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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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기자]
▲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pc 방에서 오마이뉴스 본사로 송고하다 |
ⓒ 박도 |
젊은 날 어떤 분이 내 사주를 물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손가락으로 육갑을 짚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당신은 닭띠로 평생 아등바등 늙도록 일하면서 살겠다. 큰 부자는 되지 못하지만 그래저래 평생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살겠다."
이제 인생 종착역을 앞둔 이즈음 그 사주풀이 말씀을 되새겨 보니 얼추 맞는 것 같다. 내 인생을 뒤돌아오면 고1때부터 돈을 벌면서 살았다. 대학 졸업 후 학군단 육군소위로 임관, 첫 달부터 국가에서 주는 봉급을 받기 시작하여 제대 후 곧장 교단에 서서 퇴직할 때까지 단 한 달도 봉급은 그냥 지나친 적은 없었다.
교직에서 퇴직한 이후는 다달이 또박또박 나오는 연금으로 그저 호구를 하고 있다. 고향의 한 친구가 물었다.
"자네는 그동안 책도 여러 권 냈고, 서울 도심지에서 30여 년 교사생활을 했으니 적잖은 재산을 모았을 테지?"
나는 그 물음에 그저 웃기만 했다. 그는 내가 책을 내면 떼돈을 번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책 대부분은 발로 쓴 글들이라 어떤 경우는 인세보다 답사비가 훨씬 더 들었다. 게다가 나는 평생 고지식하게 부동산 투자를 해 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40년을 살면서도 그 흔했던 아파트 분양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자동차도 닿지 않는 산동네에서만 꼬박 30여 년 살다가, 강원 산골에 내려왔다.
▲ 일본 오사카성의 매표원들(가운데 기자) |
ⓒ 박도 |
"오래 살아서 미안합니다"
엊그제 <오마이뉴스> 선임 상근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쾌히 응했다. 그랬더니 인터뷰 도중 그는 '77세의 시민기자'란 말을 도중에 세 번이나 말했다. 그 기자는 그 나이에도 아직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시청자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으나 내 귀에는 아직도 그 나이에도 살겠다고 '애쓰나'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세 번째 소개 말에 얼른 "오래 살아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정기 검진으로 원주기독병원 채혈실로 가자 대기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노인들로 보였다. 모처럼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면 노인들이 반 이상이었다. 어떤 친구는 이제 100세는 기본이고, 앞으로는 120세, 150세라고 말하는데, 그런 세상이 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숨 막히게 될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사회시간 배우기로는 한국인 평균 수명이 38세 정도였다. 이 기사를 쓰면서 검색해 보니까 2022년 현재, 한국인 평균 수명은 남자 80.5세, 여자 86.5세로 평균치는 83,5세란다. 그런 탓인지 이즈음은 젊은이보다 노인이 더 많아 보이는 노령 사회로 점차 변모해 가고 있다. 이는 그 사회의 활기를 잃어가는 현상으로 장수는 결코 축복이 아니요, 이 지구에 큰 해악이 될 것이다.
인간의 수명 연장은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다. 이웃 일본에 갔더니 버스 기사도, 안내인도 거의 대부분 노인들이 맡고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내 언저리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 말로 이제는 그만 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말대로 막상 며칠 쉬고 보니까 쉬는 게 더 힘들었다. 나는 그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것이니까 기력이 있는 한, 내 뇌리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은 다음 컴퓨터 앞에서 엎드려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긴 잠을 자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그것도 가능한 1~2년 이내로. 하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요, 세상사다.
이즈음 따라 젊은이들에게, 지구에게 "오래 살아서 미안합니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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