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자아 중독 시대, 자존감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2022. 10. 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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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자아 중독 시대다. 어떻게든 ‘나’를 드러내 보이려는 몸부림이 안타깝다. 곳곳에서 나는 소중한 사람, 나는 좋은 사람, 나는 아름다운 사람, 나는 행복한 사람 등을 연출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 반응을 유도하는 자기 표출 행위가 넘쳐난다.

개인 성격 탓만은 아니다. 일터 등에서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한없이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소진돼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충전 시간을 좀처럼 얻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 누구나 자신이 무너지는 끔찍하고 무서운 느낌에 시달린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작가 장유진은 물었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모두 한 번쯤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무시당한 듯하고, 모욕당한 것 같을 때, 어떻게든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시작되게 마련이다.

개인 데이터를 통째로 뽑아내 장사에 써먹으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자아의 발버둥을 미끼 삼아 바람직한 자신을 연출하고 드러내도록 부추긴다. 실제의 나보다 ‘있어 보이는 나’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측정하는 주관적 평가 시스템을 뜻하는데, 이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존감을 위한 잦은 자기 노출은 자아 중독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타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아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과장된 자아는 인간을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빠뜨리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타자에 대한 사이코패스적 공격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욱이 한순간 환영은 사라지고 어느새 환상은 깨어진다. 보이는 나와 실제 나의 괴리, 즉 강박적 자기 과장은 결국 자기부정과 혐오를 일으킨다.

자존감은 물론 중요하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나라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너무나 비참하지 않은가. 현실이 아무리 시궁창이어도 나를 사랑하는 나만 있다면 지옥에서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자존감은 왜소한 나를 위로하고, 절망한 나를 격려하는 최후의 보루다. 세상이 나를 넘어뜨릴 때 자존감은 스스로 나를 보듬어 타자와 세상에 패배하지 않도록 지켜준다.

그러나 정확한 자기 측정을 동반하지 않는 자존감은 넘어진 사람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자아를 바꾸고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았을 때만 자신을 교정할 수 있다.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가 자기 인식, 즉 “너 자신을 알라”를 지혜의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다. 진정한 자기 돌봄은 언제나 현재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본 후, 자기 안에서 공격을 담당할 부분(양심, 정의, 용기, 진실 등)과 공격당할 부분(죄악, 불의, 비겁, 거짓 등)을 구분하는 일에서 시작됐다.

좋은 자기 인식은 사람을 바꾼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아는지 정확히 파악하기에 남보다 훨씬 잘 배우고, 타인도 나와 같은 마음이 있음을 알기에 남들과 협업에도 능하다. 또 자신의 하루하루를 돌이키면서 나날이 자신을 고쳐 가기에 남보다 좋은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잘못을 쉽게 발견하기에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측정에서 비롯한 자신감이다. 자존감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나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느냐를 말해 줄 뿐, 실제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 해낼지를 믿는 마음은 아니다. 자존감을 품고 비루한 현실에서 어떻게든 나를 지키고자 애쓸 수는 있으나 실제로 현실의 자아가 변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거품과 기만뿐이다. 자기를 사랑한다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자신을 돌이키면서 앞날의 불확실에 맞서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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