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같았던 조상들의 그림, 직접 보고 말을 잃었다

전병호 2022. 10. 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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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의 7000개의 암각화, 보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네요

[전병호 기자]

'루시.' 1974년, 미국과 프랑스 합동 고고학 발굴단은 에티오피아의 하다 유적지에서 320만 년 전 직립보행을 한 최초의 고대 인류 화석을(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발굴하였다. 발굴단은 그 최초의 인류 이름을 '루시'라고 명명하였다. 이 '루시'의 후손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해 현생 인류가 되었다.

고고학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른별 지구의 패권 종족인 인류에게는 지구상 다른 어떤 동물에게도 없는 문화가 있다. 문화는 인류의 복잡한 사고 능력과 인지능력을 보관하는 창고와 같다. 

고대 인류들이 보관했던 문화창고의 흔적들을 우리는 유물이라 부른다. 유물에는 조상들의 많은 신호가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그 신호를 통해 먼 옛날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가졌던 생각을 유추해 낸다. 유물 속에 숨겨진 신호를 찾아내는 일, 그것이 바로 고고학이다. 

"야, 이거 봐라. 옛날 그릇이다!"

금강변에 살던 꼬마에게 강가는 놀이터였다. 조개도 잡고, 민물 게나 고둥을 잡으며 놀다 가끔 강가에 삐져나온 작은 토기 조각들을 줍곤 했다. 손에 딱 맞는 그릇 조각을 주으면 강물에 힘차게 던져 물수제비를 떴다. 그 물수제비를 뜨던 그릇 조각들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쓰던 빗살무늬 토기의 일부였음을 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처럼 조상들의 흔적들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그 가치를 몰라볼 뿐이다. 키르기스스탄 여행 중에도 가는 곳마다 먼 조상들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촐폰아타 근처의 암각화 군락이다.
  
▲ 촐폰아타 암각화 군락 그냥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곳에는 7000여 개의 암각화가 널려 있다.
ⓒ 전병호
바위에 그려진 고대인들의 흔적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동굴벽화는 1만 7천여 년 전 구석기시대 인류가 그린 그림으로 '인류 최초의 그림'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그림을 처음 책으로 접했을 때는 솔직히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이런 유치한 그림이 왜 책에 나와야 하는지 의아했다.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고 하지만 정보 없이 처음 보는 사람 눈에는 분명 어린아이 낙서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고대인들의 문화유산이 있는데 바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이다. 이 반구대 암각화는 약 7천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오랜 기간 신앙행위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고래사냥 그림을 포함하여 307종의 형상이 표현되어 있다.

이 어린아이 낙서 같은 암각화도 처음 책으로 접했을 때는 신비감보다는 그저 시험문제 맞히기 위해 외웠었던 기억뿐이다. 아무리 유명한 알타미라 벽화나 반구대 암각화 같은 그림들을 아무 정보 없이 만나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 입구 쪽 대표적인 암각화 눈표범, 사슴 등 사냥을 기원하는 그림이라 함.
ⓒ 전병호
    
▲ 촐폰아타 암각화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아 세계 곳곳의 역사학자나 학생들의 방문이 많다고 한다.
ⓒ 전병호
압도하는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지다 

먼 나라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서 이런 어린아이 그림 같은 암각화 군락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천상의 이식쿨 호수를 떠나는 날, 우리는 촐폰아타 근처 암각화 군락을 방문하였다. 이미 암각화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알고 있는 나는 벌판의 암각화 군락을 접했을 때 짜릿했던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먼저 압도하는 규모에 할 말을 잃었다. 암각화라고 해서 몇 군데 바위에 그려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광활한 벌판에 널려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전라북도 고창에서 고대인들의 무덤인 고인돌 군락을 접했을 때처럼 수천여 년 전 먼 조상들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여기저기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는 돌밭 정도로 보였는데 그곳에 상주하는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는 약 7000개의 암각화가 그려져 있으며 이 암각화 군락을 돌아보는 것만도 2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눈표범, 말, 개, 산양 등 주로 동물 그림이 많으며 활을 쏘는 사람, 양날 도끼, 사냥하는 그림들 등 다양한 암각화가 분포되어 있었다. 이 암각화들은 고대 투르크 시대부터(B.C 2000년~) 비교적 최근인 19세기까지 오랜 기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이곳은 그저 보존되어야 할 유적지가 아니라 고대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촐폰아타 암각화 표시판 유명한 역사유적지치곤 입구 표시판이 허름해 놀랐다.
ⓒ 전병호
 
▲ 촐폰아타 암각화 군락 입구 유명 역사 유적지 치고는 관리가 허술해 보였다.
ⓒ 전병호
  
▲ 암각화 크기 바위 크기로 보아 옮겨온 돌은 아닌듯하며 이 정도 바위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고 그 바위마다 암각화가 그려져 있었다.
ⓒ 전병호
 
▲ 눈표범 키르기스스탄 유목민들이 신성 시 하는 눈표범: 암각화 곳곳에도 눈표범들이 그려져 있다.
ⓒ 키르기스스탄 대사관 제공
     
암각화 앞에서 희망을 들여다봄

사람들은 왜 시공간을 넘나드는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영화를 보며 열광할까? 인간은 늘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한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수백만 년 쌓여온 과거의 결과물이다. 지금의 나는 수백만 년 동안 살다 간 수많은 조상들의 유산물인 셈이다. 먼 나라 키르기스스탄의 고대인들 흔적 앞에서 지금 현재의 내 모습 속에 들어 있는 욕망의 조각들을 들여다본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지나친 욕망은 파멸을 부른다지만 욕망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욕망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희망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비루하고 절망스러운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1만 7천여 전 고대인들은 알타미라 동굴 벽에 더 많은 사냥을 기원하며 내일의 희망을 그림으로 그렸다. 7천여 년 전 선사시대 사람들은 울주 반구대 바위 벽에 더 큰 고래를 잡고 싶은 기대를 그림으로 새겼다. 중앙아시아의 평원을 달리던 유목민의 조상들은 고대 투르크 시대부터 내일의 희망을 담아 바위에 눈표범, 산양, 말들을 새겼다. 

먼 나라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벌판 암각화 군락 앞에서, 나는 지금 비록 궁색해 보이지만 가슴 속 작은 욕망의 씨앗을 통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으리라는 희망을 조각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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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 게재 후 브런치 개인 계정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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