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상식/불 후에 세미한 소리

hesedia69@gmail.com 2022. 10. 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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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 가운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정미 박사

“불 후에 세미한 소리”(왕상 19:12)는 엘리야의 호렙산 체험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석 달 만에 시내광야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수여받았다.(출 19:25~24:8) 유서 깊은 이 산에 길르앗 디셉 사람,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왔다.

얼마 전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사악한 이세벨에 의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우상숭배자 수백 명을 홀로 상대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결을 벌였다.(왕상 18장) 제단 위 번제물을 놓고 각자 신의 이름을 부를 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라고 전했다. 배교자들은 곧 미친 듯 떠들며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해하는 광란상태에 돌입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저녁 무렵에 엘리야 차례가 되어 먼저, 무너진 돌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그러자 즉시 여호와의 불이 떨어졌다.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의 무리를 모두 기손 시내에 끌고 가 죽였다. 아합은 갈멜산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이세벨에게 일러바쳤다. 그녀는 분노하면서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갈멜산의 영웅이 이런 협박 앞에 두려워했을 리가 없다. 그는 놀라운 능력의 선지자이다. 근데 성경은 그가 자기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고 기록한다.(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무려 160km 거리이다. 또한 그곳은 여호사밧의 통치영역에 속했기에 안전했다.)

엘리야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들어갔다. 그는 황량한 사막을 터벅터벅 걷다가 심히 곤비하여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간구했다.(왕상 19:4) 그러곤 잠 속으로 혼곤하게 빠져들었다. 그때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권했다. 본즉 머리맡엔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능히 식탁을 베푸셨다. 엘리야는 두 번 음식을 제공받았다. 그로 인해 그는 밤낮 40일 동안 계속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다다랐다. 그는 어느 골짜기에 있는 어두운 동굴 안에 숨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13) 이는 하나님이 그를 책망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은거에 대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14)

동일한 질문에 동일한 대답이 두 번 반복된다. 사실, 이세벨은 오랜 가뭄의 원인이 야훼를 섬기는 주의 선지자들에게 있다고 간주하고 그들을 핍박했다.(왕상 18장) 그리고 백성 대부분이 그들의 죽음에 방관, 동의했다. 엘리야는 이제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은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그 자신의 특심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에 좌절하고 낙담했다. 그는 이미 갈멜산에서 거둔 승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침내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나오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자비롭게도 당신의 화살통 속엔 시기적절하게 사용하실 화살들이 많다는 점을 알려주시고자 한다. 야훼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다. 즉 무자비한 하사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죄악이 심판받게 됨을 뜻한다.(왕하 8:12) 다음엔 땅이 흔들리는 듯한 지진의 진동이 있었다. 소위 예후가 우상숭배하는 아합의 온 집을 치는 쿠데타를 가리킨다.(왕하 9:7~10) 마지막으로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을 목격했다. 그것은 아합 왕가의 멸망과 함께 그의 후계자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타락과 불순종에 대해 살아있는 증인이 될 것임을 상징했다. 요컨대 전쟁의 검(하사엘)과 공의의 검(예후) 그리고 성령의 검(엘리사)으로 패역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겠다는 엄숙한 선포였다.

그러나 진노 가운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바람과 지진과 불 후에 ‘세미한 소리’(콜 드마마 다카)가 있었다. 혹자는 이것이 새끼 잃은 어미 새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우가릿어)라고도 주장한다. 영어 번역은 다양한데 ‘온화한 속삭임’(a gentle whisper, NIV)과 ‘낮고 조용한 소리’(a still small voice, KJV) 그리고 ‘완전한 침묵의 소리’(a sound of sheer silence, NRSV) 등이다. 부연하자면 그것은 우리 영혼을 부드럽게 감싸는 ‘말씀의 탁월함’을 상기시킨다. 그 예로 ‘세미한’(다크)에 해당하는 똑같은 단어가 ‘만나’(the bread manna)의 모양을 의미하는 ‘작고 둥근’이라는 말이다. 만나는 그 이슬이 마른 후 광야 지면에 (내리는) 작고 둥글며 (흰) 서리 같이 가는 것(출 16:14)을 칭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길 40년 동안 하늘 양식인 만나를 먹었다. 우리 성도에겐 매일 일용할 양식(아르토스)인 생명의 떡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한 것 같지만 실은 강한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그 분은 드러나지 않게 일하신다. 어느 누가 새벽이슬이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여린 풀잎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은 꽃과 나무의 생명력을 유지시킨다. 주님도 세상에서 웅변을 토하지 아니하셨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사 42:2)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다. 그럼에도 열린 귀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에게만 들리게 하셨다. 티끌같은 인간존재가 자신의 실존을 분명히 자각할 때만 오직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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