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뮤지션 김사월은 이제 당당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비건 라이프를 지향한다고!

이마루 2022. 10.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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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검열하지 않고 내 신념에 대해 말하기.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손잡기.

이번에는 거기에 나도 포함해서

공연과 페스티벌의 계절이 돌아왔다. 함께 땀 흘리며 춤추고, 만나고 싶었던 가수의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는 떠들썩한 풍경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것을 되찾는 동화의 엔딩이 연상된다. 하지만 페스티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뜨겁고 열정적인 공연 장면을 내 공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까. 정작 내 일상은 팬데믹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주로 작업실에서 혼자 음악을 만들고 여러가지를 다듬고 작업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이며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길이다. 독립적인 한편 누군가에게 선택 받아야 일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커리어를 이어 나간다. 흔들리는 촛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때 나와 비슷한 동료들이 숲 속 어딘가에서 파리한 촛불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의지가 되곤 한다. 불안해지면 더는 일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음악을 안 하면 그때는 스스로를 무엇으로 정체화할까? 데뷔 8년 차 인디 가수의 삶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2019년 즈음. 비건 지향의 삶을 시작했다. 동물권과 기후위기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비건식으로 요리하고 외식할 때는 때론 페스코 정도의 상태로 지낸다. 그동안 엄격한 비건 식생활을 지키기도 했고, 때론 지키지 못해 자책하기도 했다. 이런 나는 진짜 비건이 아니고 어딘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비건의 상태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건으로 소개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했는데, 그건 내가 지키지 못하는 순간이 발각됐을 때 비판을 견디는게 무서워서였는지도 모른다. ‘서울 동물권 행진’의 애프터 파티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쁜 한편 머뭇거리는 마음이 들던 차, 비건 지향인이자 동료 뮤지션인 슬릭이 함께 공연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둘이서 합동 무대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다. ‘언제까지 비겁하게 살 텐가!’ 싶은 마음과 전체 행사에서 내 분량과 영향이 많지 않을 것 같은 예측하는 알량한 마음으로 공연을 수락했다.

그렇게 슬릭과 나는 서로의 작업실에서 한 번씩 만났다. 생각보다 차버린 우리의 연차를 실감하며 비건 마라전골을 먹고 드립 커피를 마셨다. 엄밀히 말하면 래퍼인 슬릭과 포크 뮤지션이라 불리는 내 음악은 장르적으로 비슷한 게 별로 없다.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도 노래 가사만큼은 모두 외어서 부르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꾸준히 증명하는 데 지친 기분도 비슷했다. 그런 느슨한 공통점 때문에 함께 노래를 연습하고 있으면 혼자 작업하며 움츠려있던 마음이 조금은 펴지는 것 같았다. 나와 슬릭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사슬’이라고 팀 이름을 장난스럽게 지었고 그는 자신의 점프수트를 나에게 빌려주며 공연 날 함께 입자고 했다. 나는 공연 며칠 전에 엉켜 있던 긴 파마 머리를 조금 잘랐다.

당일, 리허설 시간에 빠듯하게 행사장에 도착했다. 슬릭과 뻘쭘하게 서 있는데 언젠가 합정의 비건 바 포인트 프레드릭에서 술을 먹다 우연히 인사 나눈 밀 키트 ‘바로’의 사장님과 만나 인사를 나눴다. 비건 만화를 연재하시는 초식마녀님도 만났다. 우리는 거의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테이블에서 비건 샌드위치를 먹고 음료를 마시며 행사를 함께 봤다. 발칙함과 지혜로움이 난무했던 이슬아, 현희진 작가의 ‘비건과 로맨스’ 대담에 이어 유쾌하고 리듬감 좋은 대화로 관객들을 폭소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양다솔 작가의 ‘비건 공개 라디오’ 순으로 애프터 파티가 진행됐다. 사람들의 미소 띤 얼굴과 사진 찍는 모습, 친구와 서로 등을 기대면서 편하게 듣는 모습이 보였다. 새삼 ‘비건 지향이라는 키워드로 많은 것이 안전해질 수 있음을 느꼈다. 비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언제 어떤 이유로 비건 지향을 시작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틀리지 않고 왜곡되지 않게 긴장하며 대답하다 보면 이 주제의 대화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날은 내가 잘 해내고 있다고 증명하지 않아도 비건이 디폴트인 세상 같았다. ‘언제’와 ‘왜’를 당연하게 뛰어넘어 ‘누구’와 ‘어떻게’의 디테일을 신나게 풀어내는 아름답고도 지적인 장면이었다.

슬슬 공연 순서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행사장의 작은 창고에 들어가 심호흡을 했다. 좋은 분위기를 망치게 될까 봐 긴장됐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파괴적인 가사를 읊조리는 포크 록 같은 것을 들으며 마음을 세팅했다. 시니컬한 메시지를 당당하게 표효하는 음악에서 용기를 얻는다. 듣고 있으면 못난 마음도 틀린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나름 비장한 마음으로 무대로 올라가서 그동안 준비한 것을 주어진 상황만큼 노래했다. 이제는 나를 믿고, 관객들을 믿고, 나의 치부이자 전부인 노랫말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합동 무대를 마치고 이어진 슬릭의 공연을 관객 뒤쪽에서 지켜보며 나는 작업실에서 만났던, 고민하고 외로워했던 그 사람이 전하는 음성을 들으며 지금까지 그가 얼마나 담대한 가사를 꾹꾹 눌러 써왔는지 느꼈다. 작은 불빛을 켜 놓은 것처럼 따뜻해 보이는 무대 위의 온기를 사람들이 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무대도 조금은 그랬을까? 이곳에서 느낀 감정이 꽤 그리워질 것이다. 창문을 열면 당연히 이것과 반대의 세상이 펼쳐져 있으리라.

한 손에는 행사 측에서 챙겨준 선물을, 또 한 손에는 기타와 개인 가방을 안고 이태원에서 그토록 잡기 어려운 택시를 행운처럼 잡아탔다. 창밖의 거리는 내가 익히 아는 세상의 풍경.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들과 테라스에서 술과 음식을 즐기며 떠드는 사람들, 내가 식사하지 못하는 수많은 가게들의 간판을 본다. 그 사이로 비건들이 모여 연대하는 행사를 누가 기획했을까?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비인간 동물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내가 느끼는 것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전제는 힘든지도 몰랐던 삶의 긴장을 좀 더 느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해받음으로써 배울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또 조금은 잊고 살아가겠지만 소망했다. 삶에서 느낀 비관을 가득 저장해서 실체 없는 비난과 싸우지 않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품에 안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너그러워지기를. 이번에는 거기에 나도 포함해서.

김사월메모 같으면서도 시적인 노랫말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2020년 에세이 〈사랑하는 미움들〉을 썼고, 석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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