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년 된 '옷감가게' 할머니, 오전엔 문닫고 스쿼트 하는 까닭 [백년가게]
■ 김현예의 백년가게
「 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 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2. 154년 된 긴자의 옷감 가게 오오노야(大野屋)
오오노야는 땅값이 평(3.3㎡)당 15억원가량 하는 일본 최고가 번화가 긴자(銀座)에 위치해 있다. 특히 대각선 방향 길 건너엔 가부키 공연이 열리는 극장 가부키자(歌舞伎座)가 있고, 맞은 편엔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이 있는 금싸라기 땅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올해로 154년 된 오오노야(大野屋)의 사장, 우메자와 미치요(梅澤道代·74) 씨를 지난 7월 18일 만났다.
'할머니 사장님'… 내가 가게를 지키는 까닭
1868년 버선 집으로 시작한 이 가게는 긴자에서도 드물게 천 제품을 판다. 1000엔(약 9700원) 남짓한 돈이면 옛 일본 느낌이 물씬나는 테누구이를 살 수 있다. 자리가 워낙 좋아 지금도 새건물을 세울 요량으로 가게를 사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많지만 우메자와 할머니는 인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목적이 돈만 벌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가게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대로로 변했지만, 에도시대만 해도 긴자 곳곳은 하천이었다. 배로 물건을 실어나르면서 자연스레 가게들이 번창했는데, 그중에서도 기모노와 관련된 천 가게들이 이곳에 몰렸다. 5대조인 오오노야 1대 사장도 처음엔 이곳에서 버선을 팔기 시작했다. 이후 차차 기모노에 쓰이는 천을 비롯해 테누구이, 수제 천가방과 손지갑 등을 취급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이곳에서 다루는 천 제품들은 모두 수제로 만들어지는데, 오오노야는 생산지에서 도매로 가져와 박리다매(薄利多賣)했다. 직원만 10명 넘게 둘 정도로 번창했다.
변화를 몰고 온 건 전쟁이었다. 모친은 이곳에서 13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우메자와 할머니는 자신이 몇째로 태어났는지 말을 아꼈다. 엄마 얼굴도 기억 못할 정도로 어릴 때 시골로 입양 간 탓이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긴자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건물이 포탄에 모두 불타 없어졌는데 오오노야 역시 그랬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전쟁으로 사망했고, 가게를 재건해 이끌던 조부모와 부친, 뒤를 이어 가게를 운영했던 모친 역시 암으로 사망했다.
우메자와 할머니에게 ‘돌아오라’는 연락이 온 건 1996년의 일이다. 당시 46세였다. 자수성가해 건물을 세채 짓고 커피숍을 열 정도로 재력이 있었던 할머니는 다시 본가로 ‘입양’됐다.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5대 경영자가 돼 적자투성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뒤따라온 건 엄청난 채무와 소송이었다. 적자 때문에 몇번이나 가게가 팔릴 위기에 놓였지만, “죽을 힘을 다해 버텼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우메자와 할머니는 “얼굴을 본 기억도 없는 엄마지만, ‘엄마도 이 가게를 지키느라 괴로웠겠지’란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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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가게 지키려고 스쿼트 해요.”
최근 들어선 아예 오전 영업을 접고 몸 단련을 한다. 하체 운동인 스쿼트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죽을 때까지라도 가게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때문에 가게 문이 열리는 시각은 낮 12시. 영업은 오후 4시까지만 한다. 일주일 중 수요일과 일요일은 쉰다. 그래도 손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낡고 오래된 가게지만 이곳에서 파는 천제품을 사기 위해서다.
우메자와 할머니는 “사실 1초도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하는 건 ‘의무’ 같다고도 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얘긴데,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일으키는 건, 손님들이다. 일본 각지에서 할머니가 공수해오는 정성 들여 만든 수제품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우메자와 할머니는 ‘수제’란 설명을 하며 말이 빨라졌다. 군마(熊本)현, 규슈(九州), 히로시마(広島)현 등 일본 곳곳에서 다양한 수제품을 가져온다. 특히 일본 특유의 독특한 문양을 새긴 테누구이와 기모노 천은 할머니의 자랑거리다. 일본의 좋은 무늬를 지키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했다.
테누구이는 가로로 기다란 수건 모양이지만 면직으로 만들어져, 그 위에 파도나 물방울 등 다양한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수건처럼 쓰기도 하고, 머리띠로도, 때로는 목에 두르는 수건으로, 기모노 장식, 액자에 넣은 집안 장식품으로까지 활용도가 높다. 작은 체구의 우메자와 할머니는 “이런 무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손님들 덕에 가게를 죽을 때까지 열려고 한다”면서 “어떻게 가게 마무리를 할지가 가장 큰 걱정인데, 머리에 돌이 얹혀있는 느낌”이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우메자와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긴자에서 이 장소는 일본인에겐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옛날 에도시대부터 천 제품을 팔던 곳이 이곳에 모여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천 제품을 수제로 만드는 분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특히, 천을 염색하는 분들이 폐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돈이 안 되거든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이 테누구이가 모든 사람에게 소중히 여겨지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 '개업 수건' 일본도 있었다고? 일본과 테누구이의 역사
「 좋은 의미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 鼻懸鈴)란 말이 잘 어울리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일본의 테누구이(手ぬぐい)가 아닐까 싶다. 가로로는 약 90㎝, 폭은 35㎝ 정도의 길다란 천인데, 우리식으로 하면 ‘수건’이다. 면직물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도톰한 수건과는 달리 얇은 것이 특징이다.
옛날엔 삼베나 비단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에도시대 초반 일본에 목화가 널리 재배되면서 면으로 만들어졌다. 사치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비단 기모노를 만들 수 없게 되자, 면으로 만든 기모노가 자주 만들어졌는데 이 기모노를 만들고 남은 원단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테누구의 시작이 됐다고 한다. 염색술의 발달과 목화의 보급이 함께 짝을 이루면서 이 테누구이는 서민 계층에도 퍼졌다. 땀을 닦는 수건 용도로 쓰이기도 하고, 목욕 후 물기를 닦는 목욕용으로도 쓰였다. 가부키 공연을 하는 배우들의 의상 장식품이나, 기모노 장식으로도 활용됐다. 머리에 두르는 머리띠, 혹은 머리를 묶는데 쓰는 사람도 생겨났다. 쓰는 사람 마음가는 대로, 활용도가 높았단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테누구이 사용이 늘어나면서 가부키 배우나 스모 선수 등이 자신의 이름이나 상징문양이 들어간 테누구이를 만들기 시작한 부분이다. 상점들도 이 테누구이 활용에 동참했는데, 가게 이름이나 문양을 넣은 것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우리식으로 하면 ‘개업 수건’이나 ‘기념일 수건’처럼 활용한 셈인데, 테누구이는 가게 앞에 내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 하얀 테누구이는 순산을 기원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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