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찬란한 꼬부랑길에 가득한 가을 정취
단풍은 하루 최저기온이 5도 이하가 되면 들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단풍은 대청봉을 시작으로 하루 20~25㎞의 속도로 남하한다. 9월 29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중부지방에서는 10월 20~21일, 지리산과 남부지방에서는 10월 20~30일에 첫 단풍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단풍을 일찍 즐기기 위해 산을 찾는 이들이 많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고도 편하게 오색찬란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단풍 명소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첩첩산중 구불구불 고갯길이 단풍으로 채색되면 그림 같은 풍광이 된다.
설악산에 이어 두 번째로 단풍이 드는 오대산국립공원은 드라이브 단풍 명소를 품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와 강릉시 연곡면 솔내마을의 경계에 위치한 진고개를 넘는 국도 6호선이다. 2차선 도로가 한적한 데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천천히 지나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진고개를 병풍처럼 에워싼 봉우리들이 붉게,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특히 구름이 낮게 내려앉으면 몽환적 풍경이 선계(仙界)를 방불케 한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충청권에서 최상의 단풍 고갯길이 기다린다. 대표적인 곳이 충북 보은 속리산(俗離山)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말티재다. 보은읍 장재리와 속리산면 갈목리를 잇는 고갯길로, ‘높다’는 뜻을 지닌 마루의 준말인 ‘말’과 고개를 의미하는 ‘티’와 ‘재’가 합쳐진 이름이다.
말티재 입구에서 해발 430m인 정상까지는 약 1.5㎞. 180도로 꺾어지는 S자 굽잇길을 열두 번 돈다. 고갯마루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에 말티재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높이 20m의 전망대 끝에 서면 구불구불한 도로가 발아래 펼쳐진다. 길 주변 나무에 가을의 붓질이 잎사귀를 온통 울긋불긋 화려하게 치장한다. 이곳 단풍 절정 시기는 10월 말이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와 영춘면 백자리를 잇는 보발재는 환상적인 굽잇길을 자랑한다. 일명 ‘고드너미재’로, 가을 단풍철 빼놓을 수 없는 드라이브 코스다. 꼬불꼬불 3㎞ 도로변을 따라 빨갛게 노랗게 물든 단풍은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오색찬란한 가을을 선물한다. 정상 전망대에서는 단풍으로 물든 굽잇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가파른 산길에 곱게 물든 가로수 잎들이 눈을 호강시키고 마음을 힐링시킨다. 단양 고갯길에서 죽령재도 빼놓을 수 없다. 대강면 용부원리와 경북 영주를 잇는 죽령재는 소백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구경할 수 있는 데다 용부원 마을의 고즈넉한 산촌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10월 하순 절정을 이룬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를 잇는 국가지원지방도 49호선은 만추의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낭만 여행지다. 정상 도마령(刀馬岺·해발 800m)은 ‘말을 키우던 마을’ ‘칼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던 고개’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영동읍에서 무주 쪽으로 가다가 양강면을 지나 용화면을 거쳐 조동리로 가거나 4번 도로를 타고 추풍령·김천 쪽으로 가다가 49번 도로를 만나 무주·용화 방향으로 가도 된다.
두 번째 길을 선택한 뒤 물한계곡으로 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길을 지나 굽이굽이 돌아 오르면 도마령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고갯길 오른쪽은 940m가 넘는 천만산이고 왼쪽은 각호산(1176m)이다. 천만산 아래는 천마령이, 각호산 아래는 민주지산(1241m)이 이어진다. 아주 오래전 그곳은 군대에 쓰일 말을 조련하던 터였다고 한다. 당시 말 1000마리를 키웠다고 해서 ‘천만산’ ‘천마령’이라고 불렸다. 각호산은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꾸불꾸불 돌아가는 길이 장관이다. S자, U자를 이루며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24굽이를 따라 진하게 물든 형형색색 단풍이 맑고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만추의 절경을 펼쳐놓는다. 울긋불긋 만산홍엽(滿山紅葉) 물결이 한 폭의 산수화나 다름없다. 이곳은 11월 초에 찾는 것이 좋다.
쪽빛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선을 낀 단풍 드라이브를 원한다면 경남 남해를 찾아보자. 동쪽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물미해안도로가 오색 단풍으로 물들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물미는 물건리에서 미조항의 앞 글자다. 바다 바로 옆을 굽이치는 도로를 달리면 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바다로 뛰어들 것만 같다. 삼동면 대지포 해안 벼랑 위에 ‘보물섬 전망대’가 우뚝하다. 원통형 전망대는 스카이워크 겸 카페다. 이곳은 11월 중순에 절정을 맞이한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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