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민중을 웃기고 울린 조선시대 아이돌 '남사당' 21세기 무대서 만나볼까요

한은정 2022. 10. 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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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떠돌며 곡예·춤·노래 종합 공연 남사당놀이로 전통의 흥 DNA 이어가

조선 후기 대중음악을 이끌며 민중들의 연예인이 된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사당패가 그 주인공이죠. 남사당은 조선 시대 서민층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발전했고, 전국의 장터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곡예‧춤‧노래를 공연했던 유랑예인집단이에요. 1000만 관객이 찾은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 장생과 공길도 남사당패 일원이었죠. 그들도 전국을 떠돌며 민중을 위한 공연을 펼쳤습니다. 우리 대중문화의 원류를 찾는 중심점에 빠지지 않는 남사당패에 대해 알아보고,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남사당놀이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풍물놀이는 20~30명이 꽹과리·장구·북·징·소고·태평소를 연주하며 다양한 움직임과 놀이를 보여준다.

남사당패는 전문화된 공연집단으로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했죠. 특히 사찰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는데, 사찰에 주로 머물면서 승려들이 만드는 부적을 팔고, 수입의 일부를 절에 기부하면서 활동했어요. 40~50여 명의 무리를 이루며, 역할에 따라 철저하게 업무를 나눠 조직화돼 있습니다.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는 꼭두쇠라고 해요.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을 진 단장이죠. 2인자인 곰뱅이쇠는 공연을 기획하고 마을에서 공연하기 위해 양반 사대부들의 허가를 받는 일을 담당했죠. 각 연희 분야의 우두머리로 조장에 해당하는 뜬쇠가 있고, 그 아래로 규모에 따라 해당 연희를 익힌 가열(보통 기능자)들을 둡니다. 가열 밑에는 초입자인 삐리가 있죠. 삐리는 꼭두쇠의 판단에 따라 적당한 뜬쇠에게 배속돼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점차 재주를 익혀 가열로 성장해요. 서열이 엄격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세대를 이어 기술을 전수했죠. 이밖에 장터를 옮겨 다닐 때 짐을 등에 지고 다니는 등짐꾼 등이 있어요.

남사당놀이 알아보기

남사당에 대해 알아보고 체험한 소중 학생기자단. 왼쪽부터 버나를 든 문시윤 학생모델, 한삼을 착용한 민유빈·어름산이로 변신한 정해원 학생기자.

남사당에서 전승된 전통연희와 놀이를 남사당놀이라고 합니다. 현재 여섯 종목이 전해지지만 과거에는 훨씬 다양했죠. 한국의 전통성과 총체적 놀이성을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사당놀이는 풍물, 버나(접시돌리기), 땅재주인 살판, 줄타기인 어름, 탈놀이인 덧뵈기, 인형극‧꼭두각시놀음인 덜미 총 여섯 마당으로 구성됩니다. 이밖에 상모돌리기, 북춤, 무동놀이 등 10여 가지 세부 기예가 전승되고 있어요. 풍물에 사용되는 악기를 연주해 배경음악으로 삼고 놀이판마다 재담과 해학, 익살, 사회 비판의 요소를 갖고 있죠.

남사당놀이는 재치 있는 대화와 상징적인 춤과 몸짓을 통해 자유와 평등사상을 옹호했습니다. 단지 흥만 주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단이 없던 민중을 대신해서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들어졌죠. 양반 사회를 비판하는 놀이를 펼치며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성들의 삶을 해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성 평등과 인간 존중의 이상을 보여주기도 했죠. 민중에게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지배층에겐 혐오의 대상이었어요. 남사당놀이는 현대 문화 창조의 원천으로서 한국 공연예술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어요. 앞으로 다양한 문화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용 가능합니다.

■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

풍물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풍물놀이는 20~30명이 꽹과리·장구·북·징·소고·태평소를 연주하며 진풀이·무동(새미놀이)·벅구놀이·채상놀이·선소리 등 다채로운 공연으로 연결됩니다.

버나 가정에서 곡물을 거르는 데 쓰는 채를 돌리기 쉽도록 가죽으로 둥글고 넓적하게 개조한 것을 돌리는 것을 말해요. 재담을 주고받으면서 담뱃대나 기다란 나무로 버나를 돌리고 하늘 높이 던지며 받아내는 공연이죠.

살판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음 판이라’라는 말에서 살판이라는 제목이 붙여졌어요. 어릿광대와 꾼이 재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땅재주를 부리는 놀이로 흥이 넘치는 남사당 풍물 가락에 익살 넘치는 공연을 보여주죠.

어름 ‘줄타기 놀이’의 남사당 용어로 줄타기하는 사람을 ‘어름산이’라고 부릅니다. 어름산이가 3m 높이의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며 매호씨(재담을 주고받는 상대)와 재담을 주고받는 놀이로 해학과 흥이 넘치죠. 줄 위에서 하늘 위로 높이 치솟으며 부리는 재주는 손에 땀을 쥐고 보게 해요.

덧뵈기 ‘탈을 쓰고 덧본다’라는 뜻에서 사용된 탈춤놀이의 남사당 말이에요. 남사당의 덧뵈기는 우리나라의 남부·중부·북부지방의 다양한 탈놀이를 종합하여 만들었죠. 특정 지역성을 띄지는 않지만 재담·춤사위·연희 등 해학적인 풍자와 세련된 만담이 다른 지역의 탈놀이와 차별성을 갖습니다.

덜미 민속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의 남사당 용어로 목덜미를 쥐고 노는 인형놀이 또는 뒷덜미를 잡혀서 노는 인형놀이라는 뜻에서 유래됐어요. 박첨지 놀음, 꼭두 박첨지 놀음 등의 용어로도 불리죠.

바우덕이 후예,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
남사당패 중 안성 남사당패가 전국 최고로 자리매김한 것은 ‘바우덕이’라는 인물 때문입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바우덕이의 본래 이름은 김암덕.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등지자 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남사당에 입단한 바우덕이는 선소리, 줄타기, 풍물, 무동 등 공연예술을 두루 익혀 15살 때 꼭두쇠로 추대됩니다. 남사당 최초이자 최후의 여성 꼭두쇠였죠.

남사당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문시윤 학생모델·민유빈·정해원 학생기자(왼쪽부터)가 안성 바우덕이 풍물단의 공연을 보고, 직접 남사당놀이를 배워봤다.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가 평범한 서민 공연단에서 조선의 대표 공연단으로 껑충 뛰어오른 계기는 경복궁 중건입니다. 1865년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은 바우덕이는 경복궁 중건 현장에서 탁월한 능력으로 공연해 인부들의 고달픔을 덜어줬고, 엄청난 규모의 중건사업은 잘 마무리될 수 있었죠. 그 공으로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당상관 벼슬아치들이 쓰는 옥관자를 하사받았어요. 그 후 전국 공연을 다니면 그 지역 남사당패가 절을 하며 맞아들일 정도로 존경받았죠.

이때부터 안성 남사당패는 ‘바우덕이’라는 통칭으로 불렸으며 ‘바우덕이가 왔다’ 하면 구경꾼이 몰려들었다고 해요. 천부적 재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그 시대의 스타였던 셈이죠. 안성시는 안성 남사당패와 바우덕이의 업적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0년 남사당 전수관을 건립하고 2001년부터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를 열었어요. 2002년엔 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을 창단, 매주 상설공연을 열고 유익한 체험, 교육을 개발·보급함으로써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안성시 보개면에 있는 안성맞춤랜드의 남사당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허공에 매달린 팽팽한 외줄 위에서 잰걸음으로 걷고 달리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다.

남사당에 쓰이는 소품과 각종 굿즈를 살펴본 뒤 원형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판 신명 나게 놀아볼 준비를 하니 무대에 어름산이가 등장했습니다. 공중에서 부리는 재주가 ‘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다’,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듯이 어렵다’는 뜻으로 붙인 어름은 남사당 기예 중 으뜸으로 꼽히는데요. 허공에 매달린 팽팽한 외줄 위에서 잰걸음으로 걷고 달리고 공중회전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죠.

“굿거리장단 가볼까요!” 덩기덕 쿵더러러! 어름산이의 외침에 풍물패의 신나는 가락이 연주됐죠. 높이 3m, 길이 10m 줄 위를 겅중겅중 타기 시작했어요. 떨어질 듯 고의로 실수를 해 보이며 아슬아슬 비틀비틀 건너갑니다.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걸음걸음. 하지만 줄처럼 탄력이 좋은 몸놀림과 활짝 펼쳐진 부채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나갔어요. 줄 건너기에 성공하자 관객들은 조였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아 내가 어렵게 건너고 싶어서 건너는 게 아니라 잘 치는 사람은 잘 쳐주는데 어떤 분은 박수를 걸쩍지근하게 쳐주시니까 힘이 안 나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상모돌리기는 모자를 쓰고 모자에 매단 장식을 돌리면서 추는 춤을 의미한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 공연에서는 12발 상모돌리기를 볼 수 있다.

“이 어름산이가 어떻게 가는지 두 눈 크게 뜨고 보세요. 알았죠. 이제 옆으로 앉았다 일어서면서 놀아볼게요.” 선창하면 관객들이 이내 따라 했습니다. “얼쑤!” “잘한다” “지화자!” “좋다!” 이에 신바람이 난 어름산이는 엉덩이로 줄 위에 앉았다가 일어서고, 가랑이 사이로 줄을 타며 줄의 탄력을 이용해 높이 뛰는 등 기발한 묘기를 선보였죠. 일부러 줄 아래로 떨어지다가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기술을 보이면 관객의 심장도 철렁 내려앉아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방방 뛰었더니 엉덩이가 아파요.” 끊이지 않은 재담에 웃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재주를 다 보여주고 줄에서 내려갈 때도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맞춰서 내려갔죠.

긴 채를 단 채상모를 돌리면서 추는 상모춤도 볼 수 있다. 허공을 휘저으며 돌아가는 채상의 멋과 다양한 춤사위가 사람들의 관심과 흥을 이끌어 낸다.
긴 채를 단 채상모를 돌리면서 추는 상모춤도 볼 수 있다. 허공을 휘저으며 돌아가는 채상의 멋과 다양한 춤사위가 사람들의 관심과 흥을 이끌어 낸다.

다음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신명을 북돋우는 풍물을 선보였습니다. 놀이판을 열고 흥겨운 장단과 악기별 연주, 다양한 움직임과 춤을 보여주죠. 풍물패의 다양한 움직임을 진법이라고 하는데, 형태에 따라 외줄, 쌍줄, 네 줄의 형태를 비롯해 원형, 삼각형, 오각형, 지그재그 등 다양한 대형을 지닙니다. 그리고 벅구놀이, 상모돌리기, 무동타기, 아이를 던져 받는 새미받기 등의 다양한 놀이가 있어요.

풍물놀이에서 소고를 맡아 치는 사람이 몸을 공중에 날리며 비스듬히 원을 그리는 춤사위를 선보였다. 뒤로 눕다시피 하여 빙글빙글 도는 동작이다.

웃다리 가락의 풍물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박자를 맞추며 공연에 합류했습니다. 줄타기를 보며 덩달아 긴장되었던 근육은 풍물 소리에 들썩이다 보면 절로 풀어지는데요. 태평소 소리가 자지러지게 심금을 울리고 꽹과리·북·장구·징·소고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대를 힘차게 누볐고, 12발(발 12개를 합친 길이, 약 18m) 리본이 달린 상모도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갔어요.

공연 중간쯤 버나 묘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 버나를 던지고 주고받으며 묘기를 보여주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버나에 놀랄 수밖에 없었죠. 바우덕이 후예들이 펼치는 무대는 뜨겁게 달아올라 공연자와 관람자를 하나로 만들었어요. 우리 조상들이 농사일의 고단함을 이렇게 한판 놀이로 풀어냈구나 생각이 들며 답답하게 쌓여있던 일상의 피로가 시원하게 풀어지는 듯했죠.

버나는 가정에서 곡물을 거르는 데 쓰는 채를 돌리기 쉽도록 가죽으로 둥글고 넓적하게 개조한 것을 돌리며 묘기를 부리는 것이다.
담뱃대나 기다란 나무 채로 버나를 돌리고 하늘 높이 던지며 받아내는 묘기를 보여주는 와중에도 버나는 쉬지 않고 돌아간다.


남사당놀이 이수자를 만나다
안성 바우덕이 풍물단에서 징을 연주하는 김동규 단원은 상설공연에서 멋진 말솜씨를 뽐내는 사회자로도 활약합니다. 여성 어름산이 서주향 단원은 공연에서 바우덕이 역할로 큰 사랑을 받고 있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두 사람에게 남사당놀이를 간단하게 배워보기로 했어요. 먼저 서 단원이 줄 위에서 걷는 법을 시범 보여줬죠. “저는 신발을 신지 않고 줄을 타요. 쉬워 보이죠.” 허공에 매단 얇은 줄 위를 사뿐사뿐 흔들흔들 걸어갑니다. 흡사 발레라도 하는 듯 우아했죠. 이내 양반다리로 줄 위에 걸터앉아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 학생기자단의 입에서 함성이 나왔어요. 열띤 가위바위보 끝에 정해원 학생기자가 먼저 도전하게 됐죠.

처음 하는 줄타기이지만 서주향 단원이 손을 잡고 이끌어줘서 정해원 학생기자가 안정적으로 줄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처음 하는 줄타기이지만 서주향 단원이 손을 잡고 이끌어줘서 문시윤 학생모델이 안정적으로 줄 위를 걸을 수 있었다.
처음 하는 줄타기이지만 서주향 단원이 손을 잡고 이끌어줘서 민유빈 학생기자가 안정적으로 줄 위를 걸을 수 있었다.

“허리 펴고 시선은 저 끝을 보고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보세요.” 허공에 있는 가느다란 줄 위에서 중심 잡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예측 가능할 텐데요. ‘꺅~꺅~’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했지만 서 단원이 손을 잡고 이끌어줘서 모두 줄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니 훨씬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죠. 민유빈 학생기자가 줄타기에 유리하거나 잘하는 방법이 있냐고 질문했습니다. “일단 중심 자체가 흐트러지지 않고 딱 자기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힘이 필요해요. 몸이 가벼우면 많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유리한 편이죠. 무엇보다 꾸준한 연습이 중요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체험용 버나와 버나채를 이용해 돌리기, 던지고 받기, 다리 통과하기 등의 기술을 체험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체험용 버나와 버나채를 이용해 돌리기, 던지고 받기, 다리 통과하기 등의 기술을 체험했다.

“아까 공연 때 이거 봤죠?” 김 단원이 체험용 버나와 버나채를 들고 왔습니다. “버나채 뾰족한 부분을 버나 가운데 대고 돌려주면 돼요.” 버나가 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들어 돌리는 과정이 계속 반복됐죠. 다음엔 버나를 위로 던지고 버나채로 받는 걸 연습했어요. 몇 번 떨어뜨리다 보면 한번은 제대로 받는 경우도 있었죠. 이번엔 버나를 돌리면서 다리를 들어 통과시킨 후 위로 던져서 받기. 점점 난도가 높아졌어요. “다리를 들 때 허리를 숙이세요. 위로 던지는 것도 천천히 던져야 해요.”

마지막으로 덧뵈기, 탈춤 동작도 배워봤죠. 탈춤을 출 때 손목에 착용하는 긴 소매인 한삼을 착용하고 양팔을 좌우로 움직였어요. “무릎을 굽히며 하나 둘 셋 넷 양팔을 좌우로 움직이고, 다음 동작에선 손을 이마에 붙여줍니다.” 한삼을 쭉 뻗는 게 중요해요. 양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제자리에서 돌아보는 동작까지 배우고 쭉 이어서 연습해봤어요. 김 단원이 장구를 치고 그 장단에 맞춰 소중 학생기자단이 탈춤을 치며 마무리했죠. 이제 소중 학생기자단이 남사당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김동규 단원의 지휘 아래 덧뵈기, 탈춤 동작도 배웠다.
김동규 단원이 장구를 치고 그 장단에 맞춰 소중 학생기자단이 탈춤을 췄다.

유빈: 남사당놀이가 여섯 마당으로 나누어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동규(이하 김): 단순하게 말하면 먹고 살기 위함이었어요. 공연을 못 하면 밥을 못 먹으니까요. 먹고 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풍물놀이를 했는데 경쟁하는 풍물패보다 더 뛰어난 게 있어야 하잖아요. 옆 동네 가니까 이상한 접시 돌리는데 재밌더라 그럼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든지 아니면 그들한테 배워 와서 남사당에 맞춰 개발하고 이러면서 많은 재주가 만들어진 거죠. 노래, 춤, 줄타기, 재주도 구르고 하는 게 종합적인 무대를 만들기 위한 방편인 거죠. 지금 아이돌들이 경쟁하듯이, 더 특이하고 더 잘해야 사랑받잖아요. 섭외도 많이 되고. 옛날도 지금 하고 똑같은 거죠.

시윤: 여섯 마당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김: 문헌에 의미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있는데 우선 알려진 거로 말하자면 풍물놀이는 군대에서 행진할 때, 무속 신앙을 할 때 연주할 수도 있고, 농번기 모심기할 때 흥을 내라고 하는 의미가 있죠.
서주향(이하 서): 요즘으로 치면 붐업, 텐션 올리고, 분위기 살리고 전환하는 느낌이죠.
김: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죠. 그것도 의미가 있어요. 조선 시대에 평민이 양반을 욕하면 어떻게 됐을까요. 몰매를 맞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공연하는 거죠. 만약 양반의 이름이 홍길동이면 홍길동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통칭해서 어르신, 선생님 요런 식으로 부르는 형태로 풍자했어요. ‘코미디 빅리그’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정치인을 풍자하는 것과 같아요. 내 정체를 숨기고 양반도 욕하고 종교인들 잘못된 점도 꼬집죠. 덜미는 인형극인데 덧뵈기와 비슷해요. 사실 공연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덧뵈기 하나 가지고 너무 오래 하면 지루하잖아요. 그러니까 포맷을 좀 다르게 할 수도 있는 걸 넣은 거죠. 덜미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인형이 나오다 보니까 조금 더 노래나 소리 등이 많아요. 장면 전환도 많고 그런 효과를 줄 수 있죠.

안성 바우덕이 풍물단에서 징을 연주하는 김동규 단원은 상설공연에서 멋진 말솜씨를 뽐내는 사회자로도 활약한다.

해원: 왜 안성에서 남사당놀이를 하게 됐나요.
김: 안성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어요. 그 절에서 남사당패를 받아줬기 때문에 근거지가 됐죠. 정말 단순한 이유입니다. 받아주는 데가 없으니까 받아주는 데를 찾다 보니까 안성이 된 거죠. 그리고 안성이 옛날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어요. 놀이패들이 돌아다니다가 보니 안성에 있으면 한양 가기도 좋고 화성 가기도 좋고, 밑으로 충남 바닷가에 있는 성도 가기가 좋았고, 때문에 안성에 터를 잡은 거죠.

유빈: 바우덕이 풍물단이 다른 남사당패와 차이점이 있다면요.
김: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다르다고 한다면 상설공연을 운영하는 점이에요. 날짜와 시간을 정해 주말마다 공연하고, 공연장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유일한 단체라고 생각해요. 지정된 공간이 있어서 좀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죠.
서: 저희의 주된 목적은 바우덕이를 기리는 것도 있어서 바우덕이가 처음 사당패에 들어가 꼭두쇠가 되고 그런 과정을 스토리화 해서 뮤지컬 식으로 공연이 딱 정립된 게 가장 큰 차이점 같아요.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더 많은 여자 후배들이 생겨 바우덕이의 명맥을 잇고, 여성 어름산이로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서주향 단원.
더 많은 여자 후배들이 생겨 바우덕이의 명맥을 잇고, 여성 어름산이로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서주향 단원.

시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서: 이웃 할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외형적으로 제가 되게 마르고 작으니까 잘 맞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공연을 보러 갔다가 무동놀이에 투입되며 풍물단에 들어가게 됐죠. 1년쯤 뒤부터 본격적으로 줄타기를 배웠어요. ‘하니까 되네?’ 하는 신기함에 빠졌고, 나도 모르게 운명적으로 줄을 타고 있었죠. 그냥 제 팔자처럼 이끌러 가듯이 시작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김: 방과 후 활동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쭉 하게 됐죠.

해원: 공연 전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김: 우선 몸을 풀어요. 단원마다 다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사회를 보다 보니까 외부로 초청공연을 가게 되면 거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외우고 그 동네 사투리도 배우고 그런 식으로 준비를 많이 하죠.
서: 몸풀기는 기본이고 저희가 재담도 미리 짜서 들어가거든요. 물론 중간에 즉흥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연 직전까지 재담을 외우다가 올라가고 그런 게 있어요.

유빈: 공연을 하다 보면 힘들거나 위험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분다든가 그런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데 아직까지 크게 실수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컨디션에 따라 영향도 받는데 만약 관객들이 박수를 많이 안 치면 또 다운되거든요. 아무래도 공연자다 보니까 관객들이 웃고 가면 뿌듯한데 반응이 좀 안 좋으면 그거를 털어내기가 쉽지는 않죠. 오늘 공연이 별로였나, 내가 뭐가 부족했지 되돌아보게 되죠. 개인적으로 재담에서 많이 미흡해요. 말을 많이 더듬고 빨리 캐치를 못 해서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김: 체력적으로 힘들고 공연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다 보니까 에너지를 받으면서 하면 좋은데 가끔 무슨 시상식 분위기처럼 조용한 경우가 있어요. 저는 진행을 하다 보니까 그런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해요. 박수 안 치고 대답도 잘 안 하면 조금 힘이 빠지죠.

어릴 때부터 줄타기를 했던 여성 어름산이 서주향 단원은 상설 공연에서 바우덕이 역할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줄타기를 했던 여성 어름산이 서주향 단원은 상설 공연에서 바우덕이 역할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시윤: 공연을 하며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때가 있다면요.
김: 공연을 하면서 기쁜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아요. 공연 보셨던 분이 악수하면서 너무 외로웠는데 이 공연 하나로 이제 또 앞으로 살아갈 희망을 느낀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계시고, 10년 전에 공연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오신 분도 계셨죠. 사진첩 정리하다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싶어서 왔다는 거예요. 나는 그냥 흘러가는 사람이지만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걸 좀 더 오래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서: 24년 동안 진짜 많은 공연을 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일본 공연을 갔을 때 말이 안 통해서 한국 정서의 재담이 먹힐까 고민이 되게 많았죠. 물론 통역이 있었지만 제가 간단한 말을 일본어로 했는데 어떤 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이해해주시고, 말이 안 통하지만 소통이 된다는 점에서 엄청 희열과 보람을 느꼈어요.

해원: 지금 하는 일을 후회한 적도 있나요.
김: 안 좋은 표현으로 딴따라라고 하잖아요. 저는 스스로 딴따라라고 표현하는데 간혹 술자리나 그런 자리에서 ‘딴따라 해서 밥 먹고 사냐’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요즘 말로 현타가 오기도 하죠.
서: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너무 어렸을 때부터 이거 하나만 해오다 보니까 좀 다양한 직업이나 경험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내가 이것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다른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잘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들 때 아쉽긴 해요.

남사당놀이를 지키고 계승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오래 무대에 서고 싶다는 김동규 단원.

유빈: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자부심이 클 텐데요.
김: 그렇죠. 내가 인생 걸고서 이 일을 하고 있잖아요. 지키고 계승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서: 계승의 의미도 있지만 솔직히 저한테는 하나의 직업이 되어버렸어요. 내가 이걸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보다 내가 그만두면 다음에 할 사람이 없다는 게 걱정이죠. 어떻게 하면 다음 사람이 좀 더 수월하게 이 길을 올 수 있을까, 여자 어름산이로서 더 많은 후배들이 있어야 이게 끊이지 않을 텐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시윤: 남사당놀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주고 싶으신가요.
김: 즐거움!
서: 행복! 오늘 느꼈어요? 전통의 흥, 신명이 있잖아요. 전통 한국 DNA를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해원: 공연자로서 꿈이 있다면요.
김: 아프지 않고 오래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서: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여성 줄 타는 사람으로서 이 길을 언제까지 갈 수 있는지 지금 가늠할 수가 없거든요. 기술 쪽으로는 선례가 거의 없어서 제가 만약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후에도 줄타기를 지금처럼 할 수 있을까. 또 나이 먹으면서 체력의 한계가 오면 그런 부분을 어떻게 이겨낼지. 제가 좋은 선례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로서 좀 더 오래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쿵쿵, 악기 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어요. 처음 보는 남사당 공연에 제 마음도 쿵쿵 신이 났죠. 아찔하게 줄을 타는 모습을 볼 때는 조마조마했고, 버나돌리기를 하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상모를 돌리면서 꽹과리‧징‧장구‧북을 연주하며 여러 단원이 쌩쌩 도는 모습에서 멋진 가락이 느껴지며 신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취재 전에는 남사당놀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됐죠.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관심만큼 남사당놀이가 앞으로도 후손에게 계속 계속 전해질 테니까요. 문시윤(서울 상명초 5) 학생모델

취재를 위해 검색해보니 자주 접할 수 없던 줄타기나 전통인형극 등이 있어서 너무 신나게 다가왔습니다. 남성들로 이루어진 유랑예술인집단이지만 바우덕이라는 사람은 여성으로서 유랑단을 이끌었죠.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꼭두쇠(우두머리)가 되었을까 몹시 궁금했어요. 공연은 신명 나는 풍물놀이나 아슬아슬한 줄타기 등으로 이루어져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고, 줄에서 혹시 떨어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관람했습니다. 관람 후 체험해본 남사당놀이 버나돌리기와 줄타기도 재미있었어요. 줄타기는 균형을 잡아서 앞으로 걷는 것이 힘들었으며, 버나돌리기는 제 생각보다 잘 돌아가서 너무 신났죠. 예전엔 남사당패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해서 신나기도 하겠지만 집 없이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유빈(서울 율현초 5) 학생기자

처음 남사당패가 무대 위에 입장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했죠. K-POP을 사랑하는 저에게 흥이 많았던 조선 시대 사람들의 감성이 그대로 이어졌나 봐요. 조선의 백성들은 줄타기, 풍물놀이 같은 전통놀이를 즐기면서 농사지을 때 쌓였던 피로를 풀었다고 해요. 따라서 전통놀이를 하는 무리는 어딜 가던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죠. 길고 긴 세월 기쁨을 선사한 남사당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공연을 봤을 때 너무 재밌고 신기해서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떨어질락 말락 아슬아슬했던 줄타기와 신나는 노래에 맞춰 상모를 돌리면서 재주를 부리던 풍물놀이는 아찔해서 손에 땀을 쥐고 볼 정도였답니다. 남사당놀이 체험도 해봤는데, 막상 버나돌리기와 줄타기를 해보니 너무 어렵고, 줄에서는 무서웠지만 하늘을 나는 것처럼 신이 났어요. 앞으로 남사당패가 K-POP처럼 세계에 진출해서 우리 문화가 얼마나 신나는지 세계에 알리면 좋겠어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흥겨운 취재였습니다. 정해원(서울 중대초 4) 학생기자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 동행취재=문시윤(서울 상명초 5) 학생모델·민유빈(서울 율현초 5)·정해원(서울 중대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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