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죽음도 말 못하고.. 이 한 많은 이들을 아십니까

정수근 2022. 10.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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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10월 항쟁 76주기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1주기 합동위령제' 열려

[정수근 기자]

  ‘10월 항쟁 76주기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1주기 합동위령제’ 에서 10월항쟁유족들이 영령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부모가 있다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음에도 그 사실조차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살기를 강요당했다면, 그 세월이 무려 70년이라면 그 심정이 어떨까? 만약 그 일이 우리가 당한 일이라면 도대체 어떤 심정일까?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외침, 10월 항쟁

지금으로부터 76년 전, 그러니까 1946년 10월 1일 당시 "배고파 못살겠다. 식량을 달라", "생필품을 풀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여 민간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 평화 시위에 대해서 당시 경찰이 총으로 민간인을 쐈고, 그 민간인이 사망하면서 시위는 주민봉기가 되었다. 이후 봉기는 대구를 넘어 경북으로 전국으로 확산했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함성이 들불처럼 번진 것이 바로 '10월 항쟁'이다.

그러나 당시 총으로 맞선 미군정과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에 의해 수많은 죽임이 자행됐다. 이 항쟁으로 대구경북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형무소로 끌려갔고 일부는 1949년 보도연맹이 조직될 때 강제로 회원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대구 가창골로 끌고가 집단학살한 것이 10월 항쟁의 슬픈 역사다.
 
 76년 전 학살의 현장인 가창골은 현재 가창댐이 들어서 있다. 가창골 최입에 위령탑이 건립된 배경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아픔의 가혹한 대물림

이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아픈 현실인데, 아픔은 자식들에게 더 가혹하게 전가되었다. 이들은 빨갱이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채 부모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그 세월이 무려 70년이다. 70년 세월 연좌제로 제대로 취직도 하지 못한 채 극심한 고통을 당해온 이들도 있다. 

이런 아픔과 억울함을 달래주고자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였고, 이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대구 사건(10월 항쟁) 관련자 및 대구 보도연맹 관련자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16년 대구시의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이 대구시의회를 통과해 2020년 대구시는 학살이 자행된 가창골 초입에 위령탑을 건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10월 항쟁 76주기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1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리고 있는 대구 가창골 초입의 위령탑 현장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빨갱이 자식이란 주홍글씨는 지워졌지만, 지난 70년 세월의 말 못 할 고통에 대해선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도 못했던 유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것이다.

10월 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 열려

지난 10월 1일 가창골 위령탑 현장에서 '10월 항쟁 76주기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72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린 이유다. 

이 위령제는 10월 항쟁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아픈 역사 속에서 무참히 희생당한 수많은 민간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위령제에 참가한 대구시민사회 인사들이 영령들에게 헌화하고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가창댐이 올려다보이는, 학살의 현장에서 거행된 위령제라 행사 내내 그 원혼들의 통한의 절규가 들리는 듯해서 어깨가 무거웠다. 그런데 그 원혼들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부모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70년 세월을 참고 살아온 유족들의 아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억울한 죽음을 어디 하소연도 못 한 채 설상가상 연좌제의 고통 속에서 살아온 그들의 지난한 세월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다. 그러나 대구시의회 이만규 의장의 추도사처럼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제대로 기억하고 더 깊이 마주해야 해야 한다. 제대로 기억해야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진실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10월 항쟁 당시의 아픔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위령탑 옆에 들어서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부산불교문화원 김광호 원장은 추도사에서 "올바른 과거청산 없이는 밝은 미래도 없다. 내 혈육의 억울한 죽음을 배·보상의 몇 푼어치 돈으로 환산하려 들지 말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당당한 권리로 역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추호의 흔들림 없이 맞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월 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돼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강민구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10월 항쟁이 발생한 직접적 계기는 미군정의 식량정책이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친일파의 세상이 오자 국민들 스스로 일어난 제2의 독립운동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참으로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면서 "이제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진실 규명, 명예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10월 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억울한 죽음을 기록해 놓은 민간인 희생자 명단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10월 항쟁의 진실규명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서 '10월 항쟁 유족회' 채영희 회장은 다음 네 가지 사항들을 요구하고 있다.

- 정확한 진실규명을 통한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 유해 발굴 및 추모공원 조성
-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역사교과서 기술
- 미신고자 기한 없는 창구개설과 국가의 책임있는 배상과 보상

부디 '10월 항쟁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돼 유족들의 70년 세월의 응분이 하루속히 풀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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