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개방형 복합공간' 만들었더니 동네가 살아났다

이도경 2022. 10. 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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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시설 복합화, 학교·마을을 다시 디자인하다]
<1> 학교, 지방소멸·공유경제의 해법
경남 밀양시 밀주초등학교 학생들이 마을학교에서 진행한 종이접기 수업 뒤 자신이 접은 종이비행기를 학교 운동장에서 날리고 있다. 밀주초 제공


레스토랑에서 서로 모르는 세 사람이 주문하고 있다. 세 사람은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를 모두 먹고 싶다. 하지만 한 가지 음식만 주문이 가능한 식당이라 다른 두 메뉴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만일 세 사람이 함께 먹는다면 어떨까.

하나씩 메뉴를 골라 한 테이블로 모이면 원하는 음식 세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는 만족스런 식탁이 된다.

학교 시설 복합화는 정부 지방자체단체 교육청 학교가 협력해 이런 풍족한 식탁을 만드는 작업이다. 가령 지자체와 교육 당국이 각각 50억원씩 들여 그저 그런 도서관 2개를 지어 별도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100억원짜리 크고 내실있는 도서관을 세워 주민·학생이 공유하는 식이다. 수영장이나 공연장, 보육 시설 등 다양한 시설에 적용 가능하다. 복합화는 지난 20년 이상 추진돼 왔지만 그리 환영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학교 입장에선 외부인 출입에 따른 안전 문제가 컸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농어촌·구도심 지역과 반대로 인구가 급증하는 신도시 양쪽 모두로부터 주목 받고 있다.

특히 40년 이상 노후된 학교 건물을 미래형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교육부의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에 '저탄소' '스마트 교실' '공간 혁신'과 함께 복합화 개념이 적용되면서 전국 여러 지역에서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학교 시설 복합화의 가능성에 대해 짚어 본다.

학교와 마을 한 가운데 ‘꿈자람터’

꿈자람터에서는 주말마다 종이 접기, 요리, 음악, 독서 등 다양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밀주초 제공

경남 밀양시의 밀주초등학교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하면 교육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대도시의 학교 수영장이나 도서관 같은 중대형 복합화 시설이 들어선 건 아니지만 학교 시설을 주민에게 개방하고 ‘온 마을이 학생을 키운다’는 교육 실험이 진행되는 곳이다.

지난달 29일 찾은 밀주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학교 1층 한복판에 자리한 ‘꿈자람터’였다. 중앙현관과 교무실, 교장실 등의 벽을 터 270㎡ 크기로 조성한 공간이다. 과거 학교 관리자들이 점유하던 학교 최고 중심부에 자리해 있다.

꿈자람터는 학생과 교사, 지역주민 모두에게 개방된 곳이다. 북카페 도서관 놀이터 및 중앙현관을 겸하는 복합공간으로, 알록달록 꾸며진 공간 구석구석에 책 1만6500권이 꽂혀 있었다. 장운익 교장은 “이 공간을 만들려고 교장실은 저쪽 구석으로 아주 작게 밀어버렸다. 교장실이 커봤자 뭐 하겠나”라며 웃었다.

이곳은 지자체와 교육청, 지역주민들이 돈을 모아 만든 일종의 복합화 시설로 학교와 지역사회의 소통 거점이기도 했다. 학생은 교실에서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꿈자람터와 나무 테크를 지나 운동장으로 나가 논다. 축구 골대가 양쪽에 있는 여느 학교 운동장과 달리 잘 꾸며진 어린이 공원 같은 모습이었다. 낮은 언덕이 이어지고 그 아래에는 터널이 뚫려 있는 입체적인 공간이었다. 곳곳에 미끄럼틀이 보였다. 아이들은 언덕을 뛰어 다니다 숨이 차면 미끄럼틀로 내려와 터널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낸다.

마을 주민들은 교문 앞 학부모실을 거쳐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고 꿈자람터에서 쉬며 책을 볼 수 있다. 교사·학부모들이 ‘꿈자람터-나무데크-운동장’으로 이어지는 학생 동선을 항상 지켜보고 있어 “안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운동장은 주민들이 캠핑장으로 개방되기도 한다.

학교 안의 더 큰 학교

꿈자람터에서 진행하는 마을학교 모습. 밀주초 제공

밀주초가 있는 밀양 구도심 가곡동은 학생이 빠르게 줄어드는 지역이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학생 수가 500~600명이었지만 2020년대 들어 120~140명 수준으로 확 줄었다. 76년 역사이 학교가 폐교 위기로까지 몰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밀주초의 변신은 지역 사회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재학생은 올해 들어 160명으로 늘었다. 입소문을 타고 대도시에서 전학 온 학생들도 있었다. 1학년, 3학년 자녀를 둔 최혜림씨는 지난해 창원시의 큰 학교에서 전학왔다. 그는 “학부모 인터넷 카페 등에서 학교 정보를 구하다 이 학교를 알게 됐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환경이어서 전학을 오게 됐는데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예전보다 밝아 졌다”고 말했다.

꿈자람터에서 진행하는 마을학교 모습. 밀주초 제공


교사와 학부모들은 교육 효과에 주목한다. 꿈자람터에서는 주말마다 ‘마을학교’가 열리고 있다. 종이접기, 요리, 음악, 컴퓨터 수업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된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학교의 지원 속에 강사로 활동하는 ‘학교 속 학교’다. 지역 사회의 교육 인프라가 학교로 들어오는 셈이다. 학부모회가 임명한 마을학교 교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는 중이다. 그래서 이 학교 학부모들은 “우리 학교는 교장선생님이 두 분”이라고 말한다.

박순걸 교감은 “아이들의 하루 24시간을 보면 학교 8시간, 가정 8시간, 잠 8시간인데, 아이들이 깨 있는 16시간을 학부모와 교사, 지역 주민이 유기적으로 묶어주는 공간이 학교와 꿈자람터”라며 “학생과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 모두에게 좋은 방향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한국교육개발원 공동 기획>

밀양=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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