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2022. 10. 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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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인 죄수는 취침 시간 외에 눕거나 잘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내 ‘방’이 ‘빵’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저녁에 하품하며 잠들 때까지 책상 앞에 꼼짝없이 앉아 일만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창창한 가을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다 부러울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도무지 알 길은 없으나 좌우지간 죗값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사실 일을 적당히 마무리 짓는다면야 얼마든 띵까띵까 놀 수는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더 잘해내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아무래도 나는 무기징역을 사는 모양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필라테스 학원에 가기 위해 탈옥을 감행한다. 운동 하나쯤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다니기 시작했지만 요즘은 수업 시간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더라도 학원에서만큼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드러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학원에 도착해 매트 위에 벌러덩 몸을 눕히고서 ‘난 지금 농땡이를 부리는 게 아니라 운동하기를 기다리는 거야’ 하며 면죄부를 팍팍 남발하는 것이다. 물론 수업이 시작되면 바닥에 등을 붙일 새도 없이 숨 가쁘게 운동하지만, 시험 기간에 하는 책상 정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듯 그 힘든 팔굽혀펴기마저 신이 나서 한다.

“나랑 같이 요가 다닐래?” 평소 같았으면 흘려듣고도 남았을 친구의 말에 솔깃했던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요가라 하면 이완과 스트레칭이 주된 운동 아닌가. 한층 본격적으로 누워 있을 생각에 마음이 쉬이 동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몸을 반으로 접고 좌우로 찢는 걸로도 모자라 젖은 걸레 짜듯 힘껏 비틀기까지. 요가 학원에 등록한 게 아니라 서커스단에 입단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 것은 꼬부랑꼬부랑 산스크리트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요가 자세 명칭이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손오공이 외는 주문 내지는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의 한 구절처럼 들려왔다.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져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수업이 거듭될수록 누구보다도 잘해내고 싶다는 묘한 오기가 생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훨씬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하여 학원에서는 악 소리가 나는 걸 참아 가며 수업을 따라가고, 집에 와서는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연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견갑골 사이에 근육통이 시작됐다. 요가를 열심히 했다는 방증 같아 내심 기뻤다. 그런데 이삼일이면 가셔야 할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요가란 원래 이리 아파 가며 배우는 것이냐 선생님께 여쭈어봤더니만 이게 웬걸. 아무래도 병원에 가 보는 게 좋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한의원 침대에 엎드려 침을 맞으며 ‘현대인은 어째서 돈을 내야만 누울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데 당분간은 요가를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한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나는 “네” 하고 대답해 놓고서는 곧장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라도 하지 않으면 딴짓할 시간이 없다는 잔꾀가 반, 미미하게나마 쌓아 온 실력이 물거품이 돼 버릴 것 같다는 조바심이 반이었다. 윽, 헛, 끄응! 오늘만큼은 너무 열심히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건만 어느새 용을 쓰고 있는 나였다. 절로 터져 나오는 앓는 소리를 멈출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의 나지막한 한마디 덕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순간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이 마법처럼 풀어지며 스르르 눈이 감겼다.

시뻘건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작업에 몰두하다가도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하던 일을 의식적으로 멈추게 된다. 깍지를 단단하게 끼고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빙글빙글 돌리며 뻐근한 목도 풀어낸다. 이걸로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에라, 모르겠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맨바닥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벌건 대낮에 땡땡이를 친다는 오해는 금물. 이래 봬도 요가 학원에서 배운 송장 자세를 연습하는 중이다. 십 분이면 충분한 자세를 한 시간은 거뜬하게 유지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쉬는 방법을 모르는 이가 완전한 휴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혹독한 수련이 필요한 법 아니겠는가.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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