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열중쉬어' 안 하고, 어설픈 경례.. 트윗 예언 실현한 윤 대통령?
[하성태 기자]
"우리의 국방력은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땅과 바다, 하늘을 우리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국민과 장병들의 의지로 이뤄낸 것이다.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내겠다는 우리 군의 헌신이 오늘 우리 국방력을 세계 6위까지 올려놓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지난해 10월 1일 73주년 국군의날 기념사 중에서)
지난해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유난히 국방력을 강조했다. 이를 전시라도 하듯, 2021년 6월 취역한 해군의 최신 대형수송함(LPH)인 마라도함 함상에서 진행됐다. 이날 해상에서 펼쳐진 가상의 합동상륙작전인 '피스메이커' 작전을 생중계한 영상은 한편의 항공 전쟁 영화를 방불케했다.
작전을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제곡을 닮아 있는 음악이 웅장함을 더했다. F-15 등 전투기 편대들의 수직 상승과 같은 공군 조송사들의 곡예 같은 비행이 계속됐다. 해상에선 해병대 특수수색대 요원들이 수중 장애물을 제거하고 침투 작전을 벌였다. 이를 위해 상륙돌격장갑차 64대도 동원됐다. 육군의 전천후 공격헬기인 아파치 편대도 열추적 미사일을 피하며 작전에 참가했다.
6분여에 걸친 이 영상은 세계 6위를 자랑하는 우리 군의 국방력을 뽐내는 내용이었다. 이에 발맞춰 문 대통령도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1호기 마린원을 타고 해병 항공점퍼 차림으로 마라도함에 도착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전 당시 즉응태세 유지로 작전에 성공했음에도 공적에 대한 적절한 상훈을 받지 못했던 해병들의 명예를 되찾아주기도 했다.
이게 불과 1년 전 국군의날 기념식 광경이다. 물론 지난 정부 국군의날 기념식이 모두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우려도 있었다. 2018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제70회 국군의날 기념식은 5년 주기로 개최됐던 군사퍼레이드나 계룡대에서 열렸던 전통적인 행사 대신 싸이 등 연예인들의 공연 및 공군 특수비행팀의 야간 에어쇼 등으로 끝을 맺었다.
일부 언론은 당시 기념식을 두고 '축소' 의혹을 제기하며 국민들의 안보 의식 해이 등을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가 당시 남북의 화해 평화 모드를 고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행사 규모를 축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지난 2018년부터 국군의 날 행사 때 시가행진·열병·분열을 반드시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으로 훈령 개정을 논의해왔고, 2019년 최종 개정을 마친 바 있다.
어제(1일) 충북 논산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국군의날 기념식이 열렸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북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압도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는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내놨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념식을 둘러싸고 윤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이런저런 지적들이 나온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74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석렬(열)의 빅 실수는 국군의 날 행사에서 터질 것이다. 군대 다녀온 사람도 헷갈리는데 안 다녀온 사람은 간단한 제식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통수권자가 깜빡하고 부대 열중쉬어를 안 하면 전군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게 된다. 군에 대한 명령이므로 누가 대신할 수도 없다....'
어제 국군의날 기념식 이후 2일까지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성지글'로 회자되고 있는 트위터 글이다. 실제로 이날 윤 대통령은 약 10초가량 '부대 열중쉬어' 구호를 침묵했고, 그 광경이 생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히기도 했다(관련 기사 : 첫 국군의 날 행사... '부대 열중쉬어' 깜빡한 윤 대통령).
해당 트위터글은 석달 전인 지난 6월 30일 게시됐다. 해당 글을 쓴 트위터 사용자는 '예언자'라는 칭송과 함께 해당 글은 누리꾼들의 이른바 '성지순례'를 받는 중이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에서는 "대통령 기념사 시작 직전 제병지휘관이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하"였다며, "대통령께서 별도로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하지 않아도 제병지휘관은 스스로 판단하여 '부대 열중쉬어' 구령을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부대원들이 장시간 부동자세를 유지하는 등의 불편은 일체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날 국군의날 기념식과 관련된 잡음은 또 있었다.
윤 대통령의 경례 자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제병지휘관을 맡은 손식 육군 소장의 경례를 받은 윤 대통령은 이에 답하며 군대식 경례를 했다. 하지만 경례를 하는 윤 대통령의 오른손 끝은 눈썹 부근이 아닌 이마 중간에 걸쳐져 있었다. 이 역시 윤 대통령의 군 미필 이력과 함께 인터넷 상에서 '밈'(온라인 공간에서 공유되는 2차 창작물이나 패러디물 등을 일컫는 말)으로 회자됐다.
무엇보다 계룡대 연병장에서 진행된 이날 기념식은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개념의 군 관련 행사로 점철돼 있었다. 국민의례 등을 마친 윤 대통령은 연병장을 도는 카퍼레이드에 임했다. 이 카퍼레이드는 무려 8분여 넘게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어색한 손 경례를 이어갔고, 소위 '손따봉'을 치켜 올려 보이기도 했다.
전투기 출격 등 있어야 하거나 식에 필요할 법한 장면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이날 국군의날 기념식은 눈에 띄게 과거로 회귀한 듯한 인상을 줬다. 왜였을까.
'남과 북은 하나', 군사정권 연상시키는 과거 회귀
"2017년과 2020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등장했던 대리석 격파가 또 등장하면서 지켜보는 취재진과 관객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군 일각에선 송판이 아닌 대리석 등은 연습과 실제 시범에서 부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국군의 날 행사에서 제외할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위는 1일 <노컷뉴스>의 '고위력 현무 미사일 등장... 계룡대로 돌아간 새 정부 첫 국군의 날' 기사에 담긴 문장이다. 이 기사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한 번씩 테마로 잡아 행사를 다채롭게 열었던 일과 달리, 과거 보수정권 시절의 특색 없는 행사로 회귀했다"는 지적으로 시작된다.
공중전력 사열, 공군 블랙이글스 특수비행팀 축하비행, 합동 특공무술 시범 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과거 국군의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였던 특공무술 시범이 아닐 수 없었다. 10여 분 가까이 계속된 무술 시범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미소도 카메라에 잡혔다.
압권은 무술시범 이후 '승리의 횃불'이 울려퍼진 뒤였다(이날 국군의날 기념식에서는 '멸공의 횃불'이 '승리의 횃불'이라는 제목과 가사로 소개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이번 행사에 초청된 외빈 및 외국군 대표를 배려해 '멸공' 대신 '승리' 용어로 단어만 바꾼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무술시범을 끝낸 장병들을 포함해 행사에 참석한 수백 명의 남녀 장병들이 연단 주위로 달려와 계단에서 내려온 윤 대통령을 에워쌌다.
대통령을 에워싼 장병들은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한다"로 시작하는 '국군의 사명'을 연호하고 "대한민국 국군 파이팅"이란 구호와 함성을 질렀다. 그 가운데 선 윤 대통령은 연신 '손따봉'을 올려 보이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 넘게 이어진 국군의날 기념식은 군의 사기를 북돋우는 전통적인 행사란 평가와 함께, 일각에서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거나 '군사정권 당시 국군의날 기념식으로의 회귀'라는 촌평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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