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결국 국내에 전선을 긋다..'패전의 전조' 괴벨스 총력전 [Focus 인사이드]

남도현 2022. 10.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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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전 선언이 어려웠던 이유

1943년 2월 18일, 집회에서 나치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이제부터 독일은 총력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연설을 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독일이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전쟁이었다. 특히 300여 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해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던 독소전쟁이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바뀌면서 하염없이 국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이미 총력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1943년 2월 18일, 열린 군중 대회에서 총력전 의지를 밝히는 요제프 괴벨스 선전상. 찬성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위키피디아


괴벨스의 연설 전까지 나치는 국민이 전쟁 때문에 일상이 바뀌었다고 느끼지 않도록 총력전이라는 단어를 삼가고 있었다. 연합군 폭격기가 폭탄을 던져도 전투는 베를린에서 수천 ㎞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선전 매체도 연일 독일군의 승리만 보도 중이었다. 점령지에서 엄청난 수탈이 자행되고 포로ㆍ유대인에 대한 극심한 노동력 착취 덕분에 물품 공급도 크게 부족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개월간 모든 것을 쏟아붓다시피 하며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하자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전쟁을 이끌기는 곤란했다. 결국 총력전 체제로 전환하게 되면서 독일이 일방적으로 밀리던 1944년 군수 물자의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었다. 대신 청소년과 노인은 징집 대상이 됐고, 여성들은 공장으로 달려가 생산을 담당해야 했다. 또한 필연적으로 내핍이 강요되었다.

총력전 선언에 따라 동원된 노인으로 구성된 국민돌격대. 사실 이 정도라면 무모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종전을 모색해야 하지만 나치는 끝까지 항전을 택했다. 위키피디아


상식적으로 평화 시처럼 일상을 영위하며 전쟁을 벌이기는 어렵다. 국력이 압도적인 미국마저 참전과 동시에 전시체제로 전환했을 정도였다. 침략을 당했기에 당연했다 치더라도 한창 중국을 침략 중이던 일본도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즉각 총력전을 실시했다. 전쟁이 발발하면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총력전 선언을 주저한 독일의 행태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는 지난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많은 곳을 점령하고 남의 땅에서만 싸웠다. 단순히 종전 직후 전선만 놓고 본다면 독일이 우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봉쇄된 상태에서 장기간의 총력전을 벌이다 보니 국민이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딜 수 없었다. 반란까지 일어날 정도로 후방이 혼란스러워지면서 결국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다.

제1차 대전 당시 치킨 스프 배급을 기다리는 베를린 시민들. 당시 총력전을 벌인 독일은 봉쇄를 당해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고 결국 전쟁에서 졌다. 이 때문에 나치는 국민의 동요를 우려해 총력전 언급을 삼갔다. Populus Fennica Patriam


그런데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제재가 가혹한 데 대한 반동으로 내부의 적 때문에 독일이 무너졌다는 음모론이 사회에 퍼졌다. 이를 이용해 나치는 정권 획득에 성공했기에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면서 후방 안정에 최대한 공을 들였다. 그래서 총력전 언급을 회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총력전 선언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괴벨스의 연설은 독일 패전의 예고편이었다.


약속을 깼기에 믿을 수 없다

지난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동원령을 선언했다. 이는 어느덧 7개월째로 접어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신호탄이다. 그동안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둘러대었지만, 동원령을 발동했다는 자체가 총력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러시아가 전시체제로 전환한 것은 아니나 동원령이 내려진 이상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키이우 시내에 전시된 격파된 러시아군 장비들. 이처럼 자신의 의도대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자 푸틴은 동원령을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AP=연합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만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므로 침공을 단행하는 쪽은 총력전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설령 실질적으로는 총력전이어도 앞서 언급한 나치의 사례처럼 국내 외에 국가 기능이 전쟁 이전처럼 원활히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정부는 30만 명만 소환하는 부분 동원(Partial Mobilization)이라며 어떻게든 의미를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무수한 시위와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이들을 보면 러시아 국민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일단 변명의 여지 없는 침략 전쟁이니 적극 참전할 만한 동기부여가 어렵다. 또한 전쟁을 시작했을 당시에 절대 동원령 발령은 없을 것이라던 약속부터 무참히 깨졌기에 앞으로 정부의 말을 믿기 어렵다. 더구나 기득권 세력은 제외되고 변방이나 소수민족 위주로 징집되는 소식 또한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2014년 크름반도 병합,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처럼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나 도발을 상당히 많이 주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나름대로 명분이 있어 국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런 연이은 성공 때문에 어느덧 푸틴은 1940년 독불전쟁 이후의 히틀러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부분 동원령을 선언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런데 추후 거론될 수 있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에 동의를 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로이터=연합


그래서 예상을 벗어난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푸틴에게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동원령을 발동하고 노골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거론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부분적 동원을 추진하자는 국방부와 총참모부의 제안을 지지한다”는 궤변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연설을 통해 강제적으로 동의를 얻어낸 괴벨스보다 더욱 영악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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