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 '26살 사회운동가' 박지현이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

나주석 입력 2022. 10. 5. 11:31 수정 2022. 10. 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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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멈추면 2030 여성에게 기회 안 올까"
당의 '쓴소리꾼' 역할했지만 기득권의 벽 체감
당 안팎 질타에도 "눈치보지 않는 정치하겠다"
2030 여성 향해 "앞으로 꿋꿋이 나아가라"

편집자주 - 아시아경제는 오는 10월 개최하는 여성리더스포럼에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파워 K-우먼'으로 선정합니다. 인종·국경·장애 등 경계를 극복하고 도전하고 무너뜨린 인물들을 '파워 K-우먼'으로 정했습니다. 차별에 위축되거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맞서 싸운 사람들의 가치를 널리 알려 청소년과 여성 등에게 새로운 리더십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친 세상에 위로를 주고, 누군가의 롤모델로 자리 잡아 공동체가 다시 나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일시 | 2022년 10월 19일(수) 오전9시~오후5시20분

장소 |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2F)

※세부사항은 아시아경제 홈페이지 상단 '2022여성리더스포럼' 참고.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박준이 기자] "남성 청년 정치인이 이런 제안을 받았어도 우리처럼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했겠냐고 묻더군요. 그러자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맡겠다고 했죠."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만 26세의 한 사회운동가가 국회 제1당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순간을 이렇게 되돌아봤다.

박 전 위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 본사 11층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 때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이틀 사흘 정도 지났을 시점으로 떠올렸다. 당시 코로나에 걸려 몸도 아팠을 땐데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상임고문(현 민주당 대표)을 비롯해 윤호중 전 비상대책위원장,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번갈아가며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는 "내가 해봤던 분야도 아니고 너무 낯설고 무거운 자리인데 ‘이걸 내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주변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청년 정치인들의 설득이 컸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대선 기간 만났던 여성 의원들이나 청년 정치인들은 모두 반대했는데, 여성 청년 정치인들은 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면서 "(이들은) 그동안 여성 청년이 당대표의 자리에 앉은 역사가 없었다. 내가 여기서 멈춰버리면 또 다시 기회가 2030 여성들에게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기회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박 전 위원장은 2019년 대학생 시절 ‘추적단 불꽃’의 일원으로 ‘텔레그램 N번방’의 미성년자 성착취를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었다. 여성 친화적 행보를 내건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캠프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겸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장으로 정치에 처음 입문했다.

올해 3월 민주당의 대선 패배 이후 그가 비대위원장이 된 것은 파격이었다. 대선 패배 이후 지방선거까지 치러야 하는 비대위원장의 자리는 ‘독배’였다. 코로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대중에 등장했던 박 전 위원장은 지난 대선 정국에서 양당 대선 후보 다음으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선 그는 안팎의 비판과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당내 혁신과 성평등에 대해 쓴소리를 내며 ‘굴러온 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여성, 그리고 청년의 대표자라는 책임감을 짊어진 그의 정치는 순탄치 않았다. 주변 이들은 그가 단지 ‘얼굴 마담’, ‘꼭두각시’의 역할에 그칠 거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석달 간의 비대위원장 활동을 이렇게 털어놨다. "입을 떼는 것 하나하나가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실질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못하게 다 막는 기득권의 벽이 너무 두텁고 높았습니다."

"입을 떼는 것 하나하나가 저한테는 도전이었어요.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실질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못하게 다 막는 기득권의 벽이 너무 두텁고 높았습니다."

박 전 위원장이 선택한 길은 당의 ‘쓴소리꾼’이었다. 당이 검찰의 수사, 기소권 분리를 추진할 당시 그는 "방법과 시기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홀로 외쳤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의 비리 의혹을 비판하면서 민주당을 향해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배우자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과를 요구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당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선 유독 강하게 목소리를 내려 했다. 강경 발언은 비대위 내에서 유일했다. 재임 시절 박 전 위원장은 당내 회의에서 성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의원에게 직접 징계 검토를 지시했다. 이어 임기를 마칠 때까지도 최 의원에 대한 중징계를 반복해서 요구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강경 발언의 배경에는 바닥권인 당내 성평등 의식 수준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당내 성평등 의식에 대해 "바닥이었다. 기대 이하였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암담한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비대위 활동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인식하게 된 순간이었다.

"가해를 저지를 사람에게 화살이 향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화살이 향하는 형국을 몸속까지 깊이 실감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는 당내 주류로 불리는 남성 의원들의 침묵을 지켜봐야 했다고 했다.

당의 대표였지만 디지털 성범죄와 맞서 싸웠던 여성이기도 한 그에게 ‘마스크’는 작은 보호막이었다. 디지털 성범죄의 생리를 알고 있던 그에게 얼굴이 공개된다는 것은 딥페이크 등 합성 등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임기 초반 마스크를 벗지 않는 박 전 위원장에게 "마스크를 벗어봐라"고 외친 당내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은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그는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온 직후인 지난 8월초 ‘텔레그램 능욕방’이 처음 생겼다. 내가 어떤 권한도 없다보니, 정말 약자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구나하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고 토로했다.

그의 튀는 행보 탓에 당 안팎의 질타도 강했다. 당 안에서는 ‘자중하라’는 주류 의원들의 목소리가, 당 밖에서는 ‘내부총질을 멈추라’는 강성 지지층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를 포기하지 않게 했던 건 자신을 믿는 이들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었다.

"불꽃 활동을 할 때부터 ‘눈 앞에 잘못된 것들이 뻔히 보이는데, 피해자들이 아파하고 있는데 그냥 이것을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다른 방관자들이랑 다를 게 뭔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내가 머리를 들이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15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당대표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에게 가장 기억의 남는 말은 한 지지자의 기대 어린 응원이었다. 그는 "최근 어떤 분이 주신 편지에 ‘스스로 잡초가 되길 택했으니 잡초처럼 뽑히지 말아라’는 글을 봤다고 적혀 있었다. 잡초 말고 정말 튼튼한 거목이 되어서 뿌리를 내려 절대 뽑히지 말라는 이야기를 보고, 정말 나에게 기대를 거는 분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욕을 먹을지언정 내가 마냥 틀린 길을 걷진 않았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위원장은 국회가 변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변화에 일조했다거나 변화됨을 체감했다는 생각이 들었나’는 질문에 박 전 위원장은 "글쎄"라며 "몇몇 의원들의 경우는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더라. 그게 진심일지는 국회에 돌아가서 현실을 지켜봐야 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석 달간의 비대위원장 활동을 마치고 그는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다. 하지만 당헌당규 상 출마 자격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당 안팎의 반대가 빗발쳤다. 주변에선 ‘가만히 있으면 공천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무리를 하냐’고 조언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당에 공식 논의를 요청했다. 당대표라는 목표를 철회하지 않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공천을 받고 싶다고 해서 할 말을 못할 거면 정치인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눈치를 안보고 할 말 하는 정치인으로 계속 남아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눈치보지 않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불꽃 활동을 할 때부터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기득권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치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좋은 인식을 부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요."

그는 현재 오는 10월 말~11월 초 출간 목표로 비대위원장 시절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여성 청년들에겐 "앞으로 걸어 나가라"고 조언했다.

"이 사회는 여성, 그리고 청년에게는 더욱 더 엄격한 사회고 더 녹록지 않은 사회입니다. 여성이나 청년 한명이 누군가 잘못하면 모든 여성, 청년을 싸잡아서 욕하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이 있지만,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주변에서 뭐라고 핍박을 하든 회유를 하든, 넘어가지 말고 앞으로 꿋꿋하게 걸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프로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1996년생 ▲원주시 치악고등학교 ▲한림대학교 언론방송융합미디어학과 ▲2019년 n번방 사건 추적단 불꽃 활동 ▲2022년 1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2020년 3월~2022년 6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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