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중국의 푸틴 조롱..검려기궁

유상철 2022. 10. 3. 00: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의문과 우려' 표명 이후
중국 인터넷 공간에선 러시아와 푸틴 비아냥 급속히 퍼져
"푸틴 돕지 말고 중국은 중립 지켜야 한다" 주장도 나와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중국 인터넷 공간에선 침공을 감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넘쳤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하다’는 주장을 담은 푸틴의 연설에 중국은 ‘눈물이 난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런 중국의 태도가 최근 싹 바뀌었다. 러시아와 푸틴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러시아는 반드시 진다! 푸틴은 반드시 패배한다!” “특별군사작전이 국가수호 전쟁으로 변한 건 2차 대전 이래 최대 웃음거리” “푸틴을 돕지 말고 중국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등과 같은 말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AP=연합뉴스]

푸틴과 러시아를 비아냥거리는 말 중 중국 시사 평론가 차이선쿤(蔡愼坤)이 했다는 말이 특히 눈에 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가히 ‘검려기궁(黔驢技窮)’의 수준이라고 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려기궁은 당(唐)대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우화(寓話) 세 편 중 하나인 ‘검지려(黔之驢)’에 나온다. 검(黔)은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의 별칭이고 려(驢)는 나귀라는 뜻이니 ‘구이저우의 나귀’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우화에 따르면 옛날 구이저우엔 나귀가 없었다. 한데 호기심 많은 한 사람이 나귀를 구이저우로 들여왔는데 특별히 쓸 일이 없게 되자 산 아래에 풀어 놓았다. 이를 본 호랑이가 놀랐다. 처음 보는 데다 몸집도 크고 울음소리도 컸다. 한데 며칠을 살피니 뒷발질만 할 뿐 다른 재주가 없었다. 그 기량을 다 파악한 호랑이는 졸지에 나귀를 덮쳐 잡아먹고 말았다. 여기서 ‘구이저우에 사는 나귀의 재주’란 뜻의 ‘검려지기(黔驢之技)’라는 성어가 나왔다. 쥐꼬리만 한 재주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재주가 바닥이 난 걸 ‘검려기궁’이라고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한 직후 러시아 곳곳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호기롭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대단한 영웅인 줄 알았는데 별것 아니며, 그 재주가 바닥이 나 망신살이 뻗치게 됐다는 조롱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속이 터질 노릇이다. 우리가 주목할 건 중국의 민심 변화다.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며칠이면 우크라이나를 제압할 줄 알았는데 7개월이 지난 이젠 밀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잠잠하던 중국의 여론이 순식간에 바뀐 건 지난달 1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 이후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에 관한 ‘의문과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자 중국의 민심이 돌아섰다. 중국 여론이 개전 초기 러시아를 지지한 건 중·러의 국가 간 관계도 있지만, 그보다도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사이가 브로맨스로 일컬어질 만큼 끈끈했기 때문이다. 한데 시 주석이 ‘의문과 우려’를 던졌다고 하자 둘의 관계에 틈이 생겼다고 보고 푸틴 조롱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뒤 일주일도 안돼 동원령을 내려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을 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이처럼 시진핑 주석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입장이 바뀐다.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선 시 주석의 마음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THAAD) 갈등도 시 주석의 입장이 누그러져야 풀리지 그 아래 어떤 고위층이 나선다 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1인 체제의 시 주석 집권 기간 한중 관계의 모든 문제가 이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우리로선 시 주석의 일거수일투족 연구에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다.
한편 푸틴 대통령에게 시 주석이 던진 ‘의문과 우려’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의문’은 푸틴이 설명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러시아식 계획에 대해 ‘과연 그렇게 전개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우려’는 ‘전쟁의 장기화’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산 원유나 가스를 헐값에 사는 경제적 이점이 있긴 하지만 유럽을 잃는 전략적 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러위청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2월 중러 협력엔 ‘한계가 없다’는 발언을 했다가 유럽 국가의 십자 포화를 맞고 광전총국 부국장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 지지 모습을 보이는 중국에 격분한 상태다. 미·중 갈등 속 유럽을 잡으려는 중국의 필사적인 노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헛수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과 미국이 입을 모아 중국을 비난하는 소재는 지난 2월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이후 나온 중·러 협력엔 ‘한계가 없다’는 러위청(樂玉成) 당시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발언이다.
그는 중·러 협력엔 “한계가 없다(上不封頂). 영원히 발전하는 가운데 종착역은 없고 주유소만 있을 뿐(永遠在路上 沒有終点站 只有加油站)”이라고 말했다가 서방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에 놀란 중국 당국은 차기 외교부장 1순위로 꼽히던 러위청을 라디오, 방송 담당의 광전총국(廣電總局) 부국장으로 좌천시키고 특사를 보내 유럽 달래기에 나섰으나 아직 이렇다 할 효과는 없다. 그래서인가. 시 주석은 3연임을 확정 지은 10월의 20차 당 대회 이후 11월에 프랑스 등 유럽 각국 정상의 중국 초청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