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품은 한화..김승연 '육해공 방산 강자' 숙원 풀었다
한화그룹이 2조원을 들여 대우조선해양을 전격 인수한다. 2001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조선해양은 21년 만에 새 주인을 맞게 됐지만 인수를 마무리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화, 2조원 유상증자 추진
▷산은 대우조선 2대 주주로
KDB산업은행은 지난 9월 26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한화그룹과 2조원 규모 대우조선해양 유상증자를 포함한 조건부 투자합의서(MOU)를 체결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MOU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고 한화그룹은 2조원을 투입해 지분 49.3%를 확보한다. 유상증자에 참여할 한화그룹 계열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1조원), 한화시스템(5000억원), 한화임팩트파트너스(4000억원), 한화에너지 자회사 세 곳(1000억원)이다.
기존 대우조선 주주 지분은 그만큼 희석된다.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는 대로 산업은행이 보유한 55.7% 지분이 28.2%로 떨어져 산은은 2대 주주로 바뀐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대우조선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민간 주인 찾기가 근본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대기업에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결과 한화그룹이 의향을 표했다”고 말했다.
다만 한화그룹 인수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산업은행은 경쟁 입찰 공고를 내고 대우조선해양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먼저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과 조건부 투자 계약을 맺고, 이후 경쟁 입찰을 거쳐 투자자를 최종 확정하는 ‘스토킹호스’ 방식이다. 입찰 과정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을 품에 안게 된다. 자산, 부채 실사 등을 거쳐 오는 11월 말 최종 투자자 선정, 본계약 체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전격 인수한 배경은 뭘까.
한화는 2008년에도 6조3000억원을 들여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지만 인수자금 조달 문제, 노조 반대 등으로 끝내 무산됐다. 14년 만에 다시 인수에 나선 것은 방위 산업, 에너지 산업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화는 국내 대표 방산 기업이면서도 육군, 공군에 비해 해군 분야가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주사 격인 ㈜한화는 유도무기와 탄약,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을 생산해왔다. 한화디펜스와 한화시스템은 각각 자주포와 장갑차, 통신 레이더에 특화돼 있다. 항공과 육상 무기 체계를 갖췄지만 해상 방산 역량은 부족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구축함 등을 만드는 국내 1위 함정 건조업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입장에서 해상 방산 역량을 키워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2030년 글로벌 방산 톱10’이라는 목표에도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때마침 한화그룹이 방산 부문 사업 재편을 통해 ‘한국형 록히드마틴’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만큼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방산뿐 아니라 에너지 사업에 거는 기대도 크다. 한화그룹은 액화천연가스(LNG), 수소발전 사업을 하는 한화임팩트를 계열사로 뒀다. 대우조선해양은 ‘바다 위 LNG 생산기지’로 불리는 부유식 LNG 생산 저장 하역설비(FLNG)와 LNG 운반선 건조 능력을 갖췄다. 한화가 친환경 에너지 밸류체인을 새로 구축하고, 대우조선해양의 해상풍력설치선을 활용해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키울 가능성도 높다.
▶과제는 없나
▷매출원가율 높아 적자 탈출 난망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 재무구조가 부실한 데다 노조도 반발하는 만큼 인수 과정이 마냥 순조롭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들어 9월까지 86억달러 상당 일감을 확보해 수주 목표치(89억달러)의 97%를 달성한 상태다. 연말에는 카타르 프로젝트 LNG 운반선 발주도 예정돼 있어 무난히 목표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문제는 조선업 불황 이후 최근 몇 년 새 저가, 출혈 수주 경쟁에 시달리면서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됐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올 6월 말 기준 부채 비율은 676%에 이른다. 지난해 6월(274%) 대비 400%포인트 이상 치솟았다. 부채 비율이 높아진 것은 대규모 영업적자가 쌓인 탓이다. 지난해 1조7547억원 영업적자를 냈고, 올 상반기 적자도 5700억원에 달했다. 하반기에도 적자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대우조선해양 흑자전환이 어려운 것은 출혈 수주 경쟁으로 제값을 받지 못한 데다 선박에 쓰이는 후판 원재료 가격이 뛰면서 ‘매출원가율(매출액 대비 원가 비율)’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대우조선해양의 매출원가율은 118.5%에 달했다. 현대중공업(101.8%), 삼성중공업(105.6%)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배를 만들면 만들수록 오히려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는 의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은 불황기에 저가 덤핑 수주한 물량이 워낙 많아 심각한 적자에 허덕여왔다. 게다가 또다시 조선 경기가 꺾이면 수주 경쟁력이 추락해 한화그룹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노조 반발도 변수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속한 전국금속노조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매각 과정에 노조가 참여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일방적으로 밀실, 특혜 매각을 진행한다면 전면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화 측에는 총고용 보장과 함께 하청 근로자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가압류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우조선해양은 6월 이후 51일간 파업을 진행한 하청 근로자들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앞서 2008년 한화, 2019년 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에 나설 때도 거세게 반발했다. 한화 측에는 고용과 임단협 승계, 매각에 따른 위로금 지급, 회사 자산 처분 금지 등을 요구했고 현대중공업그룹 인수 시도 당시에도 구조조정 우려를 제기하며 현장 실사를 막았다. 한화 측은 “노조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노사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사 갈등이 잠잠해질지는 미지수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방산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에 나설 경우 노조와의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그동안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를 감안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은 대우조선 경영 정상화를 위해 그동안 7조원 넘는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인수대금보다 큰 영구채도 무시 못할 변수다. 대우조선해양은 과거 수출입은행으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뒤 영구채, 즉 만기 30년짜리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공적자금을 갚지 못하자 수은이 대우조선해양 재무건전성을 고려해 영구채로 돌렸다. 영구채 규모만 2조3328억원 수준이라 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자칫 한화가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수은이 영구채를 지분으로 전환한 뒤 한화에 넘기고, 한화의 일정 지분을 수은에 주는 시나리오도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영구채 해소 방안이 이번 인수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