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9)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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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여행을 2박 3일 계획하면서 이번 만큼은 짐을 줄여야지 다짐했다.
원래 여행을 갈 때마다 트렁크 두 개에 물건을 꽉꽉 채워가곤 했다.
공항에 도착한 내 손엔 역시나 커다란 트렁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앞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나씩 비울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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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날 때마다 하나씩 비울 생각
삶의 패턴 변화보단 '나답게' 살기로
싱가포르 여행을 2박 3일 계획하면서 이번 만큼은 짐을 줄여야지 다짐했다. 원래 여행을 갈 때마다 트렁크 두 개에 물건을 꽉꽉 채워가곤 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짐을 챙겼는데, 또 실패했다. 공항에 도착한 내 손엔 역시나 커다란 트렁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쩌겠나, 이게 나인 걸.
이혼 후 2017년 출간한 책 ‘정희’에 썼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매일 나를 가꾸고 주변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일, 이왕이면 깨끗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 이게 타고난 나의 성정이다. 이걸 바꾼다고 상황이 달라질 리 없고, 사람들이 이해해준다 한들 나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불행한 일 아닌가. 50년 넘게 이렇게 살았는데 괜히 의식적으로 털털하고 허술한 척 행동하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가식이고 포장이다. 개인의 차이이고, 각자의 취향일 뿐이다. 누군가는 개량 한복을 입으면 편하다지만 나는 도시적으로 세련되게 꾸며야 편안하다. 앞으로는 ‘나답게’ 살 예정이다. 내 자아가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가꾸고 주변도 예쁘게 꾸미면서 당당하게 살 것이다. 그게 내가 편안해지는 길이다. 내 인생에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삶의 패턴을 바꿔보겠다며 청소도 미루고 대충 살아 봤다. 하지만 고작 며칠 안 돼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왔던 적이 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맞아, 나를 인정해야지. 할 수 있는데 안 할 이유는 없지. 아무리 환자라고 해도 기내에서 짐을 올리고 내릴 때는 황소 같은 힘이 생기잖아. 림프관 때문에 아프던 팔이 쭉 펴지고,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트렁크도 번쩍 들어 옮기잖아.
싱가포르 여행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나에 대해 생각했다. 트렁크 개수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를 추구한다. 머니멀리스트는 예술가의 경우 가능한 단순하고 최소한의 요소를 통해 최대의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갖는다. 앞으로도 조금씩 천천히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억지로 비우지 않고 과정을 존중하면서 도달해볼 생각이다. 나의 속도로,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앞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나씩 비울 작정이다. 어느 여행에선 작은 배낭만을 들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짐을 줄여가다 보면 언젠가 짐 보따리가 분명 많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딸 동주와 싱가포르 여행은 즐겁고 행복했다. 옷이며 구두며 꼼꼼하게 챙겨간 것이 헛되지 않게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날씨가 더운 거 빼고는, 깨끗한 도시 풍경도 좋았다.
버리고 비워내는 쪽으로 나아가고 싶다. 나는 지금 충분히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예전엔 물건을 사도 사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사지 않아도 영적 배부름으로 충분하다.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겠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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