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OM! 사람들은 왜 한국에 열광할까?

2022. 10. 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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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은 역대급 흥행을 거뒀고, 런던의 한복판에서는 한류 전시가 열린다. 해외의 주요 언론들은 앞다퉈 한국 문화에 관한 특집 기사를 다루고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다. 대체 이 작은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하루아침에 공주나 왕자가 된 기분이다. 좋긴 한데 뭔가 어리둥절하다. 연일 억대의 판매기록을 쏟아내며 서울을 뜨겁게 달군 국제 미술 축제는 말로만 듣던 한류를 이곳까지 불러왔다. 지난 9월 2일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동시 개막에 맞춰 삼청동과 한남동 일대의 화랑가는 밤새 불을 밝혔다. 이른바 ‘삼청 나이트’ ‘한남 나이트’다. 1910년대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 앞마당에는 둥근 달 모양의 조명이 두둥실 떠올랐고, 사람들은 샴페인과 와인을 마시며 자정이 넘도록 파티를 즐겼다. 엄숙한 갤러리가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되는가 하면 디제잉 무대로 변신하기도 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의 유명 작가들, 국내외 미술계 관계자와 컬렉터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골목마다 튀어나왔다. 초대장이 없어도 문제가 안됐다. 한껏 차려입은 20대 청년들은 전시장을 떼 지어 몰려다니며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난 늘 내가 이런 무리의 일원이길 꿈꿔 왔어!”

2011년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yg 패밀리 플래시몹.

쉴 새 없이 SNS에 사진을 찍어올리는 이들은 이 새로운 왕국의 주인공이다. ‘K킹덤’은 엔터테인먼트나 미술 신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바로 이곳,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생활과 문화, 사람 모든 것이 왕국을 구성하고 있다. 물론 시작은 K팝과 드라마였다. 우리는 〈대장금〉과 〈겨울연가〉, 욘사마(배용준) 신드롬을 기억한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아시아 진출도 그 무렵이었다. 2000년 〈상하이 이브닝 포스트〉(신원완바오)에는 ‘Hallyu, the Korean Wave’라는 타이틀과 함께 H.O.T의 첫 베이징 콘서트에 대한 기사와 태극기를 든 중국 팬들의 사진이 게재됐다. ‘한류(Hanllyu)’가 신조어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건 지난해의 일이지만 동양권에서는 그때부터 흔한 용어였다. 2012년에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현재 이 뮤직비디오는 44억 뷰를 돌파한 유튜브의 전설이다. 한국 배우들의 할리우드 도전이나 한국 노래 빌보드 차트 진입이 엄청난 사건으로 대서 특필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국제 무대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방탄소년단이 백악관에서 인종 차별 문제를 얘기하는 지금에 돌이켜보면 마치 100년 전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서울 강남의 옛 풍경.

‘프리즈 서울’의 홍보를 총괄한 피오나 배는 최근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을 소개하는 책 〈메이크, 브레이크, 리믹스〉를 출간했다. 승효상, 양태오 등의 해외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지난해 홍콩의 서구룡문화지구에 문을 연 엠플러스 뮤지엄과도 일했다. ‘동양의 퐁피두 센터’로 불리는 이 미술관은 개관전의 일부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근현대사를 디자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녀는 이번 아트 페어 기간 동안 프리즈 마스터스 디렉터 네이선 클레멘트 길레스피, 외신 기자들과 함께 내가 운영하는 용산구의 작은 공간 꽃술(Kkotssul)을 방문했다. 구도심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그곳에서 한국 술과 나물, 전을 먹고 마시며, 그들은 ‘프리즈 서울’의 놀라운 성공과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를 나눴다. 곧 한반도에 불어닥칠 태풍을 걱정하며 내게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안위를 묻기도 했다. 씁쓸하지만 이제 반지하는 ‘강남 스타일’과 더불어 서울을 상징하는 두 얼굴이 됐다. 반지하 주거 금지가 추진 중이긴 하나 서울에 인구가 폭발하던 80년대부터 줄곧 존재해 온 주거 문제의 해결책은 나도 모른다. 한류는 늘 당연히 존재해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다시 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지금 한류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진가 less가 촬영한 안무가 리아 킴.

K팝과 드라마로 시작된 작은 파도는 거대한 해일이 됐다. 요즘 런던에서는 강남포차, 홍대포차 등이 유행하고 이들 술집은 골뱅이무침과 닭똥집을 안주로 내놓는다. ‘산지 직송’ ‘안주 일체 포장 가능’ 같은 문구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김치는 이미 유명한 발효 식품이 됐다. 대중문화와 음식뿐 아니다. 곧 런던에서는 K아트의 계절이 시작된다. 노팅 힐의 아트 센터 코로넷(Coronet) 극장 안과 밖은 오는 10월 1일까지 최정화 작가의 작품으로 뒤덮인다. 타이틀은 ‘Tiger is Coming’. 조선 펑크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식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코로넷 극장의 예술감독 안다 윈터스는 한류를 특집으로 다룬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 본 것들은 나를 놀라게 했다. 문화적 전통과 기술을 흥미롭게 사용하면서 항상 반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구의 선진 기술과 예술 사조에 한국의 전통과 정신이 뒤섞인 이 결과물을 〈가디언〉은 ‘아방가르드한 무엇’으로 표현했다. 더불어 한국문화원은 한국의 달 축제를 열고 한국에 관한 책을 소개할 예정이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이하 V&A)에서는 〈한류! 코리언 웨이브: Hallyu! The Korean Wave〉 전시가 열린다. 9월 24일부터 내년 6월 25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한국에서 더 화제다. 인류의 5000년 역사를 담은 최고의 미술/디자인 박물관이라는 위상 때문이다. V&A는 1992년 삼성의 후원 아래 영국 최초로 한국 소장품을 위한 상설 전시실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관이라고 해봐야 복도 양 옆에 있는 유리 진열대가 전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서브컬처를 통해 오늘날의 한류를 말하는 피오나 배의 책 〈메이크, 브레이크, 리믹스〉.

전시는 크게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한국전쟁 직후 서울의 풍경과 88서울올림픽 포스터, 백남준의 작품 등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탐색하는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 인기 드라마와 영화 속 소품, 의상을 전시하는 ‘K드라마와 영화, 새로운 세상을 펼치며’, 아이돌 가수의 스타일과 팬덤 문화를 엿보는 ‘K팝과 팬덤, 세계적인 박자’, 마지막으로 미스 소희, 차이 킴 등이 참여하는 ‘K뷰티와 패션, 밝은 전망’이다. 유럽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러나 이런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가수 싸이의 핑크 재킷과 〈기생충〉의 반지하 화장실 세트, 〈오징어 게임〉의 추리닝, 지드래곤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정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일까? K팝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느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냉장고나 자동차를 수출하듯 아이돌이라는 문화 상품을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시키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음악을 포함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2000년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과거 김대중 정권의 문화 육성 정책 덕분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81년)처럼 1999년 3월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1998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일본문화개방 전 신촌 뒷골목의 음악감상실들을 기억한다. 어둡고 담배연기 자욱한 그곳에서 정식 수입되지 않은 해외 록 음악에 감탄했고, 프랑스문화원의 누벨바그 영화들을 보며 지방에서는 그조차 볼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곧 한국 가수가 비틀스만큼이나 유명해지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색동 한복에서 영감 받은 디자이너 다시곰의 의상.

내가 생각하는 K킹덤의 진짜 비밀은 문화 수출 전략 같은 게 아니다. 유러피언들이 ‘아방가르드’라고 표현하는 한국문화의 기묘한 아름다움은 일제시대 이후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근대라는 수백 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면서 생겨난 인지 부조화의 타임 워프(Time Warp)와 혼돈의 카오스에서 탄생한 의외의 성과라고 할까? 알다시피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5세기 무렵, 조선은 막 청년기를 지나고 있었다. 서구 사회가 수백 년에 걸쳐 근대화를 경험한 것과 달리 갑작스럽게 한복을 벗고 한옥에서 나와 연립주택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익숙했던 과거와 결별해야 했다. 마침 일어난 한국전쟁은 그나마 남아 있던 옛 터전과 살림 일체를 싹 지워버렸다. 이들 앞에 주어진 미군부대, 원조국들의 구호물자들은 김치와 초콜릿의 아이러니를 만들었다. 좌식생활에 익숙한 우리의 아파트 거실에 놓인 소파와 방석처럼 말이다. 손님이 올 땐 방석을 내어주고 가죽 소파를 등받이로 사용하는 식으로 우리는 ‘갸우뚱’하면서도 각자의 방식대로 현대화된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해 왔다. 그 해결책이란 대체로 이전의 관습이나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아파트나 신식 가구, 플라스틱 제품 같은 낯설고 새로운 대상들은 한국식으로 변형되거나 색다른 용도를 찾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야생의 사고, 브리콜라주(Bricolage)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활용품뿐 아니라 한국의 음악, 건축, 디자인, 패션, 미술 전 분야가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뭐든 오리고 덧붙이고 땜질하고 재조립한다. 한국이 유독 ‘스타일링’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본다.

아시아권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한 〈오징어게임〉.

〈메이크, 브레이크, 리믹스〉 출간으로 분주한 피오나 배는 지금 한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3년 전 처음 이 책을 준비할 당시만 해도 한국은 그저 아이돌의 나라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패션뿐 아니라 한국의 디자인과 건축, 미술에 대해서도 제게 물어보죠.” 유럽과 미국을 주 타깃으로 한 아트 북 출판사 템스 & 허드슨(Thames & Hudson)이 한국의 서브 컬처 신을 취재한 그녀의 책을 영문으로 출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책의 모든 사진은 사진가 레스(Less)가 촬영했다. 안무가 리아 킴,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을 대표하는 황소윤, 드랙 아티스트 나나 영롱 킴, 한국에서 펑크 록 공연이 처음 열린 명동 거리에 누군 패션 디자이너 바조우와 그 친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런던으로 돌아간 그녀는 하반기에 출시할 새로운 술에 대한 얘기도 전했다. 그녀의 영국인 남편은 런던의 양조장 집안에서 1680년대부터 12대째 진을 생산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쑥과 미나리, 흑임자, 구기자 같은 재료를 첨가한 한국식 진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런던엔 800여 종 이상의 진이 있어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죠. 제조는 여기서 하지만 한국에 먼저 출시할 거에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그게 더 특별한 가치를 부여할 거라고 봐요.”

지금 가장 새롭고 신선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한국이다. 프리즈 서울은 키아프와 함께 5년 연속 공동 개최를 결정했고, 또 다른 국제 규모의 아트 페어도 서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정의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 여기엔 계급간의 갈등, 세대간의 문제, 남과 북의 이념적 대립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도 포함된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영화들이 강렬한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비결을 〈박쥐〉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 설명한 적 있다. 영화 속에서 카메라는 일본식 목조 건축물인 한복집의 외부를 먼저 비춘다. 쇼윈도에 진열된 한복을 입은 서양 마네킨들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카메라는 다시 이 쇼윈도와 ‘행복 한복집’이라는 한국어 간판을 위로 훑으며 집 내부로 들어간다. 거기엔 고량주를 마시며 마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라디오에선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이걸 국제적이라고 해야 할까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이라 해야 할까?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정겨운 동시에 그로테스크하다. 우린 아직 K킹덤의 정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성 밖의 사람들은 피상만 보고 성에 사는 사람들은 바깥만 본다. 기회는 왔다. 진짜 이 성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시간. 신비로운 왕국의 비밀을 탐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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