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돌목, 기억해야 할 이순신 장군의 바다

정명조 2022. 10. 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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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길 진도 '명량대첩로'를 걸으며 명량해전을 생각하다

[정명조 기자]

▲ 충무공벽파진전첩비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짓고, 소전 손재형이 글씨를 썼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 정명조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의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 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걷우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 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 <충무공벽파진전첩비>

1597년 음력 8월 29일 이순신 장군이 해남 어란진을 떠나 진도 벽파진에 진을 쳤다. 이곳에서 16일 머무르는 동안 사흘은 비가 내리고, 나흘은 바람이 불었다. 맏아들 회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었다.

9월 15일 이순신 장군은 해남 우수영으로 진을 옮겼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병사들에게 남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명량해전에서 왜적을 크게 물리쳤다.

진도에 '명량대첩로'가 있다. 명량해전이 벌어진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이다. 벽파항에서 울돌목까지 약 11km 이어진다. 9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명량대첩축제가 열리는 진도에 갔다. 425년 전 이순신 장군이 지나갔던 바다를 바라보며 명량대첩로를 걸었다. 비도 내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는 고요했다.

벽파항

벽파항은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이곳에서 해남 옥동마을까지 철선이 오가며 사람과 차량을 날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추자도와 제주에 오가는 배가 하루에 한 번씩 들렀다. 지금은 사람 보기 힘든 한가롭고 조용한 항구다.

벽파 앞바다가 보이는 조그마한 언덕에 충무공벽파진전첩비가 있다. 노산 이은상이 글을 짓고, 소전 손재형이 글씨를 썼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원래 있는 바위를 깎아 거북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몸돌을 세웠다. 거북이 둘레는 빙 둘러서 홈을 팠다. 빗물이 고여 거북이가 물에서 놀 수 있도록 하였다.
 
▲ 벽파정 진도에 오는 관리와 사신을 맞이하던 정자다.
ⓒ 정명조
전첩비 아래쪽에 벽파정이 있다. 고려 희종 때 처음 세운 정자다. 진도에 오는 관리와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시인이 들렀다. 터만 있던 곳에 2016년 정자를 복원했다. 시구를 담은 현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 둔전방조제 바닷가 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멀리 진도타워가 보인다.
ⓒ 정명조
벽파항을 출발하여 바닷가를 따라 명량대첩로를 걸었다. 오른쪽으로 해남 바닷가가 가까이 보였다. 섬들도 나란히 함께했다. 둔전방조제를 지났다. 바다를 막아 농사지을 땅을 만들 때 쌓은 둑이다. 둑길 바깥쪽은 갯벌 습지보호지역이다. 썰물 때면 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안쪽은 네모반듯한 논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간다.

강강술래터

울돌목 무궁화동산을 지나면 피섬이 있다. 명량해전 때 일본군이 흘린 피로 온 섬이 빨갛게 물들었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얼마나 처참하게 싸웠는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강강술래터 전망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강강술래를 하며 이순신 장군을 응원했다. 오른쪽 바다에서 왜군이 쳐들어왔다. 가까이 보이는 섬이 피섬이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울돌목시험조류발전소다.
ⓒ 정명조
산 쪽으로 난 계단을 200m쯤 오르면 강강술래터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평평한 곳이다. 300평 정도로 말끔히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했다.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손에 땀을 쥐고 이순신 장군을 응원했다.
강강술래터 위쪽에 망금산 관방성이 있다. 통일신라 때 쌓았다고 추정되는 성이다. 바다로 드나드는 배를 훤히 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명량해전 때 부녀자들이 바로 아래에서 강강술래를 한 까닭이기도 하다.
 
▲ 진도대교 진도 녹진과 해남 학동을 잇는 쌍둥이 사장교다. 울돌목 위를 지난다.
ⓒ 정명조
 
▲ 진도타워 망금산 정상에 진도타워가 있다. 진도대교와 울돌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망금산 관방성에서 본 모습이다.
ⓒ 정명조
더 오르면 망금산 정상이다. 해발 106.5m로 진도대교와 울돌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진도타워가 있고, 그 안에 전망대, 명량대첩 승전관, 진도군 역사관과 홍보관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울돌목을 건너 해남 우수영관광지로 갈 수 있다.

다시 명량대첩로로 내려와 600m쯤 걸으면 승전무대가 나온다. 축제가 열릴 때마다 주 무대로 쓰는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난 데크길을 가면 드디어 울돌목이 나온다. 명량해전 현장이다.

울돌목

물살이 빠르게 흐르며 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울돌목이다. 우리나라 해협 가운데 물살이 가장 센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9월 16일 이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본군과 싸웠다. 배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쳤다. 기적과 같은 엄청난 승리고, 조선을 지켜낸 최대 승부처였다. 이순신 장군이 조선의 영웅에서 민족의 성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이충무공승전공원 명량대첩로가 끝나는 곳에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 정명조
바닷가 테크길이 진도대교 밑을 지난다. 유리 바닥으로 된 곳에서 회오리치는 물살을 볼 수 있다. 울돌목 주말장터를 지나고, 데크길을 걸어가면 이충무공승전공원이다.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왼손에 큰 칼을 움켜쥐고, 오른손은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명량대첩로는 이곳에서 끝난다.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은 바로 그날 울돌목을 떠났다. 적을 피하듯 서해로 올라갔다. 작전상 후퇴였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도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로 진을 옮겼다'라고 썼다. 당사도는 신안군 암태면에 있다. 다음 날 어의도를 거쳐, 9월 21일에는 고군산군도까지 올라갔다.
 
▲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 정유재란 때 싸우다 죽은 진도 사람들이 묻혀 있다. 울돌목에서 직선거리로 7km쯤 떨어졌다.
ⓒ 정명조
싸움에서 크게 진 일본군은 섬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복수했다. 그때 희생된 사람들이 '진도정유재란순절묘역'에 묻혀 있다. 이름 없이 죽은 사람들 무덤이 지금도 잘 관리되고 있다. 해마다 명량대첩축제 때 이곳에서 약무호남(若無湖南)제례를 지낸다.

왜덕산

울돌목에서 바닷가를 따라 20km쯤 떨어진 곳에 일본군 무덤도 있다. 내동마을 왜덕산(倭德山)에 있다. 일본군에게 덕을 쌓은 산이라고 했다. 명량해전 때 밀려온 시체를 마을 사람들이 건져 햇빛 잘 드는 곳에 묻었다. 세월이 지나도 무덤 생김새가 남을 정도로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본래 100여 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작은 널빤지로 만든 안내판이 땅에 세워져 있고, 하얀 국화 한 다발이 땅에 놓여 있었다.

2006년 향토사학자가 진도를 찾은 일본인에게 우연히 일본군 무덤 이야기를 했다. 이 사실이 일본 언론에 보도된 뒤, 일본 사람들이 가끔 찾아왔다. 지난 9월 24일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찾아와 위령제에 참석했다.

일본에는 조선 사람 코 무덤이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 사람 코나 귀를 베어 가지고 가서 묻은 곳이다. 일본에 다섯 군데 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가 교토 코 무덤에 찾아가 위령제를 지낸 적도 있다. 왜덕산과 견주어지는 슬픈 역사다.
 
▲ 남도굿거리 명량대첩축제 때 녹진광장에서 진도국악고등학교 학생들이 ‘남도굿거리’ 공연을 펼쳤다.
ⓒ 정명조
울돌목은 400여 년 전처럼 지금도 물살이 세차게 소용돌이친다. 피로 물들었던 싸움터가 지금은 흥겨운 잔치 한마당이 된다. 주말마다 장터가 서고,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한데 어울린다.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이고, 기억해야 할 이순신 장군의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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