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일어난 시민들, 위기의 보수.. 정권 바뀌나? [권신영의 해리포터 너머의 영국]
[권신영 기자]
▲ 미국 달러와 유로화에 대한 파운드화의 교환 비율을 알리는 영국 런던 시내 환전 안내판 모습. 영국 정부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와 반대로 대폭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 계획을 내놓자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채 금리가 뛰는 등 영국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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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불안함과 사회적 혼란 속에 보수-노동 양당의 전당대회가 개최됐다. 노동당은 9월 25-28일 리버풀에서, 보수당은 10월 2일-5일 버밍엄에서였다. 양 당은 세계 질서 전환기 국면에서 각자가 지향하는 미래를 제시했다. 보수당은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가치관과 낙수 효과 경제론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노동당은 기후 정의와 경제 정의를 결합한 미래를 꿈꿨다.
보수당의 밀어붙이기 "성장, 성장, 성장"
영국 보수당은 현존하는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1834년 창당 후 190년간 두 가지 가치로 지탱했다. 하나는 변화보다는 전통을 고수하는 사회적 보수다. 보수당이 문화와 역사에 갖는 자부심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는 애국심으로, 자연에 대한 사랑은 농촌 사회 중시와 환경 보존주의로 발현된다. 다른 하나는 개인과 시장 경제에 기반한 자유주의다. 19세기부터 2차 대전까지는 자유 무역과 제국주의를 뒷받침했던 고전적 자유주의로 존재하다가 2차 대전 이후 복지 국가 형태에서 밀려나 있었다. 20세기 말, 신자유주의로 부활, 작은 정부와 탈규제를 기반으로 국제 자유 무역을 지지한다.
▲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5일(현지시간) 버밍엄에서 열린 보수당 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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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리즈 트러스 총리는 10월 5일 "경제에 있어서 세 가지 우선순위가 있는데, 그것은 성장, 성장,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장의 원동력을 낮은 세금을 통한 소비 증대와 탈규제를 통한 투자 유치에서 찾았다. 트러스 총리는 세금을 낮추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맞는 일"이라며, "EU의 규제는 연말까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 공언했다. 그는 이와 같은 조치가 "파이를 더 키워 모든 이들이 좀 더 큰 조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미래를 전망했다.
이렇게 성장에 몰두한 결과가 23일 발표한 450억 파운드(72조원)에 달하는 감세안이었다. 이 안에 따르면 상위 1%는 평균 약 1만 파운드(1500만 원)를, 최저 그룹은 22.2파운드(약 4만원) 정도를 절세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조너선 프리드랜드는 "보수당이 계급 전쟁(class war)을 개시했다"고 평했다. 시장은 재정 부담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등을 돌렸다. IMF도 공개적으로 재검토를 권유했다. "물가 상승 속도를 부추"기고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보통 예산안은 독립 기관인 예산심의처로 넘겨지고 심의처는 예산안이 현실화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효과와 주요 변수들을 보고서로 작성한다.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전체 내각이 모여 다시 한 번 토론한다. 하지만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 장관은 모든 과정을 생략했다.
결국 최상위층 감세안은 전당대회 이틀째인 10월 3일 취소되었다. 보수당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당대회 한쪽에서는 상속세 폐지를 논의했다. 최하위 소득층을 위한 보조를 인플레이션에 상응해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트러스 총리는 답변을 거부했다.
첫 정책 실패로 인한 어수선함을 반전시키기 위해 총리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보수당대 "반-성장 연합"이라는 대립 구도를 세웠다. "노동당, 자유민주당, 스코틀랜드당 (SNP), 전투적 노조, 이해집단, 브렉시트를 부정하는 이, 익스틴트 리벨리온(Extinct Rebellion, 기후 운동 단체), 좀 전에 회의장에 들어왔던 사람들"을 성장에 반대하는 이들로 언급했다. "좀 전에 회의장에 들어왔던 사람들"이란 그린피스 운동가들로, 총리 연설 도중 "누가 이것을 지지했는가?"라는 현수막으로 항의했다.
위 리스트를 보면 트러스 내각은 기후 및 환경 문제를 성장의 방해물로 보고 있다. 이 관점을 대변하는 이가 비즈니스·에너지·산업부 장관인 제이콥 리스 모그다. 기후 회의론자인 그는 2019년 지진에 대한 우려로 중단했던 북해 셰일가스 시추를 영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개하겠다고 했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을 산업 혁명 당시 기계를 거부했던 러다이트에 비유했다. 또한 개발을 위해 환경 보호 규제들도 완화시키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브렉시트를 부정하는 이들"은 트러스 내각의 반난민 정서를 대변한다. 전당대회에서 내무 장관 수엘라 브레이버만은 자신의 꿈이 "난민을 르완다로 강제 추방하는 비행기가 뜨는 사진을 <텔레그래프> 1면에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보리스 존슨 내각이 영국 해협을 불법으로 건넌 난민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강제 추방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난 6월 르완다로 강제 이송하는 첫 비행기가 이륙 직전 EU 인권 재판소의 개입으로 무산된 바 있다.
▲ 지난 9월 28일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가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서 연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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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안은 보수당 전당대회보다 1주일 전에 개최된 9월 25-28일 리버풀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발표되었다. 경제안 발표 전 키어 스타머는 논란이 된 보수당 예산안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보수당 정부는 경제에 손을 놓았다. 왜? 그들은 파운드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왜? (그로 인해 발생할) 높은 이자율과 높은 인플레이션은 대체 뭘 위해서? (청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신을 위해선 아니다. 그리고 노동자를 위해서도 아니다. 최상위 1%를 위한 감세다."
그는 부의 재분배에 관심 없는 걸로 알았던 보수당이 알고 보니 가난한 이들의 부를 거두어 부자들에게 재분배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낙수 효과 경제론은 실패했다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밑바닥에서부터 경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래로부터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건설한다"는 미국 바이든 정부나 "영국 (보수당)을 따라가지 않겠다"며 에너지 보조와 함께 최저 임금을 10월부터 9.82 유로 (약 14,000원)에서 12 유로 (약 17,000원)로 인상한 독일, 그리고 횡재세를 도입한 EU와 발을 맞추는 모습이다.
노동당 경제 재건안의 핵심은 새로운 국영 에너지 회사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다. 기존에 민영화된 에너지 회사를 다시 국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 설립된 국영 회사로 정부가 매년 280억 파운드를 투자한다. 탄소 중립 전기를 생산, 기존의 민간 에너지 회사와 경쟁한다는 구상이다.
스타머는 "이 정책이 일자리 확보 차원에서 옳다, 성장을 위해서도 옳다, 푸틴과 같은 독재자로터 에너지 독립이라는 측면에서도 옳다"고 했다. 동시에 "기후 정의와 경제 성장은 함께 간다. 이들은 불가분의 관계다. 미래의 번영은 우리의 공기, 바다, 하늘에 있다"며 사람들과 지구를 위한 에너지 정책임을 강조했다.
이는 기존 아이디어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전시킨 안이다. 노동당은 2010년대 후반부터 에드 밀리밴드 전 노동당 대표를 중심으로 기후와 계층 문제를 동시에 놓고 정책을 발전시켜 왔다. '그린 산업 혁명' 등 큰 개념이 제시되긴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밀리밴드는 이번 전당대회 연설에서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 세계 최초로 2030년까지 전기 생산에 있어 탄소 중립에 도달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지지도에서 앞서는 노동당
이번 양당의 전당대회는 어느 때보다 선명한 정책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영국 사회는 양당이 제시한 미래 사회상 중 과연 어느 쪽을 지지할까.
영국 사회는 노동당이 그리는 미래상에 한발 다가선 듯하다. 유고브(YouGov) 9월말 여론 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이 무려 33%포인트 차이로 보수당을 앞서고 있다. 총선은 2024년 말이지만,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청원수가 10월 6일 현재 56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수가 10만 명이 넘을 경우 하원에서 토론해야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트러스 내각 책임이 크다. 불평등과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보수당의 기본 가치인 전통, 공동체, 농촌, 자연 보호는 훌륭한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 우선주의에 밀려났다. 브렉시트로 나타난 복고성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즉 공동체로서 기능하는 사회 복원에 대한 희망보다는 외부인에 대한 피로감으로 해석했다. 그 결과가 난민 강제 추방을 꿈꾸는 내무부 장관이다. UN 난민기구(UNHCR)는 영국도 서명한 난민 협정 위반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현재 모습은 낡은 것이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주는 과정으로 보인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방향성을 세우는 과정으로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회에 거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방향성 논의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다음 달로 다가온 UN 기후 회의(COP 26)에서 원론적 입장을 넘어 세부 계획은 세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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