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 안내문에 적힌 31글자, 이게 뭐죠?
말과 글은 누군가가 알아듣기 쉽게 써야 한다.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공공언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쉽게' 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이 물음에 '외국인이 알아들을 정도면 누구나 알지 않을까'라는 대답으로 이 보도를 기획한다. 공공 기관에서 나온 각종 안내문을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며, 쉬운 우리말 찾기에 나선다. <기자말>
[뉴스사천 심다온]
국립국어원이 2019년에 내놓은 중앙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 보고서에는 핵심 정보를 적절한 양으로 제공하는지, 각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거나 짧지 않고 적당한지, 글씨체와 크기, 여백이 적절하여 보기에 편리한지 등을 묻는 문항이 눈에 띈다. 이 기준들은 공공언어 생산자가 아니라 공공언어를 읽는 국민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어서 더욱 적절하게 다가온다.
▲ 주거 분야 첫 번째 공문서 '2022년 7월 행복주택 예비입주자 통합 정례모집 사전 안내'. |
ⓒ 뉴스사천 |
'2022년 7월 예정되어 있는 LH 행복주택 예비 입주자 통합 정례 모집 관련 자격 및 모집단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사전 안내합니다'란 표현은 하나의 문장에 두 가지 내용을 억지로 붙여 넣어 읽기에 어색하다.
이런 경우 간결한 구조로 문장을 나눠 쓰면 자연스럽게 내용을 연결할 수 있다. 'LH 행복주택 예비 입주자 통합 정례 모집이 2022년 7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입주 자격 및 모집 단지에 대한 정보를 다음과 같이 안내합니다'라고 쓰면 훨씬 읽기가 편하다.
길게 쓰인 문장은 대부분 이중 수식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런 구조는 문장 성분 간의 호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읽을 때 어색하다. '대학생: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다음 학기에 입·복학 예정인 혼인 중이 아닌 무주택자'란 대목에서도 ~인이란 수식 구조를 없애고 연결 어미를 써서 각 내용을 잇는 것이 덜 낯설다.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다음 학기에 입학 또는 복학할 예정이면서 혼인 중이 아닌 무주택자'로 고치면 더 낫다는 얘기다.
▲ 주거 분야 두 번째 공문서 '내집 마련 디딤돌 대출' |
ⓒ 뉴스사천 |
대출을 위해 찾아가야 하는 접수 기관을 소개하면서 4개 기관의 이름을 촘촘히 붙여둔 것인데, 매우 불친절한 중얼거림이다. 이를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기금 수탁 은행'으로 쉼표를 이용해 띄어 써 주면 이용자가 어디로 가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대출 실행 후 1개월 이내 전입, 1년 안 실거주-단, 타당한 사유 확인 시 2개월 연장 가능, 위반 시 기한의 이익 상실 처리'라는 표현에선 안내할 내용을 적절히 띄어 적었으나, 문장 성분 간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한 조사나 어미가 지나치게 생략됐다. 스리랑카인 수랑가씨는 "이런 문장은 번역기에 입력해도 각 단어의 의미만 나와서 문장 자체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렵다"며 울상을 지었다.
위 문장을 '대출을 받은 후 1개월 안에 전입해야 하고 1년 안에 실제로 살아야 한다. 단, 타당한 이유가 확인되면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대출금을 만기일보다 빨리 갚아야 한다'로 풀어 쓰면 더 또렷한 안내가 된다. 적절한 조사와 어미를 사용해 완전한 문장 형식으로 쓰는 정성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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