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소설이 안기는 분명한 감흥

김성호 2022. 10. 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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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158] 김유진의 <보이지 않는 정원>

[김성호 기자]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한다. 판단하고 분별하여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꼭 이해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해가 아닌 이해했다는 오해로 남을 때도 적잖이 많다. 이유는 간명하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는 대로 남겨두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도 든다. 알 수 없는 것은 꼭 그대로 삶에서 제 역할을 해낼 때가 있는 것이다.

김유진의 소설집 <보이지 않는 정원>은 모호한 것의 모음집이다. 직장 동료 사이에도, 엄마와 딸 사이에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끝내 하지 못할 말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환상에 가깝다. 인간은 그 스스로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 않던가. 그 모든 모호한 것들로부터 일상은 어쨌든 이어진다.

독서의 계절, 개천절 연휴를 맞아 김용익 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이 소설집으로부터 모호함이 안기는 감흥을 맛보는 건 어떨까.
 
▲ 보이지 않는 정원 책 표지
ⓒ 문학동네
 
오줌 참지 못해 은퇴한 조율사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김유진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발표한 것이다. '세계의문학' '문학과사회' '현대문학' 등에 발표된 그녀의 소설엔 서로 다른 인물과 배경이 등장한다. 딸의 독립 이후 제 모습을 찾아가는 어머니, 부유한 애인과의 헤어짐을 염려하면서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여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빈집을 두려워하게 된 어머니, 소설을 쓰지 못하면서 괴로워하기만 하는 소설가, 오래 오줌을 참지 못하게 되어 은퇴를 선택한 피아노 조율사, 남편을 두고 외간남자와의 일탈에 나서는 여자, 화려한 배경에도 세상 가장 평범한 남자를 짝으로 선택한 여자 등이 지면 위에서 저들의 삶을 산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음의 속성>이다. 주인공은 조율사 이영이다. 손가락은 빠르지만 악보를 보는 데는 영 재주가 없던 이영은 연주 대신 조율을 업으로 삼는다. 그녀가 조율을 배운 송 선생은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는 업에도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조율을 나가면 주인의 허락 없이는 화장실도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게 예의라고 했다.

조촐한 은퇴식 자리에서 원장은 젊은 조율사를 위해 그가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영은 그가 3시간여가 걸리는 조율 시간 동안 오줌을 참지 못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단 걸 안다. 제 규칙을 무너뜨려야 하는 수치심이 그에게 일을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이영에게 조율사가 된다는 건 큰 변화였다. 피아노를 놓고 하는 일이지만 음을 연주하는 연주자와 달리 조율사는 피아노를 물건으로 바라보게 했다. 소리가 물리적인 현상이라는 조율수업을 듣고 난 뒤 이영은 마음 한 구석이 부서지는 걸 느낀다. 이영은 조율사의 일을 하면서도 연주자로서 가졌던 감상을 지키려 한다. 물리적 진실과 예술적 감상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머물고자 한다.

모호함이 일으키는 선명한 감정들

문학평론가 김나영은 소설집에 딸린 해설 '당신의 안무이자 악보가 될 이야기들'에서 단편 <비극 이후>를 예로 들어 '이것과 저것의 경계로서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함으로써 결국 아무 곳에도 머물지 않는 애매모호한 지점을 절묘하게 형상화한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평은 책에 실린 김유진의 모든 소설에 얼마간 적용되는 것이다.

소설은 인물들의 선택을 일일이 해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눈앞에서 숨 쉬듯 묘사할 뿐이다. 때로는 욕망이, 해방감이, 불안감과 수치심이 행동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명확히 알 수 없는 것의 결과로써 남겨진다. 소설은 풀어 설명하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소설 이후로 남겨질 때도 많다. 예컨대 제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의 차에 올라탄 유부녀, 조율사 뒤로 다가오는 집주인의 모습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곤 하는 것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소설이 끝난 자리에서 이 소설의 진면목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아 이 사람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그때 그런 일이 있었겠구나 하고 말이다. 분명하지 않은 소설의 재미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아노의 말년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무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일은 동화에서나 벌어지는 일입니다.

 팔려간 피아노의 대부분은 일상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거실 구석에 장식품으로 놓여 있기 마련이지요. 사람들은 그 위에 책을 쌓아두고, 외투를 올려두기도 합니다. 피아노는 조율을 마친 순간부터 현의 장력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육 개월만 방치해도 음이 현저히 떨어져요. 습도의 영향을 받아 부품이 휘거나 부러지기도 합니다. 부품 대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다 이사철이 되면 가장 큰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건반 몇 개를 눌러보고는 고장난 악기 취급을 하며 싼값에 업자에게 떠넘깁니다. 업자들은 외장에 흠집이 없는 것을 골라 우리에게 복구를 의뢰하지요. 피아노는 버려진다 해도 폐기되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팔려갈 뿐입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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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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