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방구석 연애에 몰입하는 이유

이가현 2022. 10. 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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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예능프로그램 ‘환승연애2’에 빠졌다. 드라마나 예능은 귀찮아서 챙겨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예능은 무슨 이유에선지 본방 사수는 물론이고 이른바 ‘덕질’ 수준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

새 회차가 올라오는 금요일 오후 4시에 경건한 마음으로 대기한다. 시청이 끝난 뒤에는 복수의 카카오톡 단체방을 열곤 토론을 시작한다. 이번 주에는 어느 출연자의 입장이 이해가 갔으며, 이 출연자의 속마음 인터뷰가 가장 좋았고, 향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까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편집 영상들을 보면서 복습한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에 이렇게까지 몰입할 일이냐고 이해 못하는 반응도 이해한다. 하지만 최근 연애 예능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걸 보면 연애 예능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기는 한 것 같다. 원조 격인 ‘짝’이 2014년 불미스러운 일로 종영한 뒤 ‘하트시그널’이 2017년 다시 포문을 열었다. 일반인 출연자들은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고 이때부터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난해 과거 연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재회하거나 또는 새로운 연인을 찾는다는 독특한 포맷의 ‘환승연애’가 흥행했다. 이후 ‘나는솔로’ ‘돌싱글즈’ 등 여러 연애 예능이 등장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인기는 현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연애 예능의 흥행은 비연애·비혼이 늘어가는 지금의 추세와 맞물려 있다. ‘먹방’이 유행했을 당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관계 맺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젊은 층들이 ‘먹방’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또 경제적인 이유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는 ‘N포세대’의 씁쓸한 사회상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연애 예능도 마찬가지다. 연애와 결혼이 낭만적이고 행복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내 삶에선 다소 사치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젊은 세대에 퍼져 있다. 연애나 결혼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차라리 개인적 발전과 행복에 투자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는 판단이다. 2020년 통계청 조사에서 15~39세 남녀 1만101명을 대상으로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을 물었는데, 남녀 모두 절반 넘게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2030뿐 아니라 3040도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해 통계청 계간지에 실린 한 보고서에서 30~44세 남녀를 조사한 결과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응답한 남성은 13.9%에 그쳤다. 여성은 3.7%에 불과했다.

또 다른 흥행 요소 중 하나는 연애라는 소재가 가진 보편성이다. 비연애·비혼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누구든 한 번쯤은 해봤을 연애는 공감하기 쉬운 소재다. 게다가 누구든 흥미를 느낄 만하다. 거기에 더해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출연함으로써 시청자들은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해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통한 파급력 확대 등의 영향도 무시 못할 요소다.

결국 연애 예능의 유행에는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젊은 세대의 ‘결핍’과 ‘공감’이 모순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사치처럼 느껴져 포기한 감정과 관계지만 한편으로는 결핍된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설렘, 긴장, 어색함, 행복, 서운함, 절망, 슬픔, 분노. 출연자들이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자신의 경험에 대입해 공감한다.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 출연자들이 각각 어떤 감정을 표출하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면서 자신의 지난 연애를 떠올린다. 연애에 있어 훨씬 성숙한 어떤 출연자를 보면서 올바른 태도를 배우기도 하고,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한 출연자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연애 예능은 이처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순기능을 한다. 비록 그게 ‘글로 연애를 배웠다’는 말처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속 세계에서 끝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젊은 사람들이 연애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게 어딘가 싶다. 앞으로 웰메이드 연애 예능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이유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이 유행이 연애 포르노로 흘러가지는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최근 한 OTT가 MZ세대의 진짜 연애를 표방하며 내놓은 한 예고편을 보곤 ‘젊은 꼰대’로서 적잖은 충격을 받아서 하는 이야기다. ‘먹방’만 봐도 시각적 자극을 불편할 정도로 극대화한 푸드 포르노는 성공 못하지 않았던가.

이가현 온라인뉴스부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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