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상과 성조기를 한번에 그리니 나타난 효과 [서울을 그리는 어반스케쳐]

오창환 2022. 10. 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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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 기법으로 그림 그리기

도시와 사람을 그리는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기자말>

[오창환 기자]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그렸다. 건너편에 성조기가 보인다.
ⓒ 오창환
지난 기사에서 좋은 어반스케치의 기준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디테일이 있는 정교한 그림일 것. 둘째, 스타일이 있을 것. 셋째로는 스토리가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토리가 중요한 이유와 그림에 스토리를 넣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했는데 이번 기사에서 그것을 다루려고 한다. (관련 기사 : 좋은 어반스케치에는 세 가지가 있다 http://omn.kr/1z9mu)

성조기와 세종대왕상을 같이 그린 이유

나는 영화의 몽타주 기법으로 그림에 스토리를 넣는다. 몽타주(montage)는 본래 '조립'을 의미하는 프랑스 말인데 영화에서 각 샷(shot)을 촬영한 필름들의 편집 기술로 구소련 영화가들이 이를 미학적 원리로 발전시켰다.

레프 쿨레쇼프(1899~1970)는 구소련의 영화감독이며 모스크바 영화학교 교수였는데 1920년대 이후에 활동한 소비에트 영화감독 중 절반 가량이 그의 제자였다. 그는 다양한 샷의 결합을 연구했는데, 어느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 클로즈업 샷을 김이 나는 수프 한 접시, 관에 누워 있는 여인, 그리고 곰인형을 갖고 노는 어린이 샷과 결합했다.

그것을 본 관객들은 그 배우의 얼굴에서  각각 배고픔, 슬픔 그리고 흐뭇함을 느꼈다. 쿨레쇼프는 샷의 연결만으로 관객들에게 특정 의미를 전달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후에 이 실험을 쿨레쇼프 효과라고 이름 지어졌는데 몽타주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쿨레쇼프의 제자인 푸도프킨은 스승의 이론을 발전시켜 '통합적이고 중단되지 않은 연속적인 액션' 그리고 샷들 사이의 '아주 명백한 연결'을 몽타주의 원리로 주장했다. 샷과 샷의 연결이 문장에서 주어와 술어처럼 기능하는 것이며, 이를 '연결의 몽타주'라고 한다.

구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전함 포템킨>을 연출한 에이젠슈테인은 샷들 사이의 부드러운 연결이 아니라 충돌에 의해서, 서로 상충되는 두 조각들의 대립에 의해서 새로운 개념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을 스스로 '충돌의 몽타주'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한자의 구성 원리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한자에서 개를 의미하는 견(犬)과 입을 나타내는 구(口)가 결합해, 짖을 폐(吠)라는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개와 입이라는 두 개의 상충되는 요소들이 결합해 '짖다'라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김용수, <영화에서의 몽타주 이론> 참조)

몽타주 이론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영화 이론이지만,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과 사진, 회화 등 시각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영화를 넘어 하나의 보편적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몽타주 기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몽타주가 관객들의 반응을 조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매스미디어의 대중 의식 조작이나 가짜 뉴스의 근원을 몽타주 기법에서 찾기도 한다.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했던 나로서는 몽타주 이론을 좋아하고, 또 그 기법을 내 그림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영화처럼 편집을 할 수 없는 그림에서 몽타주를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이한 요소를 한 장면에 놓는 것을 '적스타포즈(juxtapose)'라고 하고 우리말로 '병치(竝置)하다'라고 해석한다. 적스타포즈(juxtapose)는 옆이라는 뜻의 적스타(juxta)와 둔다라는 포즈(pose)가 합쳐져서 '옆에다 둔다"라는 뜻이다. '병치(竝置)하다'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긴 한데, 설 립(立)자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글자 모양에서 보이듯이 "나란히 둔다"라는 뜻이다.

결국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것 옆에 다른 것을 둠으로 어떤 것과 다른 것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내 그림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세종대왕동상 앞. 행사가 광장을 막고 있어서 세종대왕 동상 앞이 조용하다.
ⓒ 오창환
 
얼마 전에 광화문에서 어반스케쳐스 서울 정기 모임이 있었다. 오전에는 충무공 동상을 그렸고, 오후에는 세종대왕 동상을 그렸다. 세종대왕 동상과 세종문화회관 사이에 돌로 된 큰 테이블이 놓여 있어, 그림 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날 마침 청년의 날 행사가 있었고, 시위도 있어서 광화문 일대가 시끄러웠다. 그런데 행사장이 막고 있어서 그런지 세종대왕 동상 앞은 비교적 조용했다.

세종대왕 동상을 그리다 보니까 길 건너편 미국 대사관 건물에 성조기가 걸린 것이 보여서 세종대왕과 성조기를 병치해서 그렸다. 상이한 두 요소를 그려넣으니까 그림이 생기가 돈다. 그러면 이것은 연결의 몽타주인가 아니면 충돌을 몽타주인가? 나는 그에 대한 답을 하고 싶지 않다. 그에 대한 답은 보는 사람의 몫이며, 나는 단지 어떤 요소들을 병치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나의 그림과 조각에 스토리를 넣는 방법
 
▲ <명상> 한 사나이가 탑을 보고 명상에 잠겨있다. 도자조각 작품.가로 49cm 높이 16cm
ⓒ 오창환
   
 그 사나이는 여체 모양의 땅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 오창환
예전에 한동안 도자 조각 작업을 했었다. 한 사나이가 탑을 보면서 영상에 잠긴 작품이다. 그런데 위에서 보면 그 사나이가 앉아 있는 땅이 여체로 보인다. 탑이 명상과 이상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을 나타낸다면 여체는 여성이라고 볼 수도 있고, 대지라고 볼 수 있고,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상충되는 두 요소를 병치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그 사나이는 작가가 될 수도 있고 관객도 될 수 있는데, 그 사나이의 머릿속에 탑이 있는지 여체가 있는지는 보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다.

몽타주는 나의 그림에 스토리를 넣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난 5월에 처음으로 개인전을 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작품이 팔렸다. 그것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내 그림 속에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게다가 그림에 관련된 기사를 쓰니까, 그 기사를 읽고 온 사람에게 그 그림은 동영상이 된다. 

나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어반스케치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그리기에 좋다. 우리 주변과 여행지에는 무수한 스토리가 깔려 있다. 그런데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그 너머도 보면서 그 주변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 여러 요소를 병치한다면 더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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