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젊은 치매가 걱정된다면, 이게 최선의 방법

김지은 2022. 10. 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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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 지음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김지은 기자]

오랜만에 중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자꾸 깜박거려 큰일이라는 대화가 40대에 벌써 단골 소재가 됐다. 자연스레 부모님의 건강 걱정도 이어진다. 올해 들어 동창의 어머니 중 두 분이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얼마 전 우리 엄마는 버스에 지갑을 놓고 내리셨다면서 걱정을 한가득 하셨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자꾸 깜박거리는 게 치매가 오려는 건 아니겠지?"
"엄마, 나는 20대 때에도 버스에 지갑을 두고 내려서 차고지까지 가서 찾아 왔는 걸? 그럼 난 20대부터 치매였겠네!"

내 말은 듣는지 마는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엄마는 어떤 병보다도 치매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나는 뇌를 얼마나 모르고 있었나
 
▲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해당 도서 사진
ⓒ 김지은
그즈음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뒷표지의 '(이 책을 읽고) 더 잘 학습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됐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와 홀린 듯 결제를 했다. 저자인 이인아 교수가 대중들에게 쉽게 뇌인지적 원리를 전달해주려고 쓴 책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뇌의 원리와 시스템, 해마와 인공지능에 대한 설명이 들어간 총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각 챕터 사이에 있는 Q&A는 일반인들이 가장 궁금해 할 부분을 콕 짚어 설명해 주어 좋았다.

첫 장에 나오는 뇌의 기능인 '학습'에 대한 설명을 보며 내가 얼마나 뇌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학습' 하면 수업받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학습'은 훨씬 포괄적인 개념으로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생명체는 '생명'이 붙어있는 한 계속 학습하고 그 목적은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다.

뇌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니. 며칠 전 중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앞번호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기억력이 나빠졌구나' 하고 우울해 했던 일이 떠올랐다. 생존과 관련 없는 것이어서 뇌가 특별히 기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억은 '일화기억', '재인', '절차적 기억'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일화기억'은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 '재인'은 내 앞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보는 것(눈앞의 사과를 사과라고 인식하는 것), '절차기억'은 동작 기억(자전거 타기, 악기 연주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었던 점은 절차적 기억은 의식적으로 꺼내려고 하면 오히려 기억을 찾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연습실이나 체육관에서는 잘 되던 것도 관중 앞에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연주가나 운동선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절차적 기억이 뇌에서 알아서 하도록 고난도의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책을 사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어떻게 하면 뇌를 나이가 들어서까지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였다. 지금도 그다지 똑똑한 편이 아닌데 나아지긴커녕 더 안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좀 암울하다.

치매가 무서운 건 엄마뿐만이 아니다. 책에서는 일화기억이나 회상, 재인 등을 담당하는 뇌의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더 빨리 노화되는 듯하다고 했다. 이 영역 세포는 스트레스, 알코올 섭취에 매우 취약해서 격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젊은 나이에 기억력 감퇴가 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잦은 빈도로 이 영역을 사용한다면 기억의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열심히 학습하고 기억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즉 뇌를 계속 쓰는 것이 학습과 기억의 노화를 더디게 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동기'와 '회복력', 예상과는 달랐다

엄마로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서 창작의 재료를 뇌에 많이 넣어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또한 학습의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

가장 이상적인 학습은 그 학습을 하는 이유를 간절히 느끼게 하면 저절로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학습 의지가 무너지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해주는 '회복력'의 중요성도 언급되었다. 그러나 동기가 강력하다면 회복력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모든 경험을 아이가 잘 받아들였는지는 미지수다. 모든 것이 아이에게 유의미한 상상력의 재료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행을 많이 다니며 "이것 좀 봐. 신기하다. 저것 좀 봐. 저런 건 처음 보지?"라고 했지만 집순이인 딸은 그럴 때마다 집엔 언제 가냐고 되물었다. 책에는 없지만 아이의 코드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부모라면 유의미한 학습을 위해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아이에게 맞게 어떻게 동기 부여할 것인가가 큰 숙제다. 아쉽게도 난 아직 우리 딸에게 맞는 동기 부여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 딸에게 옆집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시키는 걸 따라 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회복력'의 중요성에 대해 읽으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회복 탄력성'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어 그에 대한 기사나 책, 다큐멘터리가 쏟아져나왔다. 그래서인지 여러 기업들이 직원을 뽑을 때 회복탄력성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압박 면접을 실시했다. 스트레스를 받고 어떻게 회복하는지, 얼마나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즈음 한 회사에 면접을 본 나는 인격적인 모독에 화가 나서 면접장을 나와 눈물을 터트렸다. 면접관은 나에게 '인적성 검사 결과를 보니 이해력이 떨어지는데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냐', '상사의 지시를 제대로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된다'는 등의 여러 모욕적인 말을 했다. 그 회사에 나를 추천했던 지인은 우는 날 보며 "네가 회복탄력성이 낮구나"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회복탄력성이란 인격적인 모독을 받았을 때 그 모독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는 게 아니다. 회복탄력성은 강한 동기가 있을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때의 일을 잘 털어냈다고 생각했지만 난 은연 중에 내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닌 걸 안 지금, 이제야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

안 읽던 장르의 책인데 잘 읽었다 싶다. 내가 알고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았던 여러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잘못된 정보들은 수정할 수 있었다. 일반인 대상으로 쉽게 쓰여진 책이라 이 분야에 대한 책을 읽고자 한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뇌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며칠 뒤, 머리를 감는데 기억나지 않던 중1 때 앞번호 아이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다. 계속 그 아이의 이름이 뭔지 생각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머리를 헹구며 으흐흐 소리 내 웃었다. 과연, 뇌를 많이 쓰는 것이 기억의 노화를 늦춘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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