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비싸 농사 짓기도 힘든 제주..가짜 농부는 극성

최충일 2022. 10. 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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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투기로 27억원 시세 차익 남겨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제주도 부동산 전경. 최충일 기자
대구에 사는 A씨는 지인 등 7명과 함께 2018년 11월 제주 서귀포시에 농지 1만㎡ 정도를 샀다. A씨 등은 주말체험농장 등을 운영하겠다며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았다. 하지만 경찰조사결과 실제로는 전원주택을 짓거나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농지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받았다.

제주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A씨 등 3명은 2017년 12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농지 2만2600㎡를 매입했다. 이들은 당초 ‘더덕 농사’용으로 이 땅을 샀다. 하지만 애초부터 영농 의사가 없던 이들은 농지를 되팔아 27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제주지법은 농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나머지 2명에게 각각 징역 8개월과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여의도 5배 면적 제주땅 ‘가짜농부’ 소유


제주도 부동산 항공사진. 최충일 기자
제주에서 부동산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사들인 ‘가짜농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헌법 제121조에는 ‘경자유전 원칙’이 명시돼 있으며, 농지법은 제6조 1항에서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이를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런 가짜농부가 산 제주 땅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621만㎡에 달한다. 서울 여의도 면적(290만㎡)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제주시가 846만㎡, 서귀포시 775만㎡로 집계됐다.

이와 같이 적발된 농지는 6개월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농지 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처분 명령까지 받고도 처분하지 않으면 해당 농지에 대해 공시지가와 토지감정가 중 더 높은 금액의 25%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매년 부과된다. 하지만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거나 압류에 들어가게 되면 토지주 대부분이 소송 등을 준비하는 등 반발하고 있어 처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주지역에서 지난 7년간 농지 처분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부과된 이행강제금은 모두 34억7300만원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농지를 소유하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강병삼 제주시장과 이종우 서귀포시장은 농지법 위반 혐의로 취임 이틀 만인 지난 8월 25일 경찰에 고발당했다. 강 시장은 농지를 가능한 빠른 시일 내 처분하겠다고 했다.


전국보다 2.4배 비싼 제주 농지…진짜농부 울상

이런 가운데 제주지역 농지 가격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국회의원(전남 나주·화순)이 최근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제주지역 평균 농지 실거래가격은 ㎡당 18만846원이다. 같은 기준의 전국 평균 농지가격은 7만4689원으로 제주 농지 가격이 전국 평균 보다 2.4배 높다. 농지 가격이 제주 보다 비싼 곳은 서울(94만원), 부산(30만원) 등 일부 대도시와 세종(23만원) 뿐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관계자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병삼 제주시장과 이종우 서귀포시장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 방침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제주지역 부동산 업계에서는 가짜 농부가 제주지역 농경지를 사들이는 것도 땅 값 상승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진짜 농부가 땅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도 있다고 한다. 우철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 지부장은 “제주 부동산 업계에서는 가짜 농부가 투기를 목적으로 지역 농경지를 사들이는 것도 땅값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며 “비싸진 농지 때문에 진짜 농부가 땅을 못구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제주도는 ‘가짜농부’를 걸러내기 위해 ‘진짜농부’가 직접 농지취득 자격을 심사하는 방안을 냈다.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12개 읍・면사무소 등에 총 14개 농지위원회를 설치했다. 내년 8월부터 운영될 농지위원회는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와 농업 전문가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투기 목적 농지 매입여부를 걸려내는 게 위원회 핵심 기능이다. 또 농업경영계획서 심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 5월 18일부터는 신청자 직업과 영농 경력, 영농거리 기재와 증명서류 제출도 의무화한다.

이호진 제주대 부동산관리학과 교수는 “농지 거래에 있어 경자유전 원칙이 지켜지는게 맞지만 시대 흐름에 맞춰 이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며 “‘경자(耕者)’의 범위와 정의를 명확히 해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줄여 나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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