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커피향에 IT 접목..동네 아저씨도 커피 장인 도전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32〉 스트롱홀드 우종욱 대표
LCD 모니터 달린 로스팅 머신
스트롱홀드는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대표를 맡은 우종욱은 회사명 스트롱홀드(stronghold)처럼 단단하고 조심스러웠다. 언론이 제 발로 찾아오기 전에 먼저 두드리지 않았다. 2014년 10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월드 IT쇼’에서 스트롱홀드를 만났다. 3D 프린터 등 첨단 기기가 가득한 전시장 한구석에 커피향이 가득했다. 커피 생두를 볶아내는 로스팅 머신이었다. “IT쇼에 웬 커피?”라는 생각에 다가가 보니 미끈한 원통형 머신 본체에 10.1인치 LCD 모니터가 달려있고, 컴퓨터와 전기를 이용해 로스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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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시장서 블루오션 찾아 창업
‘디카’처럼 커피 로스팅 디지털화
원두 산지별로 80여 조리법 완성
연매출 100억원…시장 절반은 중국
원두구매→커피판매 일괄화 목표
“세계 원두시장 10% 장악 꿈꾼다”
」
로스팅은 원래 가스불을 정밀하게 조절해가며 생두를 볶는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나 불 조절을 잘못하면 생두가 타버린다.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힘든 노동이다. 스트롱홀드는 이 모든 과정을 컴퓨터화했다. 전 세계 커피 산지별로 최적화한 80개 이상의 로스팅 조리법(프로파일)을 입력한 태블릿을 탑재하고, 가스가 아닌 전기로 열을 발생시켜 정밀하고 일정하게 콩을 볶을 수 있게 했다. 로스팅 전문가가 아닌 카페 사장님도 커피 로스팅 프로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스트롱홀드는 이 로스팅 기계로 2011년 독일 국제아이디어발명 신제품 전시회(iENA)와 2012년 미국 피츠버그 국제발명전시회(INPEX)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두 전시회는 스위스 제네바 국제발명품 전시회와 함께 세계 3대 발명전시회로 꼽힌다.
사회학 전공자의 새로운 도전
당시 30대 초반의 창업자 우종욱(41)은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이었다. 그는 “급성장하는 커피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려 했다”며 “스마트 로스팅이란 신시장을 열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가마솥이 압력밥솥으로 진화한 것처럼, 한 잔의 커피가 오르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로스팅을 디지털화했다.
우 대표는 의욕이 넘쳤다. 대학 전공과 무관한 분야지만 두 발로 뛰었다. 사업 아이템을 결정한 만큼 사람을 찾았다. 발명과 개발에 소질이 뛰어난 친구, 비슷한 또래의 프로그래머, 커피 로스터 개발자, 전기배선 전문가, 판금 용접 전문가 등을 모아 원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모교인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의 지원과 교내 연구개발(R&D)의 도움도 받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연상됐다고 하면 지나칠까. 스트롱홀드는 창업 초기 서울 고척동의 조그만 아파트 상가를 본사로 삼고, 그 앞의 허름한 건물을 공장으로 쓰고 있었다. 섭씨 600도까지 온도가 오르는 커피 로스팅 머신을 만드는 곳이라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미·중 패권경쟁 속 중국법인 운영
8년이 지나 다시 스트롱홀드를 찾았다. 회사는 지하철 1호선 독산역 앞 번듯한 건물에 있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6㎞ 떨어진 독산동으로 이사한 지 7년째다. 휴대전화 플라스틱 케이스를 생산해 LG전자에 납품하던 회사 건물을 빌려 쓰고 있다고 했다. 제품 생산 공간으로 쓰는 지하 1층엔 과거 회사의 이력을 말해주는 듯, 붉은색 천장 크레인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층고가 높은 2층 붉은 벽돌 건물은 회사 이름처럼 요새를 닮았다. 건물 정면에 난 유리창의 3분의 2에 철판을 덧대고 조그만 공간만을 남겨 마치 포를 쏘는 총안(銃眼)을 연상케 했다.
벌써 창업 13년차다. 2014년 첫 취재 당시 10억원가량이던 스트롱홀드의 매출은 지난해 1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올해는 140억원가량 예상된다. 전체 매출의 절반은 해외에서, 해외 매출의 절반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투자도 이어졌다. 2011년 고려대 기술지주회사를 시작으로, 소프트뱅크벤처스·프리미어파트너스·한국투자파트너스·SBI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140억원을 투자받았다.
첫 취재 당시 우 대표는 “13억 인구의 중국 커피시장이 매년 15%씩 급성장하고 있다”며 “스마트 로스팅 기계뿐 아니라 커피 농장에서부터 원두에 대한 정보와 로스팅 비법 등 커피와 관련한 모든 것의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는 처음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란 악재에도 스트롱홀드에게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시장이다. 우 대표는 “2014년만 하더라도 중국 커피시장은 한국보다 작았지만, 지금은 한국의 3배에,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며 “중국은 직접 원두를 볶아내서 마시는 고급 커피시장은 아직도 작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3년 스트롱홀드 차이나를 설립, 현재 현지인 15명으로 중국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우 대표는 “사드나 코로나로 중국 매출이 일시적으로 급감한 적은 있지만 연 단위로 볼 때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다시 중국 시장이 살아나는 분위기여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개척과 인사 문제로 고통”
스트롱홀드가 그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2017~2019년까지는 연 매출이 50억원에서 정체 상태였다고 한다. 그가 꼽은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스마트 로스팅 머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뿌리 내리는 게 어려웠다. 로스팅은 장인의 ‘예술’ 영역이라는 장벽이 예상보다 높았다. 사람들은 컴퓨터와 전기열을 이용해 원두를 볶는다는 ‘신사고’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우 대표는 커피를 카메라에 비유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가는 시기에도 비슷한 고통이 있었다”고 했다. 더욱이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 많은 시간과 돈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사람이었다. 우 대표는 “2016년에 직원이 25명이었는데 1년 만에 80명 넘게 회사를 키웠더니 조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초창기 멤버와 나중에 들어온 사람의 경험과 문화가 다르다 일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상호 불신과 의견 충돌이 커졌다”고 돌아봤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망가지고, 매출이 정체됐다. 투자를 받아 새로운 일을 벌이는데,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자금은 뚝뚝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당시 우 대표는 국내 시장에 대한 권한을 임원들에게 위임하고, 중국 등 해외시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 회사 내에 패배주의가 팽배했다고 한다. 그는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다시 국내 경영에 집중했다. “2019년부터 제가 회사를 직접 챙기면서 그간 쌓인 문제를 정리하고 일하는 분위기도 되찾았다. 정체에 빠졌던 회사도 의미 있는 성장세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아이디어 사업화
스트롱홀드는 ‘스마트 로스팅이란 신시장을 열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란 초심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을까. 우 대표는 “원두시장을 바꿔보려는 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다졌다. 원두를 볶는 일이 원두를 구매하는 것보다 더 편하면 직접 로스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에서다. 인터넷으로 생두를 구매하고, 스마트 로스팅으로 원두를 볶아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솔루션으로 묶어내겠다는 목표다. 그는 “스트롱홀드의 솔루션으로 전 세계 원두의 10%를 생산(연간 5조원)하는 단계까지 올라가는 것이 최종 비전”이라고 말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젊은 대학생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학의 구성원들과 같이 구체화해 사업화 아이템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대학이 지원한 형태의 대표적인 초기 벤처 학생 창업 사례”라며 “이런 혁신 모델이 계속 더 나오려면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스타트업과 투자자본을 연결하는 컨설팅 역할을 더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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