의 채식은 어머니나 아내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창하게 채식을 해야 할 윤리적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떠들지만, 정작 스스로의 노력으로 실천하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어디 가서 페미니스트인 척하지 말라는 핀잔도 자주 듣는다. 그럼에도 멋진 몸매와 건강을 자랑하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 아닌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실천으로서의 비거니즘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 편지지, 전범선의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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