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 성공시킨 다니엘 리, 이번엔 버버리로 [더 하이엔드]

윤경희 2022. 10. 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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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 영국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의 수장이 바뀌었다. 2018년부터 버버리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를 맡아온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의 뒤를 이은 것은 다름 아닌 다니엘 리다.

버버리의 새로운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가 된 패션 디자이너 다니엘 리. 사진 버버리


다니엘 리는 올해 봄 시즌 쇼까지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며 브랜드를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보테가 베네타에 젊은 감성을 불어넣어 '뉴보테가' 시대를 열었다고 할 만큼 새로운 부흥기를 가져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11월 갑자기 3년간 공들인 보테가 베네타를 떠난다는 발표가 했다. "서로간의 협의를 통해 브랜드를 떠나기로 했다"는 것. 이상하다 싶었다. 브랜드를 성공시킨 디자이너가 떠나기엔, 재직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보통 럭셔리 브랜드는 한번 임명한 디자이너를 잘 교체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해 공들인 리소스와 애써 쌓은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가뜩이나 브랜드에 큰 성공을 가져온 인물이라면, 3년이란 재임 기간은 짧아도 너무 짧다. 미국 매체 뉴욕타임즈가 "너무나도 충격적인 헤어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말이다.

지난 9월 런던 패션위크에서 컬렉션 쇼를 끝낸 리카르도 티시(가운데). 그는 이 쇼를 마지막으로 버버리를 떠났다. 사진 버버리


잠시 그가 보테가 베네타의 디자이너로서 했던 첫 컬렉션 발표 현장을 떠올려보면, 모그룹인 케링그룹의 고위급 임원이 직접 행사에 참여해 그 반응을 살필 정도로 마음 졸였던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2019년 초 일본 도쿄의 보테가 베네타 매장에서 각국의 기자들을 불러 다니엘 리의 컬렉션을 소개한 뒤, 그 반응을 살피는 브랜드 관계자들의 모습은 긴장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테가 베네타에게는 유례없는 큰 도전이었기 때문. 장인 정신과 전통, 클래식의 코드를 가져갔던 브랜드가 33세의 젊은 영국 디자이너를 영입한 것은 파격적인 인사였다. 게다가 다니엘 리는 2018년 당시만해도 이름 없는 무명 디자이너에 가까웠다. 셀린느·돈나카란 등에서 일했지만, 여러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그를 케링그룹이 선택한 것 자체가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패션업계에서는 “제2의 미켈레가 탄생할 것인가”라며 반신반의했다. 2015년 혜성처럼 나타나 구찌의 부흥을 이끈 알레산드로 미켈레처럼 다니엘 리가 침체한 분위기의 보테가 베네타를 흥행시킬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미켈레 같은 디자이너와 성공 사례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구찌로 이미 성공을 거둔 바 있는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두 번째 도전을 시도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파우치' 백. 사진 보테가 베네타


결론은 해피엔딩. 다니엘 리가 진두지휘한 보테가 베네타는 큰 성공을 거뒀다. 브랜드는 젊어졌고, 세계가 이에 열광했다. 그가 보여준 새로운 인트레치아노 패턴과 틀을 깬 형태의 가방, 구두는 새로운 트렌드를 일으켰다. 일명 ‘만두백’으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클러치’ 백과 속이 빵빵하게 채워진 가죽을 엮어 만든 ‘카세트’ 백이 바로 그의 작품. 글로벌 패션 검색 플랫폼인 리스트(Lyst)의 보고서에 따르면, 파우치 백과 스트레치 샌들은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원하는 제품'이었다.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다음 해인 2019년 보테가 베네타의 매출은 껑충 뛰어올랐고, 당시 케링그룹의 영업 이익은 전년대비 95%가 증가했다.

이번엔 버버리다. 그는 2023년 2월에 있을 런던패션위크에서 자신의 첫 번째 버버리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인사는 지난 3월 베르사체에서 온 신임 CEO 조나단 아케로이드의 첫 움직임으로 보인다. 아케로이드 CEO는 “다니엘은 오늘날의 럭셔리 소비자를 이해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가 다음 시즌에 브랜드에 인상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과연 다니엘 리는 버버리를 보테가에 이어 성공시킬 수 있을까. 버버리는 리카르도 티시 시절 브랜드의 모노그램을 정립하는 등 현대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영국 매체 BOF에 따르면, 올해 4월로 마감한 회계년도 2021년 버버리의 매출은 28억 파운드(4조5500억원)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6% 정도의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같은 시기 샤넬, LVMH 같은 브랜드들이 20% 이상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미약한 수치다. 신임 CEO로서는 이를 끌어올리기 위한 강력하고도 확실한 무기가 필요했을 터. 그가 선택한 무기가 바로 '다니엘 리'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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