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사람 심폐소생술로 살렸더니, 성추행 고소?

오상훈 헬스조선 기자 2022. 10.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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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 성립 안돼.. 정 걱정되면 목격자 진술 확보를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적용했다가 강제추행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쇼핑몰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질 뻔한 소녀를 구한 뒤 비난에 직면한 중국 남성의 사례를 보도했다. 당시 CCTV 영상을 본 일부 네티즌들이 구조 과정에서 소녀의 엉덩이를 만진 남성의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해당 남성은 소녀를 구하는 데 집중하느라 엉덩이를 만진 건 기억도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대다수 네티즌은 ‘인명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가피한 일’이라며 그의 행동을 옹호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례가 중국에서만 일어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해당 외신 보도를 인용한 기사엔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이성에겐 심폐소생술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많다. 대부분 도와주려다 되레 성추행으로 고소당하는 상황을 가정한다. 가능성이 있는 일일까?

◇심폐소생술 간 이뤄지는 신체접촉, 강제추행 성립 안 돼
전문가들은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이뤄지는 신제 접촉으로는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본다. 강제추행죄는 피의자가 추행의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의 신체를 접촉해야 성립하는 죄다. 법무법인 영동 설현섭 변호사는 “추행의 고의는 변호사들도 판단이 어려워 결국 행위로 고의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때는 상황의 급박함 등이 반영되는데 모두가 알고 있는 심폐소생술대로 적용했다면 속옷을 제거했더라도 강제추행이 성립될 수 없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한일 추선희 변호사도 “원칙적으로 생명의 위협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심폐소생술은 추행의 고의가 없는, 응급처치를 위한 신체 접촉이므로 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심폐소생술이 강제추행으로 인정된 판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심폐소생술 결과, 민형사상 책임 면제
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송사 자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괜히 타인을 구했다가 고소당해 돈과 시간을 낭비할까 봐서다. 쓰러진 사람의 의식이 없고 주변에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나 CCTV가 있다면 지나친 걱정이다. 해당 증거들로 기소단계까지 가지 않고 경찰, 검찰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추선희 변호사는 “설사 피해자가 나중에 깨어난 뒤 구조자의 과도한 신체접촉으로 불쾌감을 느꼈다고 강제추행을 주장한다고 해도 당시 피해자의 응급상황과 응급조치 상황이 CCTV로 남아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갈비뼈 부상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은 응급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적용하는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이상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법적인 응급증상이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별표1을 의미한다. 급성의식장애나 급성호흡곤란, 심한 탈수, 지혈이 안 되는 출혈 등이 속한다.

◇정 걱정된다면 CCTV·목격자 진술 확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황은 쓰러진 사람에게 의식이 남아 있거나 CCTV가 없는 곳에서 심폐소생술을 적용했을 때다. 이 경우 당사자가 성적불쾌감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경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될 수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2014년경 구조대원이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있었다. 환자가 병원으로 이동하는 구급차 안에서 구조대원이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을 했다고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추선희 변호사는 “해당 사례는 무죄로 판결났지만 경찰, 검찰 단계에서 혐의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혹시 모를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쓰러진 사람의 의식이 있다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의사를 확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주변에 CCTV가 없다면 응급조치를 목격한 사람의 연락처를 받아놓고 응급상황과 그 처지에 대해 진술해줄 수 있도록 요청해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상식이다. 설현섭 변호사는 “법조인이든 일반인이든 구호 행위와 추행을 구분하는 선은 비슷하다고 본다”며 “배운 대로만 심폐소생술 적용하는 게 중요한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둘러업거나 직접 어딘가에 태워서 이송하는 순간부터 상식적인 구호 행위를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실체 없는 고소 걱정,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 생존율 10배 높인다”
구호 과정에서의 강제추행 우려는 과장됐다. 지난해 7월, 대다수 언론은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을 남성들이 성추행을 우려해 도와주지 않았다는 취지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당사자가 밝힌 결과, 실제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들이 퍼졌기 때문에 강제추행과 고소에 대한 우려도 실체 없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최한조 교수는 “인터넷상에서의 우려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강제추행 여부를 따질 시간이 없다”며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사용이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많게는 10배 정도 높일 수 있는 응급조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진들끼리는 심정지 환자 주변에 의사나 간호사가 있는 상황을 천운이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지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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