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챙기고 낮은 목소리 경청.. DMZ영화제 따뜻한 '선택'
[성하훈 기자]
▲ 지난 22일 파주 임진각에서 개최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 측하 공연을 맡은 '모어'의 무용 |
ⓒ DMZ다큐영화제 제공 |
성소수자 모지민(모어)의 개막식 축하 공연과 아프가니스탄 기여자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들을 위한 촬영지원까지.
지난 9월 29일 폐막한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조직위원장 김동연, 집행위원장 정상진, 이하 'DMZ다큐영화제')에서 영화 프로그램 외에 눈길을 끈 것은 사회적인 약자들과 경계인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연대였다.
영화제라는 것이 영화 상영과 산업을 중심에 두고 있으나,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였기 때문이다. 분단의 상징인 DMZ를 이름으로 사용하며 '평화, 소통, 생명'의 가치를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영화제의 정체성은 올해 유난히 돋보였다.
개막식을 여는 공연은 소수자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였다. 모지민(모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의 주인공으로 발레리나, 뮤지컬 배우, 안무가, 작가로 살아왔으나 성소수자로서 언제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자신을 짓누르는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억압에 굽히지 않고 타고난 끼를 펼치며 극복해내는 아티스트로 활동해 오고 있는데, DMZ 다큐영화제가 개막 공연으로 선택한 것은 이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사진작가 보내 비전향 장기수 촬영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에 대한 배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제 기간 중인 지난 25일 수도권 지역에 거주 중인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영화제에 초청됐다. 이들이 관람한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영화 다큐멘터리 <그래도 나는 노래하리>(And Still I Sing)를 특별상영했다.
▲ 비전향 장기수 김영식, 박희성, 양원진, 양희철 선생 |
ⓒ 김홍구 작가(DMZ다큐영화제 제공) |
특히 비전향 장기수들을 위한 사진 촬영은 분단의 현실을 온몸으로 안고 살아가는 분들을 기억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천한 것이었다.
DMZ다큐영화제는 지난 9월 16일(금) 비전향 장기수들이 함께 사는 서울 봉천동 '만남의 집'에서 국내에 남아있는 9분의 비전향 장기수 중 김영식, 박희성, 양원진, 양희철 선생 등 네 분의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이들의 사는 모습을 담은 김동원 감독 <2차 송환>의 상영과 연계한 것으로,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공식 포스터의 사진을 제공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흥구가 촬영을 맡았다.
다들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고 쇠약해진 분들도 있기에, 작지만 세심한 배려였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파주 임진각에서 진행된 DMZ다큐영화제 개막식에도 초청됐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말에 이분들의 참석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제 준비과정에서 개막선언을 맡기는 것까지 논의됐었다고 한다.
약자들 비춘 작품들 주로 수상
공교롭게도 올해 수상작품들 역시 이런 기조에 맞닿아 있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 억울함을 당하고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사람들과 기층 민중들의 삶을 비춘 영화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대상 수상작 비극이 잠든 땅.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접경도시 스레브레니차(Srebrenica)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 DMZ다큐영화제 제공 |
아시아 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인 스노우 흐닌 아이흘라잉 감독의 <미얀마의 산파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미얀마에서 철저히 고립된 채 되어 차별과 배제의 위험 속에 살아가는 로힝야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사위원단은 "평범한 사람의 눈을 통해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과 차별, 무슬림과 불교 간의 갈등, 미얀마의 쿠데타, 성평등 등의 중요한 이슈를 다루면서 경계와 관련된 주제를 잘 녹여냈다"고 평가했다.
한국 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설경숙 감독의 <씨앗의 시간>도 묵묵히 땅을 일구고 씨앗를 뿌리는 모습을 농민들의 노력을 섬세하고 정감있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농부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이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활력 넘치는 리듬을 섬세하게 카메라의 시선에 담아내며, 사라져가는 느린 삶의 귀중함과 고된 노동의 숭고함에 시적인 예의를 표한 역작"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단의 평가였다.
영화제가 의미와 메시지 던질 수 있어야
DMZ다큐영화제 정상진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행사라고 볼 수 있으나, 의미와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며 "영화제를 준비하며 하나의 프로젝트로 사회 속 낮은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특히 비전향 장기수들을 챙긴 것에 대해서는 "영화제의 취지와 메시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2차 송환> 상영에 맞춰 비전향 장기수들의 사진 촬영을 기획했다"며, "이분들 가족 중 북한에 살아 계시는 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인도적 차원에서 사진으로나마 이들의 안부를 북쪽에 대신 전해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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