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본인의 한국 향한 평생에 걸친 감사와 사죄

이윤옥 2022. 10.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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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쿄꼬가 지은 <나와 한국 :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이윤옥 기자]

"일본은 한국과의 오랜 교류의 역사를 학교에서 상세히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고대로부터 오랫동안 일본과 한국이 교류해온 사실을 알고 더 나아가 일본이 행한 식민지시대의 사실을 알아야 우리 일본인들이 사죄의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고려박물관은 많은 일본인에게 한국과의 역사적 사실과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일동포를 비롯하여 한국인과의 화해의 길을 열어 좋은 관계 개선을 이루고자 활동해왔습니다." (197쪽)

일본의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 이사장을 지냈던 하라다 쿄꼬(原田京子) 이사장(재임기간, 2013.11~2018.10)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이 책의 제목은 <나와 한국 :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일본어판)이다. 

한국 꽃동네에 찾아와 봉사를 시작한 하라다씨
 
 <나와 한국> 책 표지
ⓒ 일본 코세이샤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듯하다. '조선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대표적인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올해 나이 81살로 그는 2002년 3월, 일본에서 장애학교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고 그해 5월 음성 꽃동네로 달려 왔다. 93살의 노모와 가족을 남기고 퇴직하자마자 휴식도 없이 두 달 만에 그가 한국땅을 밟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1971년 서른 살 때까지 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위해 열심히 수업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아시아 제국 특히 조선을 혹독한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강탈하고, 생명을 빼앗고, 토지는 물론 언어와 이름까지 빼앗았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이 너무나도 못된 짓을 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교과서에 없었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이러한 사실을 열심히 학생들에게 말해 주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던 것을 잊지 못합니다." (4쪽)

하라다 이사장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수풍댐 건설 현장에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냉난방과 수도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지만 현지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숙소 등은 식민지 지배의 최전선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조악한 형편이었음을 알고 '너무나 죄송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라다 이사장은 줄곧 해왔다.

거기다가 시아버지도 조선총독부 전기기사 출신이다. 물론 남편 역시 조선 경성(서울)에서 태어났다. 집에는 조선인 식모를 둘 만큼 풍요로웠다고 한다. 남편은 훗날, 당시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커가면서 "조선에 큰 빚을 졌다. 언젠가는 화해를 위한 일을 해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뜻하지 않게 쉰다섯 살(1997년)의 나이로 암에 걸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큰 슬픔 속에서 빠져있던 하라다 이사장은 가슴에 묻어 두었던 '한국'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남편과 함께 '한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한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고 바로 실천에 옮겼다. 결국 하라다 이사장의 한국어 공부는 한국의 장애인 시설인 음성 꽃동네 행으로 이어졌다. 무보수 봉사였다. 꽃동네에 봉사를 결심하고 사전 방문을 위해 2002년 1월 4일부터 4일 동안 꽃동네를 방문했다.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음성 꽃동네서 장애인들로부터 '하라다 이모'라고 불리며 자원봉사를 했다.
ⓒ 하라다 쿄꼬
 
 음성 꽃동네서 중증 장애인들을 정성껏 보살피고 있는 하라다 쿄꼬 이사장.
ⓒ 하라다 쿄꼬
"단 한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처럼 존경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세상" 설립자인 오웅진 신부와 수녀들이 꽃동네를 안내해주었는데 특히 설립 취지문이 가슴에 닿았다. '그래,  이곳에서 조상들이 저지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하자' 고 굳은 마음을 다짐했다.

<나와 한국 :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은 크게 3장으로 나눌 수 있다. 1장은 음성 꽃동네 시절의 일기와 일본에 보내는 각종 소식들이며 2장은 광명사랑의 집에서의 일기와 일본 지인 등에게 보낸 글로 구성되어 있다. 3장은 하라다 쿄꼬 이사장이 자원봉사를 했던 고려박물관에 관련된 일들을 소개한 '고려박물관과 나'라는 항목으로 ①고려박물관의 성립 과정, ②고려박물관의 설립목적, ③활동 모습, ④이사장이 된 내력 등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하라다 이사장이 음성 꽃동네에 자원봉사를 위해 떠나온 날은 마침 한일 월드컵이열리던 해였다. 그날의 기록을 "2002년 5월 19일(일) : 출발일 나리타공항은 한일월드컵 공동 주최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있었고 축제 분위기였다. 인천공항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생활이 이렇게 밝게 전개되었으면 싶다"라고 썼다.
 
 하라다 이사장이 쓴 한글 노래말, 이것으로 장애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하라다 쿄꼬
 
 장애우들을 위해 특수 제작된 교구들을 일본에서 가져와 아동의 발달 교육에 힘썼다.
ⓒ 하라다 쿄꼬
또한 2002년 6월 1일(토)의 일기에는 "가톨릭 복지부 꽃동네에서 매월 내고 있는 소책자 '꽃동네 소식'에 나를 소개한다고 이력서를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동경했으며 존경의 마음을 품어왔습니다. 그러나 해방전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한국과 한국인에게 커다란 죄를 범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사죄드립니다. 사죄를 위해 한국의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오래전부터 꿈꿔 왔습니다. 지금 꽃동네의 중증 장애아들을 돌볼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일본과 한국이 앞으로 사이좋은 나라가 되길 원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한국 방문 동기를 솔직하게 써놓고 있다.

어쩌면 위 글이야말로 하라다 이사장이 한국과 한국인에 갖고 있는 알맹이 '심정'이 아닐까 한다. 하라다 이사장은 일본에서 사회과 교사를 하다가 장애아 학급을 담당했고 이후 양호학교로 옮긴다. 특히 중증 상태의 장애아들을 맡으면서 '장애아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옷도 입을 수 없는 아이들, 초등생의 나이가 되어도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하는 장애아들을 일본에서 보살핀 경험이 있어 꽃동네에서도 하라다 이사장은 중증 장애아들을 맡았다.

처음에 꽃동네에 왔을 때 동료 봉사자들은 "일본인이 왜 이곳에?"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한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하고 있구나'라는 직감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각오가 섰다고 했다.

하라다 이사장은 꽃동네 장애인들로부터 '하라다 이모'로 불렸다. 한국말을 미리 배워 둔 덕에 일상생활에 대한 소통은 그런대로 가능했기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그 결과 '하라다 이모'는 꽃동네서 인기 만점의 '보모 아줌마'였다. 특히 중증 장애아들의 교재 교구와 장남감 등을 일본에서 지원 받아 아이들에게 적용시키는 등 장애인들이 교육에도 최선을 다했다.

한편, 서로 어색하던 동료들과도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쉬는 날 하라다 이사장을 데리고 한국의 명소 구경을 시켜주었고 집에 초대해 맛있는 한국 음식도 만들어 주는 등 서로간의 우정을 나눈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하라다 이사장이 평생 꿈꾸던 '한국인들과의 화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 같아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뻤다.

"일본인이 먼저 사죄해야" 하라다씨의 신념
 
 하라다 이사장은 음성꽃동네 봉사 이후에도 한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지를 찾는 등 활발한 한일교류를 이어갔다. 정신여고 출신의 김마리아 지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방한했을 때의 하라다 쿄꼬 이사장(오른쪽 끝에 있는 분). 2019년 6월.
ⓒ 하라다 쿄꼬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과 조선과의 교류의 역사는 깊습니다. 고대에 일본은 조선과의 교류 덕택으로 성장,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명치정부(明治政府) 이후 은혜를 입어온 조선과 중국의 존경과 감사를 잊고 아시아 제국을 침략하고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지대한 고난을 주어왔습니다. 1945년 패전으로부터 75년이 지난 현재도 당시에 대해 사죄와 책임을 지기는커녕 지금은 식민지 지배가 있었나?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238~239쪽)
하라다 쿄꼬 이사장은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의 한일 화해는 먼저 '사죄하는 일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인들은 한국과의 교류의 역사를 알아야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팔순의 나이로 고려박물관에서 '한국과 관련된 역사, 문화의 모든 것'을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려박물관 회원들과 3.1독립운동 100주년 도쿄 전시회를 위해 사전 답사한 하라다 이사장(뒷줄 오른쪽에서 4번째). 2018년 6월
ⓒ 하라다 쿄꼬
  
 3.1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며 동아시아 평화와 우리들(3.1立運動100年を考える 東アジアの平和と私たち) 도쿄 전시회에서 기자가 하라다 이사장에게 기념품을 전달했다, 오른쪽이 하라다 이사장, 왼쪽이 기자, 2019년 5월.
ⓒ 이윤옥
하라다 이사장의 사실에 입각한 한일간의 역사 인식과 철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나와 한국 : 감사와 사죄를 위한 여행> 책을 통해 일본인들의 한국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이 책이 일본어이기에 한국어판이 나와 한국인들도 하라다 이사장의 '한국 사죄'의 진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일본 고려박물관]
- 오는 길 :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내려 쇼쿠안도오리(職安通) 한국 '광장'수퍼 건너편 광장 건물 7층
- 전화 : 도쿄 03-5272-3510 (한국어 대응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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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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