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조말론 생파' 윤지오 떠오른다..뻔뻔한 김성태 '황제도피' [문병주의 시선]
잊힐 만하면 자의든 타의든 존재감이 살아나는 이들이 있다. 마약범죄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인기를 얻은 드라마 ‘수리남’의 모델이 된 마약왕 조봉행이 대표적이다. 상당 시간 기억에서 밀려나 있던 또 다른 이름이 최근 소환됐다. 윤지오씨다. 2009년 유력 인사들에게 성 상납을 강요받고 폭력에 시달려왔다는 폭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배우 장자연씨의 억울함을 입증하겠다던 주요 증인이었다.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 김모씨는 윤씨를 지난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윤씨가 2019년 3월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에서 “장자연이 약물로 성폭행당했다”는 내용의 거짓 면담을 했다는 내용이다. 윤씨는 2018년부터 각종 프로그램과 기사에서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고소에 수사 압박하자 해외 도피
윤씨의 발언을 정치권이 앞장서 기정사실화하면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그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이 추진됐다. ‘윤지오와 함께 동행하는 의원 모임’이 만들어지고 윤씨의 책을 선전하는 북콘서트도 국회에서 열렸다. 경찰은 윤씨의 신변 보호를 위해 호텔 사용료 900만원을 대줬다. 하지만 윤씨 증언에 의문이 제기되고, 윤씨의 책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김수민 작가는 2019년 4월 그를 고소했다.
이튿날 윤씨는 아무 제지 없이 출국 장면을 스스로 인터넷 생중계하며 캐나다로 떠났다. 후원자들의 배신감은 컸다. 그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 재수사와 사실 규명에 대해 언급하고 과거사위원회의 수사 연장이 확정된 만큼 장기전에 대비해서 후원계좌를 열었다”고 소개하면서 후원금을 모금했다. 1억원 이상이 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후원했던 400여 명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윤씨가 이후 자신의 발언은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경찰 수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자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인터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 조치도 취해졌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 캐나다에서 잘 지내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왔다. 지난해에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언제든 귀국해 수사에 응할 생각을 갖고 있다”며 “건강 상태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한 가족과 지인의 만류로 귀국 시기가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지인들과 생일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올렸다. 조말론 디퓨저와 향수, 몽블랑 카드지갑, 디오르 구두와 같은 럭셔리 선물도 등장했다.
이 정도면 귀국해 조사받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윤씨 말을 듣고 후원금을 건넨 사람들이나 호텔비 900만원을 지원했던 경찰은 물론 “(윤씨의) 사기극 설계자”라는 말까지 들었던 안민석 의원의 심정은 어떨까. 안 의원이라도 적극 나서서 윤씨의 귀국을 독려해야 하는 건 아닐까.
떳떳하면 입국해 사실 규명해야
도피 사정도 수사받는 사건 규모도 다르지만,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시장이 구속되면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쌍방울그룹 인사들 역시 주목받고 있다. 핵심 인물은 쌍방울의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이다. 그는 각종 횡령ㆍ배임 혐의를 포착한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하려던 지난 5월 말 출국해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검찰수사관 출신 임원을 통해 회사 압수수색영장 내용을 빼낸 직후였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 전 회장과 사건 주요 인물들의 출국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 수원지검 수뇌부를 질타했다지만, 5월 말 부임한 현 지검장을 비롯한 수사팀에 책임을 묻긴 힘들다. 신성식 전 수원지검장 등 이전 수뇌부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현재 김 전 회장 역시 인터폴 적색수배는 물론 여권 무효화 조치가 취해져 불법체류자 신세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 임원과 접촉하고, 한식과 횟감 등을 공수해 즐기는 ‘황제 도피’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나 의혹에 연루됐다고 의심받는 이들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무심함이 묻어난다. 비슷한 시기 해외로 나갔던 주변 인물은 하나둘 귀국해 조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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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루 의심 인사들도 귀국 촉구를
하지만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루 의혹을 비롯한 각종 혐의의 진실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조사 없이는 명쾌하게 판단될 수 없다. 이 대표는 지난달 1일 국회에서 “쌍방울그룹이 이 대표의 변호사비 20억원을 내줬다는 이른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당사자”라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주장에 “나와 쌍방울의 인연은 내복 하나 사 입은 것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이라면 이 대표로선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김 전 회장의 귀국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그를 통해 의혹을 제대로 풀어 무고함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이 대표의 말에 힘이 실릴 것이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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