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이슈] 글로벌 케이팝에 녹아든 클래식,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나
레드벨벳·방탄소년단 지민 등도 클래식 음악 샘플링
그룹 블랙핑크의 정규 2집 ‘본 핑크’의 타이틀곡 신곡 ‘셧다운’(Shut Down)이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2주 연속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눈여겨 볼 점은 ‘셧다운’의 인기와 함께 유튜브 등에서 덩달아 ‘클래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셧다운’에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에 등장하는 주제 선율을 과감하게 샘플링해 힙합 비트를 얹었는데, ‘셧다운’이 인기를 끌자 파가니니의 원곡을 찾아 듣는 사람이 증가하면서다. 파가니니의 이 곡은 리스트가 모티브 삼아 쓴 ‘라 캄파넬라’로도 유명하다.
대중음악에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한 예로 2000년 초반 큰 인기를 누렸던 그룹 신화의 ‘T.O.P’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곡이다. 해당 곡은 각종 CF광고와 영상물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등장하면서 클래식이 낯선 이들에게도 친숙함을 줬다.
또 H.O.T. ‘빛’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의 제4악장 ‘환희의 송가’ 멜로디가 인용됐고, ‘아이야’ 도입부는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을 사용했다. 또 아이비 ‘유혹의 소나타’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씨야 ‘사랑의 인사’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 이현우 ‘헤어진 다음날’은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양파 ‘사랑...그게 뭔데’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등을 샘플링했다. 이밖에도 지오디 ‘어머님께’, 김경호 ‘슬픈 영혼의 아리아’ 등 클래식을 샘플링한 곡은 수도 없이 많았다.
케이팝과 클래식의 협업으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음악도 있다. 바로 1990년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선보였던 ‘서태지 심포니’다. 이 공연을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였던 톨가 카쉬프와 협업했다. 그는 영국 록 그룹 퀸의 교향악 콘서트인 퀸 심포니 콘서트의 작곡과 지휘를 담당하기도 했다.
클래식은 샘플링에 있어서 가장 좋은 조건을 갖췄다. 저작권은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모호되기 때문에 모차르트, 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가의 곡들은 대부분 저작물 권리가 소멸됐다. 이런 음악은 새로운 음악에 자유롭게 샘플링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이로 인해 한 때 클래식 샘플링을 한 곡들이 난무한 것도 사실이다. 너무 쉽게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한동안 샘플링이 주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케이팝이 클래식 샘플링을 시도하는 건 ‘글로벌’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 대중음악 작곡가는 “현재 케이팝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클래식 샘플링을 다시 사용하게 됐다”면서 “이번 블랙핑크의 ‘셧다운’을 비롯해 많은 아이돌 곡에서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서구 사람들에게 익숙한 보편성을 얻기 위함이다. 아이돌 곡이 영어가사로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블랙핑크 ‘셧다운’은 물론 이에 앞서 그룹 레드벨벳이 올해 3월 공개한 미니앨범 타이틀곡 ‘필 마이 리듬’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했고,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의 ‘라이’는 파야의 오페라 ‘허무한 인생’ 중 ‘스페인 무곡’ 일부를 샘플링한 곡이다. 그룹 탑독의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 ‘심포니 25번 G단조’를, 그룹 여자친구의 ‘여름비’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인용했다.
물론 과거와 차이는 있다. 요즘 케이팝의 클래식 샘플링은 단순한 차용을 뛰어넘는다. 아이돌 그룹의 중요한 서사, 즉 일명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스토리를 특정 클래식 음악이 담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이 작곡가는 “최근 아이돌 음악은 듣는 행위 자체 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안에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클래식 음악의 스토리가 아이돌의 세계관, 음악의 스토리와 만났을 때 더 큰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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