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시 쓰며 살아온 건 축복.. 이젠 낙법을 배워야 할 때"

김남중 입력 2022. 10. 8. 04:09 수정 2022. 10. 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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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정호승 시인
정호승 시인이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자신의 열네번 째 시집이자 등단 50년을 기념하는 시집인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정호승(72) 시인이 지난 3년 동안 쓴 시 115편을 묶어 새 시집을 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는 제목의 이 시집은 그의 열네 번째 시집이자 등단 50년을 기념하는 시집이기도 하다. 1979년 발표된 그의 첫 시집은 ‘슬픔이 기쁨에게’이다. 첫 시집과 이번 50주년 새 시집 제목에 나란히 ‘슬픔’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정호승은 ‘슬픔의 시인’이다.


“시는 나를 안 버리고 데려와”

지난달 26일 저녁 지방 강연을 마치고 올라오는 시인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선배 문인들 중에서 50년 동안 시를 쓴 사람은 많지 않다. 50년 동안 이 험난한 시대에 시를 쓰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축복이다.” 정호승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중간에 시를 한 편도 안 쓴 시기가 있었다. 그 시간을 다 합치면 10년이 넘는다. 나는 시를 버린 적이 있었지만, 시는 나를 버리지 않고 어머니처럼 손을 잡고 여기까지 데려왔다.”

‘낙과’ ‘빈 의자’ ‘낙곡’ ‘빈 물통’ ‘낙수’ ‘낙석’ ‘낙심’ ‘낙법’ ‘빈집’ ‘일몰’ ‘수의’ 등 새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제목은 유난히 쓸쓸하다. 시 제목들만 훑어봐도 시집의 주제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 정호승은 “어느 순간부터 떨어질 ‘낙(落)’ 자에 관심이 가더라”면서 “내 나이가 70대 중반을 향해서 가고 있다. 이제 인생이라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법을 배워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 자신의 죽음을 응시하면서 그것이 시로 쓰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시를 쓰는 것도 죽음을 준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했다.

“전에는 시집 한 권을 끝내면 다시는 시 안 써야지, 이제는 시 못 쓰겠다, 그러면서 한 1년은 시 생각도 안 하고 살았다. 그러다 1년쯤 지나면 다시 시를 쓰고. 그런데 이번에는 시가 계속 나와서 중간에 끊고 시집을 묶어야 했다. 시집을 끝냈는데도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내가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렇구나, 내게는 시를 쓰는 게 죽음을 준비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집의 서시 격인 ‘낙과(落果)’와 시집 제목이 나온 시 ‘택배’는 죽음에 대한 정호승의 사유를 잘 전해주는 작품들이다. 정호승은 다가오는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한다.

‘낙과’는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로 시작해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로 이어지며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로 마무리된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죽음인데, 죽음이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 되는가.

‘택배’의 첫 행 “슬픔이 택배로 왔다”는 인상적이다. 택배는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시인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묻는다. 슬픔을 택배로 받았는데 그 슬픔은 도무지 파악되지 않는다.

정호승은 “죽음은 이별”이며 “이별 중에서도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라고 정의했다. “죽음을 앞두고 왜 영혼이 고통스러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 존재다. 이별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생명의 탄생과 함께 죽음도 같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터넷 유통 시 원문 파괴돼”

정호승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1100여편의 시를 발표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 중),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꽃 지는 저녁’ 중) 같은 시구나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같은 그의 시집 제목은 누구나 한 번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이동원의 ‘이별 노래’ 등 노래로 만들어진 시도 80여편이나 된다.

그의 모든 시집들은 1만부 이상 판매됐고 지금도 꾸준히 중쇄를 찍는다. 시집 초판이 500부, 1000부에 불과한 시대에 그의 새 시집은 초판으로 6000부를 찍었다. 정호승은 “아마도 나는 시집이 꽤 많이 팔리는 시인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시집을 팔아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 잡지사 기자, 출판사 경영자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해왔고 지금은 수입 대부분을 강연에서 얻는다고 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시집을 내서 돈을 벌려는 시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시집은 돈이 안 된다. 시인은 시집을 판매해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했다.

노시인이 시집과 시인의 경제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시집을 통해 시를 읽으라”는 얘기가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시를 읽는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늘었다. 시를 접하고 활용하려는 욕구도 강해졌다. 그런데도 시집은 팔리지 않는다. 시집을 안 사고 인터넷을 통해 시를 읽는 문화가 퍼져 있다. 문제는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시가 원문을 파괴한다는 데 있다.

“인터넷에 내 시가 많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시가 지니고 있는 형태의 본질, 그러니까 연 구분, 행 갈이, 이런 게 다 파괴돼 있다. 또 한 편의 시는 전체로 읽어야 완성되는데,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전체인 것처럼 읽는다. 시인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내가 쓴 시가 아닌데 내 이름으로 유통된다.”

정호승의 시 ‘풍경 달다’는 ‘풍경 소리’로 제목이 바뀐 채 인터넷에 퍼져 있다. ‘강변 역에서’는 ‘강변 옆에서’로 바뀌고.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라는 시구는 “보고 싶은 내 마음이 달려간 줄 알아라”로 변질돼 유통된다. 그는 인터넷에서 자기 시에 대한 오류를 발견할 때마다 게시자에게 수정 요청 메일을 보내고 포털사이트에 게재 중지 요청을 한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를 열어 시 하나를 보여줬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유명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다. 그런데 시인 이름이 정호승으로 돼 있다. 신문 기사와 칼럼에서도 시 제목이나 시구, 시인을 잘못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퍼진 오류가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정호승은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시는 원문이 거의 90% 파괴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인터넷 시대에 시의 인구는 늘어났지만 시는 파괴돼 버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시의 독자라면 시집을 통해서 시를 만나야 한다. 시에는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까지 시인의 사유가 담겨 있다. 시집을 통해 원문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범어동에 정호승문학관 개관

정호승은 다음달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개관하는 ‘정호승문학관’ 개관 준비에 바쁘다. 범어동 범어천에 그가 초·중·고교를 다닌 옛 집이 있었다. 수성구가 범어천변에 2014년 정호승 시비를 세웠고, 이번에 동네의 빈 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해 정호승문학관으로 꾸민다.

정호승은 “문학관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라면서 “생전에 문학관이 생겨서 좋은 건 자료의 손실을 줄이고 정확성을 기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자료를 안 남겨주기 위해서 다 버리려고 마음 먹었었다고 했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인 1990년대 이전에 쓴 육필원고는 이미 대부분 폐기했다.

그는 “다행히 문학관이 생겨서 남은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게 됐다”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쓴 시들을 오래 보관해 왔는데 그걸 문학관에서 보존할 수 있게 돼서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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