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어머니의 몽돌

전병선 2022. 10. 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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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에서 태어났다. 육지에서는 섬사람을 강하고 억세다고들 한다.

그 말은 도시 사람들에 비해 훨씬 강인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자연재해가 육지보다 잦은 섬사람들은 서로 협동하고 사는 공동체 의식이 도시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바다에는 특별히 농번기라는 것이 따로 없다. 해수면이 깊어지면 밀물이 되고 물이 줄고 해수면이 얕아지면 썰물이 된다. 한나절 내내 물이 밀려 나가 정지 상태가 되었다가 오후해 질 무렵에 물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다에 물이 빠지고 질퍽하게 개펄이 드러나면 이때를 놓칠세라 섬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나와 먹거리를 거둔다. 그들은 새벽 동이 틀 때부터 잠들기까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진귀한 보물이 가득히 담겨 있는 바다, 우리 어머니는 육지에서 섬으로 시집을 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때의 그 감동적인 순간들은 내 삶에 최상의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의 치마폭을 잡고 바닷가에 가면 흰 설탕을 수백 가마 깔아 놓은 듯이 아름다운 금장리 백사장이 있었다.

그 모래 위에서 호미를 대고 종종걸음으로 줄을 긋기만 해도 주먹만 한 비단조개, 모시조개가 금방 한 바구니가 되곤 했다. 지금도 그 백사장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 백사장 옆에는 두 가지 색의 몽돌 구역이 있다. 한쪽은 깨끗한 흰색 몽돌들이, 그 옆에는 윤기가 흐르는 검정색 몽들이다. 이 돌들은 모두가 다 둥글둥글한 궁체였다. 마치 물감을 들여서 전시해 놓은 것 같이 신기한 모양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몽돌도 실어 가고, 바다를 병풍처럼 막아 주고 있던 아름다운 적송들도 많이 옮겨 갔다. 무거운 돌을 싣고 가다가 침몰을 당한 후로는 더 이상 훼손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보존되었다고 어머니는 지난 역사를 들려주셨다. 수만 년 폭풍과 바람 천둥에 시달려 깎이고 닳고 구르고 자리 이동을 하면서 고통 속에서 자리를 지탱해 온 몽돌은 보석처럼 빛난다. 날물이 되면 표면이 태양열에 달궈져 화상을 입고 몽돌이 되기까지 허물이 벗겨지기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우리 집은 김장 때마다 열 개도 넘는 김장독 위에 돌을 지긋이 눌러 놓는다. 그러면 김치가 들뜨지 않고 잘 익어 깊은 맛을 낸다. 양념이 배어 있는데도 들먹거리고 시퍼렇게 살아날까 봐 그렇게 했다. 오늘 죽었어도 그저께쯤 죽은 듯이 고개를 들지 말고 조용하고 잠잠히 있으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몽돌을 쓰다듬으시며 “네 몸에 소금물이 배지 않음은 단단한 너의 심지 때문이겠지”라고 말을 하시곤 했다.

가슴에 돌무더기처럼 쌓인 사연들을 몽돌을 만지면서 풀어 내던 내 어머니의 마음 같은 몽돌 하나를 들었다. 강인한 의지 하나로 버텨낸 삶, 아름다운 심성의 내 어머니의 고운 얼굴이 떠오른다. 내 고향 거금도,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어머니 삶을 돌아보게 하는 몽돌을 다시 보고 싶다.



<추억>
고향은 울림이다
고향은 친구들 이름이며
산천이고 강물이다
고구마 서리하던 곳
웅덩이 막아 붕어, 민물 게 잡고
호박잎 겹쳐 들고 뱀장어 잡던 곳
살려 달라 꼬리치며
죽기 살기로 버티던 민물장어
고향은 그리움이다

수십 길 아스라한 하늘 밑
짙푸른 용두봉 적대봉
울창한 밀림 속
구슬픈 꿩 울음소리
산머루 개복숭아 지천이고
아무도 손 타지 않은
보송보송 탐스러운 다래
날 맞아 주던 곳

고향은 벗들의 이름이다
서운예 막음예 딸막이 그만이
내 친구들 이름
이들이 고향 흔적이고
고향의 메아리며 노래다
바위 고개 너머 펼쳐진 바다
바다 위에 노니는 갈매기 떼
벅찬 울림의 고향

옛 사람만 남을지라도
산천초목이 지켜 주는 고향
사면이 푸른 물결에 싸인
울창한 배경 청청한 내 고향아
대하드라마 두세 편 써 내려
나뭇가지에 걸어 주마
고향은 너와 나의 울림이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A)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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