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훈의 미래를 묻다] 논문이 다는 아니다, 연구와 창업을 연결하라

2022. 10. 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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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대학으로 가는 길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국내에서 나름 일류 대학이라 불리는 대학은 있지만, 글로벌 사회에서 영향력을 인정받는 초일류 대학은 없다. 근대 대학이 유럽에서 시작되어 북미로 건너가 융성했기에, 아시아 대륙 북동쪽 끝자락 작은 나라의 대학들이 전통 있는 서구 명문 대학과의 진검 승부하는 것은 항상 쉽지 않다. 짧은 시간 안에 글로벌 순위를 끌어올린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대학들의 모델이 있기는 하다. 이는 국가 전략과 재정의 엄청난 집중으로 가능했는데, 그 모델이 우리에게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2008년 QS 평가에서 세계 100대 대학에 단 두 개 대학이 명함을 내밀었는데, 올해는 여섯 개 대학이 이름을 올렸다. 이만해도 사실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선진 대학 따라잡기에 지나치게 힘을 소진해 거의 탈진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우리 대학은 초일류 경쟁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생각해야 한다. 경쟁의 판을 새로이 만들고, 그 판을 주도하는, 지금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 4차혁명시대, 전공에 갇히면 곤란
학제 간 연구로 ‘지식실험장’ 돼야

팬데믹·기후위기 등 적극 대응을
세상을 바꾸는 담대한 시도 필요

산업 분야와 네트워크 확대 절실
신기술 사업화 시스템 구축해야

미래 지식 네트워크의 중심

KAIST 휴보랩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이족과 사족보행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 대학들에도 새로운 기회의 시대의 서막이다. 세부 전공별로 지나치게 분절화된 연구와 교육, 전통적 방식의 관료주의적 행정으로는 초일류를 넘어서는 대학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 수 없다. 이 시대의 대학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담대하게 개척해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대학은 데이터와 AI, 그리고 인간이 협력하는 ‘초지능의 경연장’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 학문 분야의 벽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다학제 협력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회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 내는 ‘지식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연구자의 능력과 경험을 스마트하게 연결하는 미래 ‘지식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전이 대학의 새로운 비전과 표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대학들의 야심 찬 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열악한 ‘재정’ 문제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더 나가기 힘들다. 국내 유수 사립대학의 2021년 예산(연구비 포함)이 약 1조3000억원 정도인데, 이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같은 해 예산 약 11조원(700억 달러)의 8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경쟁대학과의 대학 발전기금(기부금)의 격차는 비교조차 힘들다.

2021년 국내 사립대학 중 가장 많은 모금을 한 대학의 발전기금이 약 700억원 규모인데, 같은 해 미국 하버드대학은 약 56조원(400억 달러), 스탠퍼드대학은 약 39조원(280억 달러)의 발전기금을 거둬들였다. 이들 대학 발전기금의 10년 평균 연수익률이 약 12%에 이른다. 매년 발전기금의 5%인 약 2조8000억원과 2조원을 각각 연구와 교육에 활용한다. 우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의 기금과 투자 수익을 대학에 즉각 투입하는 방식을 통해, 서구 초일류 대학들은 감히 넘보기 힘든 수준의 견고한 성을 계속 높여 가고 있다. 우리의 경쟁 대상이 이런 대학들이다.

대학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대학의 재정 문제에 대한 해법은 대학이 가장 잘해 온 ‘연구’의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 대학이 연구의 방향성을 혁신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국가도 산업도 국민도 대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대학이 이것을 썩 잘 해내지 못했다. 전통적 대학에서 연구의 종착역은 거의 예외 없이 학술논문이었다. 최고의 논문이 연구자의 지식의 총합체로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자들조차 논문 자체에만 집착하다 보니 진정한 연구를 할 여력이 없다고 토로해 온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응용과학 등 모든 학술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운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인데, 대학이 이를 잊고 연구의 중간 성과인 학술논문 양산 수준에만 머물고 있었다면 대학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학술논문 게재 수, 논문의 인용 수, 논문의 영향력 지수만으로 따지는 대학의 연구자 평가 시스템, 또한 같은 기준에 의한 외부 평가기관의 대학 평가 방식이 오랫동안 묵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논문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연구가 인류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평가받게 하는 것이 대학 연구혁신의 핵심이다.

우수 교수들은 논문 부담 줄여야

세상을 바꾸는 연구를 하는 젊고 우수한 교수들은 논문을 한 편씩 덜 쓰게 했으면 한다. 강의 시수도 줄이거나 유연 학기에 집중강의하게 하여 연구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더욱 건강하고 안전하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바꾸는 데 기여하도록 했으면 한다. 이는 기존 관행을 넘어서는 대학 연구 생태계의 파괴적 혁신으로만 가능하다.

대학의 연구혁신은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해 보지 않은 일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첫째, 우수한 연구자의 역량과 경험을 초학제적으로 재결합해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도전하는 ‘대규모 융합연구’를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인류가 당면한 팬데믹, 의료과 건강, 기후와 환경, 신재생 에너지, 경제 저성장과 계층 양극화, 저출산과 인구문제, 교육 등 산적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대학이 더욱 적극적으로 해내야 한다. 대학의 연구 성과가 현존하는 문제의 해결에 실제로 기여하는 것을 확인할 때, 국가와 기업은 물론 국민이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대학은 담대하고 참신한 도전으로 사회가 주는 신뢰와 후원의 시선에 응답해야 한다.

둘째, 대학의 연구 네트워크를 ‘산업으로 넓고 깊게 확장’해야 한다. 대학과 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는 다양하다. 스탠퍼드대학과 버클리대학의 연구와 교육 혁신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원동력이었고, 실리콘밸리의 유수한 기업인 인텔·퀄컴·애플·구글·메타가 제공한 연구기금과 유연한 벤처 캐피털이 스탠퍼드와 버클리의 오늘을 만들었다. 하버드대학 병원과 MIT는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를 잇는 바이오 클러스트의 중심이다.

스탠퍼드·버클리의 혁신 사례

동시에 유력 바이오산업은 하버드와 MIT의 연구 재정과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20년에만 미국 국립보건원(NIH) R&D 기금 30억 달러가 보스턴 클러스터에 투입되었고, 그중 72%가 대학과 병원의 연구에 쓰였다. 대학과 산업과 같이 연구하고 차세대 연구자를 양성하고, 산업이 자본을 유치해 오고, 연구 중개 플랫폼이 견고한 산학협력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방식은 인류의 건강과 보건 문제에의 도전과 성과를 통해 대학과 산업, 자본 모두를 살린 매우 극명한 사례다.

이미 바이오산업에 관심 있는 우리 대기업과 벤처 캐피털도 보스턴에 깊이 진출하고 있는데, 우리 대학들도 글로벌 산학협력 연구의 허브가 될 글로벌 연구혁신센터의 현지 개설을 생각할 때다. 대학과 산업의 협력 연구 모델은 국가 R&D 30조 시대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우리 대학들이 더 이상 가쁜 숨을 쉬지 않고도 세상을 바꾸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연구혁신 표준의 재원이 될 것이다.

셋째, 연구혁신은 특허와 지적재산권(IP) 확보가 창업으로 연결되는 ‘신기술 사업화’ 시스템 구축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 대학들에 이미 자리잡은 기술지주회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의 혁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발굴해 창업으로 연결하고, 이를 관련 산업은 물론 전문 투자 및 자문 네트워크와 적극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미래형 과학기술 연구의 종착점이다.

연구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 필요

기술사업화의 성과 이익이 연구자와 투자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아울러 대학의 차세대 미래 연구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수한 연구 인력을 배출하고 인프라를 제공한 대학의 재정이 건실해져야 연구혁신의 미래 지속가능성이 보장된다. 이를 위해서 대학의 직접 투자가 필요한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학들 대부분이 이런 여력을 아직 갖추고 있지 않다. 외부의 기관 및 개인 투자자의 신기술 투자와 연구혁신 발전기금 기부를 1대 1로 병행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투자이익의 일정 부분을 대학에 환원해 차세대 연구를 후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시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학’을 요구한다. 연구혁신과 대학재정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정작 우리 대학들은 아직도 이를 제대로 실행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와는 확연히 다른 대학이 되어야만 이를 할 수 있다. 대학 연구혁신의 새로운 표준, 새로운 좌표의 설정과 전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담대한 도전이 시작되어야 한다.

■ ◆마동훈

「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즈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및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바꾸는 새로운 사회와 문화 현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 영상문화연구회장을 역임했고, 교내에서 대외협력처장·미디어학부장과 대학원장·미래전략실장으로 일하며 대학의 미래 혁신을 주도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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