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화·국채값 폭락에 감세 철회.."트러스 굴욕적 유턴"
영국 리즈 트러스 정부가 3일(현지시간)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들은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달 23일 1972년 이후 최대 규모(약 72조원) 감세안을 발표한 지 열흘 만이다.
BBC 등에 따르면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기업 지원과 저소득층 세 부담 감면 등 우리의 성장 계획은 더 번영하는 경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었다”면서도 “(소득세) 45% 세율 폐지는 영국이 당면한 도전에 대처하는 우리의 최우선 임무에 방해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트러스 총리도 콰텡 장관의 성명을 공유하면서 “이제 초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공 서비스에 자금을 지원하고, 임금을 인상하며, 국가 전역에 기회를 창출하는 고성장 경제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적었다.
당초 트러스 정부는 이날 보수당 총회 직전까지 감세안 고수를 천명했지만, 일부 감세안을 철회했다. BBC는 “감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트러스 총리의 발언 하루 만에 나온 결정”이라며 “거대하고 굴욕적인 유턴”이라고 평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파운드화는 발표 후 소폭 반등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옵션 거래인들의 말을 인용해 소득세 최고세율 감세 철회만으로는 파운드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로 줄어드는 세수는 지난달 23일 발표한 전체 감세 규모 450억 파운드(약 72조원) 중 20억 파운드(약 3조원) 안팎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당초 이번 감세안은 내년 0%로 추정되는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5%로 끌어올리기 위한 공격적인 부양 조치였다. 문제는 이 같은 감세로 인한 정부 재정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빠졌다는 점이다.
시장에선 이를 영국 정부가 엄청난 금액의 국채를 발행해 메운다고 받아들였다. 이 충격으로 영국 국채 가격은 폭락(국채 금리 폭등)했고 파운드화 가치도 급락했다. 영국 정부가 감세 조치를 통해 재정을 망가뜨리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지난달 27일엔 국제통화기금(IMF)까지 나서 “감세 정책이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을 훼손할 것”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채권을 매입해 가격 급락을 막겠다며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고 있는 정책 기조와 반대된다는 지적과 함께 되레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비관론이 퍼졌다.
급기야 지난달 30일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국가신용등급 강등 위기까지 불거졌다. 외신들에선 영국이 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설까지 보도됐다.
AP통신은 “수백만 명이 치솟는 에너지 요금으로 인한 생계비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런 가운데 최상위 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은행원의 상여금 상한선을 폐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독이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에 트러스 총리는 취임 한 달 만에 사임 압박에까지 시달렸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엄이 최근 실시한 온라인 설문에서 트러스 총리의 직무 수행 지지율은 불과 18%였다.
이번 정책 철회에도 트러스 총리와 콰텡 재무장관에게 정치적 후폭풍은 이어질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5% 세율 폐지안에서 후퇴하면서 트러스 총리가 (법인세 인하 등) 다른 감세안도 철회하라는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승호·김홍범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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